검은색 냉장고 측면은 가릴까 검은 장을 놓을까

인테리어는 숨길 것과 드러낼 것을 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bystephanette

블랙 좋아한다.

내가 살던 첫 집을 꾸밀 때, 가구는 전부다 블랙이었다.


매트하고 광택이 거의 없는 검은색 가구는 원목 무늬 결이 보이기도 했다.

낮고 넓고 크고. 공간에서 느껴지는 압도감 같은 거라고 하자.


여전히 그런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서 참는 중이다.

그래서 적당하게 화이트 톤이다. 밝고 차분하고 그런 분위기.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그런 것이다.


냉장고의 측면이 공교롭게도 블랙이다.

생각보다 크다.

아이보리톤의 가벽을 만들어서 가려도 된다.


수공을 들여서 가벽을 직접 만들어도 나름 재미있다.

현관 옆 가벽은 직접 만들었었다. 아는 목공 공방에 가서 아름다운 아쿠아 무늬의 반투명 유리를 넣은 가벽을 제작했다. 벽에 고정을 하기도 하고, 떼내기도 하고, 다시 설치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마음대로 배치한다.

그런 재미다. 유리를 고정하는 원목은 수작업으로 아주 작은 장난감 같은 크기의 못을 쳤다. 미세한 틈 하나 없는 완벽한 마감보다 손으로 직접 만든 느낌이 살도록 단차가 있는 채로 두었다.


냉장고의 광활한 검은 측면은

그 앞에 검은 철제 장을 놓아도 된다.

뜬금없는 블랙 벽면은

검은 바카라장과 여러 금속 가전들로 전시 공간처럼 만들 수도 있다.

금속 틀 부분이 아주 두껍고 부피가 있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가 사랑채에서 쓰던 바카라장 같다.

중간중간 핀 조명을 설치하고,

작은 관엽 식물 화분을 놓고 아이비처럼 잎이 조금 늘어지는 종류로.

아래쪽에는 나뭇가지들과 노랗고 흘러내리듯 피어난 작은 꽃가지를 화병에 꽂아도 좋다.

반짝이는 것들과 무광의 도자기, 양털 같은 부드러운 질감도 믹스 매치를 한다.

하얗고 둥그런 한지등과 나름 잘 어울리는 공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자잘한 물건들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지 않던 것들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검은 벽, 검은 장, 반짝이는 주방 가전과 도구들.


아주 좁은 공간을 어두운 색으로 연결하면 더 넓게 보일 수 있다.

바닥도 천장도 블랙으로 일정 부분 칠해도 무방하다.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면서 즐거워하는 중이다.


아이방 베란다의 검은 철제 바카라장을 밖으로 꺼냈다.

장 안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고무망치를 꺼내서 들어갈 물건들의 키에 맞게 높이 조절을 시작하려다가

우선 보고 있다.


시뮬레이션이다. 어째볼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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