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고, 잘해왔고, 잘할 것이다
지금은 플랫폼에서 검색해 즉각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천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가수 이름과 제목을 검색해 소리바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엠피스리나 PMP에 다운로드해 들었다. 음악 플랫폼 스푼이나 유튜브가 없던 시절 개인이 하는 음악방송도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듣던 노래는 늘 정해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가수 박혜경 노래였다. 상큼하고 밝은 음색과 멜로디가 중독이라도 된 것 마냥 외출할 때 버스 안에서 같은 곡을 연속으로 플레이하며 반복해서 들었다. 나중에는 가수의 노래를 전부 들어보고 ‘아 이건 너무 좋다’싶은 것들을 모두 플레이리스트로 담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낸 앨범 ‘레몬트리’라는 노래를 발표했을 때도 그녀의 팬으로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음악방송에 나오는 가수라기보다는 그 시절 한 귀퉁이를 추억할 수 있게 하는 사람, 기억에 남는 목소리의 가수라 궁금하기도 했다.
얼마 전 그녀를 인터뷰한 영상을 봤다. 유튜브는 내 생각을 훑어보기라도 했는지 그녀의 근황 영상을 내게 소개해 줬다. 영상 속 가수 박혜경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녀의 노래는 원곡자가 있음에도 아이돌 가수가 리메이크해 뜨는 경우가 많다. 박혜경의 노래도 그러했다. 요즘 세대 친구들에게 ‘안녕’ ‘고백’ 등 노래의 한 소절을 부르며 누구 노래냐고 물으면 “그 노래 조이, 츄, 김채원이 불렀던 거 아냐?”라고 되묻는다.
가수 박혜경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곡들이 꽤 되는데 저작권을 회사에 팔았다고 인터뷰했다. 그런데 이후에 다른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유명해졌고, 월드 차트에도 들었다며 씁쓸함을 표현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작권을 팔았나 싶으면서도 그녀의 삶도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힘든 일을 겪으며 술을 마시는 나날들이 많아졌고, 성대에 폴립을 그냥 두다가 수술까지 하게 되며 예전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단다. 몇 년간 중국으로 가 마치 도피라도 하듯이 플로리스트 일을 했다는 것도 인터뷰를 통해 알았다.
그러다 슈가맨에 나오게 됐는데 예전의 목소리가 아니라 도망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아니라 몸이 그러니까 세포들이 기억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 박혜경은 성대 훈련 선생님에게 지금의 목소리도 자기 자신이니까 받아들이고 과거의 히트곡들을 부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데 그 말을 듣고 노래를 해보니 탁성에 거친 소리지만 어떻게든 부르게 됐단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이 먹는 게 두려웠다. 삼십 대 후반이 되니 조금만 일을 해도 손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뭐라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다.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이걸 하면 어떤 리스크가 생길지 걱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 같지 않은 내가 무서운 것일 테지. 나는 요즘 어떤 일을 도전할 때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스스로를 컨트롤하기 위해 주문을 왼다.
전에는 ‘나 정도면 거뜬하지. 잘하니까’라고 외쳤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목소리로 뱉어본다. 나는 잘했고, 잘해왔고, 잘할 수 있어. 인터뷰 말미에 가수 박혜경이 내가 하는 혼잣말과 비슷하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가수도 결국 사람이구나’ 우리는 무대 위에 빛나는 모습만 보았으니 가수의 삶까지 들여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무대 위에 서 있는 가수도, 나도, 이 글을 보는 당신들도 우여곡절과 인생의 풍랑을 겪을지언정 다시 잔잔한 호수가 찾아올 것이다.
우리 다 같이 주문을 외워보자. 잘했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오늘은 박혜경의 주문을 걸어라는 노래를 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