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트라우마,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bystephanette

트라우마 바카라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상당히 강렬하고 인상적인 서문이다.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말하자, 이야기 전체의 의미가 바뀌는 장면이다.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내가 짊어진 것이 지나치게 남성적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성적인 경쟁, 야망, 권력, 관직, 배신, 죽음, 복수 등이 얽힌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성이 이긴 것 같다. 그들은 이야기의 주변부에서부터 행진해 들어와 그들의 비극, 그들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희극을 포함시키라고 명령했다. 내 이야기의 뒤얽힌 복잡성이 펼쳐지도록 내 〈남성〉 플롯이 반대편에 놓인 〈여성〉의 프리즘을 통해서 굽이치도록. 여성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남성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심지어 포괄한다. 억압은 솔기가 없는 옷과 같다. 권위주의적인 슬롯 규준과 성적 규율이 지배하는 슬롯는, 명예와 교양이라는 참을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여성들을 진압하는 슬롯는, 또한 다른 종류의 억압을 낳는다. 심술궂게도 독재자들은 항상 금욕적이다. 적어도 대중 앞에서는 그렇다. 그들은 타인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니 나의 〈남성〉 플롯과 〈여성〉 플롯은 결국 똑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 살만 루슈디, 『수치』 중에서


이 인용문을 읽으며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고통이 어떤 조건에서 들리고, 어떤 조건에서 사소한 일로 처리되는가이다. 같은 사건도 누구의 관점으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질서를 유지한 사건이, 그 권력 아래 있던 사람에게는 자기 의사를 말할 수 없었던 경험일 수 있다.


여성들이 이야기의 주변부에서 걸어 들어오는 장면은 이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말이 등장하자 기존 인물의 야망과 명예, 성공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더해,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겪었는지도 보게 된다. 한 사람의 경험을 진지하게 듣는 일은 이미 완성했다고 믿었던 설명을 수정하는 일이 된다.


“억압은 솔기가 없는 옷과 같다”는 비유에서는 개인의 내면과 슬롯적 환경 사이의 연결이 떠오른다. 가족의 명예, 성적 규범, 권위에 대한 복종은 사람의 바깥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런 규범을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부당한 일을 겪고도 먼저 자신을 의심할 수 있다. 내가 예민했는지, 제대로 처신했는지, 말함으로써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되는 것이다.


이때 수치심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피해를 말하려는 사람이 오히려 가족이나 공동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으로 취급된다면, 경험을 언어화하는 일 자체가 위험해진다. 침묵을 선택한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려면 말했을 때 무엇을 잃을 수 있었는지까지 물어야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의 첫머리에 놓인 이 인용문은 독자의 주의를 바꾸어 놓는다. 증상을 살피기에 앞서 그 사람이 살아온 관계와 발언의 조건을 보게 한다. 누가 사건의 의미를 정했는가. 누구의 기억이 믿을 만한 것으로 인정되었는가.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었는가.


다만 그 말을 듣는 사람도 해석의 권력을 갖게 된다는 점을 잊기 어렵다. 충분히 듣기 전에 진단이나 이론으로 설명을 완성하면, 당사자는 다시 자신의 경험을 수정해서 들려줘야 한다. 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설명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인용문이 남기는 감상은 그 지점에 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이 말하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의 자리만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 전체의 구조가 달라진다.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바카라이 이런 문장들로 시작하니 이후의 증언을 읽는 자세부터 달라지게 된다.

내가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내가 아는 세계의 설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바카라장을 넘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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