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뚜렷한 디렉터
취향이 확고한 디렉터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날카로운 취향으로 크리에이티브 팀을 진두지휘 하는 디렉터들 말이다. 그런 취향이 있는 디렉터는 하나를 해도 다르게 보인다. 심볼의 형태를 정할 때도 색을 선정할 때도 심지어 선물로 나갈 포장지조차도 허투루 고르지 않는다. 그렇게 취향이 있는 디렉터를 선망하다 결국 그런 분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봤던 사람들 중 가장 일관되고 자기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디렉터말이다.
그런 분 밑에서 일하다 보니 취향이 뚜렷하다는게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일의 합을 맞추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취향이 뚜렷하다보니 micro managing도 빈번하고 그의 손발이 되는 것에 급급했다. 생각보다 취향이라는 부분은 직감에 가깝고 브랜드 전략 기획자로서 디렉터님을 돕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취향이 깊은 디렉터와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 어떤 점에서 난 그렇게 느꼈을까?
뾰족한 브랜드가 좋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브랜딩 관련 바카라에서는 빠짐없이 나오는 부분으로 타깃이 명확하고 개성이 뚜렷한 브랜드는 일관된 메시지로 팬층을 구축하기 쉽다는 것이다. 뾰족한 개성이 있는 브랜드 뒤에는 확고한 취향을 가진 브랜드 디렉터가 있는 경우가 많다.
“취향이 다분화되는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더 뾰족해지고, 더 선명해져야 한다."
- 패스트리테일링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키노시타 타카히로, 톱클래스 인터뷰 기사 중
브랜딩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개성이에요. (생략) 고객들이 브랜드를 접할 때마다 그 브랜드의 개성이라고 꼽을 수 있는 모습이 계속 보여야 해요. 좋은 브랜드와 나쁜 브랜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성 있는 브랜드와 없는 브랜드로 나뉘어요.
- 더퍼슨스 No.4:브랜드 디렉터, 전우성
하지만 취향이 강한 디렉터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는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종종 취향이 앞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결정사항이 있을 때마다 왜 이렇게 결정됐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생겨난다. 모든 결정은 디렉터의 취향과 본능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걸 이해하려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윗사람이 결정했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취향의 사전 의미는 하고 싶은 마음이나 욕구 따위가 기우는 방향이라고 한다. 말을 풀어보면 분명한 방향성이 있는 것이라는 말인데 분명한 방향성은 종종 시장에 맞지 않은 무언가를 내기 마련이다. 전체적으로 시장은 A를 지향하고 있지만 취향이 그쪽과 맞지 않아 B를 선택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장에 일반 된 관습을 깨서 성공한 케이스도 많으니 이것이 좋다 안 좋다 할 순 없다.
사람은 합리적으로 판단하려 하기에 시장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때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취향이 강한 디렉터는 자신의 취향과 본능으로 선택한 무언가에 자신의 감정 외 합리적인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어떤 이유로서 좋은지, 왜 이렇게 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게 되는 순간 팀원들과의 연결성을 잃어 나중에는 디렉터의 손발이 되어 이해 없이 일하게 될 수 있다. 창의성이 중요한 팀에서 생각 없이 일한다는 건 더 이상 뛰어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디자인 조직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상이한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만큼, 기본적으로 사람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집단이다. 업무 영역이 넓어질수록 다양한 디자인 방향성과 스타일에 열린 문화를 지향한다.
- 생각의 공간, 허정원
예를 들어보자. 귀여운 디자인을 좋아하는 A 디렉터가 주방 기기를 만들라는 업무를 맡았다고 하자. 이 디렉터가 귀엽고 동물이 연상되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팀원들이 이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예컨대 주방 기기 시장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무채색과 스테인리스 제품이 주를 이루는 트렌드에 반하는 선택이 전략적이라는 분석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설명 없이 단순히 디렉터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면 팀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고 결과물의 시장 반응도 장담할 수 없다. 브랜드의 개성과 취향은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그것이 팀과 시장 모두를 설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취향이 깊은 디렉터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 그 답은 조수용의 일의 감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수용 디렉터는 나만의 취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취향의 영역에서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영역에서 고객의 공감지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거기에는 시장 조사가 있다. 시장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 리서치를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일반적으로 정량적 리서치만 진행을 한다. 현재 시장의 규모는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떤 물품이 많이 풀려있는 등 다만 리서치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객들을 실제로 만나봐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아무리 적은 모수라도 상관없다. 들어보는 것과 듣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고객들의 이야기에서 디렉터의 취향과 맞는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을 강화하는 게 올바른 브랜딩의 방향성이 아닐까?
어떤 일을 성공하려면 나만의 취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선호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만나는 지점, 서로 밀고 당기는 압력이 느껴지는 그 미세한 지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취향과 세상의 취향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 일의 감각, 조수용
어떤 분야에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려면 먼저 그 시장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내 취향으로 좋은 것을 발견해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감각적인 결과를 만듭니다.
- 일의 감각, 조수용
취향이 날카로운 디렉터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직감을 밀고 나간다. 이전 문단에서 이야기했듯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뚜렷하기에 빠르게 방향성을 빠르게 좁혀나간다. 다만 싫어하는 것을 빠르게 배제시키는 것은 빠른 결정이 아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 시안 및 마케팅 시안이 나왔을 때는 쉽사리 선택하지 못한다. 선택지 안에서 둘 다 좋기에 그날그날에 휘둘리게 된다. 어느 날은 A시안이 좋았다가 내일은 B안이 좋다는 둥 이리저리 이유를 대며 자신의 결정은 바꾼다. 그러다 보니 일이 밀리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즉, 취향이 견고하다는 것은 빠른 결정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뚜렷하게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지 그 스타일 안에서 여러 가지 시안이 나올 때면 모든 게 좋아 꽉꽉 막힐 때가 있다. 그러니 취향이 뛰어난 디렉터 밑에 있는 팀은 시안부터가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취향에 딱 알맞은 시안만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것 또한 아니다. 취향에 따라 무언가를 선택하면 취향 안에서 매일매일 좋아하는 것이 미세하게 달라지기에 하나로 좁히는 것조차 쉽지 않다.
조수용 디렉터는 최성운 사고실험(youtube)에서 본질을 찾으라고 얘기했다. 본질을 계속 파고들어 가다 보면 일이 단순화되고 그에 따라 일을 진행하기만 하면 되니깐 말이다. 브랜드의 본질을 발굴하고 그에 따라 목적성을 정립하면 이후 같은 방향성을 따라 모든 팀이 일하게 된다. 그렇게 했을 때 그날 그날 바뀌는 취향에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목적과 본질 안에서 취향을 반영한 뾰족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뛰어난 디자이너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고, 그 입장에서 나의 디자인을 바라본다. 내가 디자인하는 제품이 디자인 장식품이 아닌 목적성을 가진 상품임을 상기하며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를 수 있지만, 모두가 최고를 만들고 싶다는 동일한 지향점을 가지고 일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 생각의 공간, 허정원
취향이 확고한 디렉터가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뚜렷한 색이 담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그 뾰족한 브랜드를 만들기 전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취향 맞추기 게임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브랜드의 본질을 파악하고 시장을 깊게 이해한 후 디렉터의 취향과 맞는 지점을 찾게 되면 훨씬 쉽게 뾰족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글은 조수용 디렉터의 말로 끝내고자 한다.
Q.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비결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 수용님만의 방식이나 논리 같은 것들이 좀 궁금해요.
그걸 저는 이제 본질과 상식이라는 말로 얘기하고 싶은데요. 가능한 한 누구나 들었을 때 ‘그래 저게 맞네’, ‘그래 그렇지’라고 하는 바로 피드백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의 레벨까지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어떠한 상황이든 단순화시켜야 된다는 얘기예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많은 일들, 지금 이 일이나 카지노 같은 엄청난 큰 회사가 하는 일도 본질을 계속 파고들어 가다 보면 정말 단순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결국 맨 마지막에 사용자들의 본능을 움직이는 일이거든요. 그 본능이 어떻게 움직이게 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것일 뿐이잖아요.
그것만 정하고 나면 정말 쉽게 하나씩 갈 수 있는데 이 본질을 못 건드리고 자꾸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들을 어려운 말로 어려운 테크닉과 어려운 기술을 얘기해 봐야 설명도 힘들고 설명은 못하겠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그냥 정했어”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어지고 그러니까 일을 하는 사람도 생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시켰으니까. 이렇게 시키신 거 맞아요?라고 확인하게 되고 그러니까 일은 더 많아지고 이제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면 직원은 끝도 없이 많아져야 되고 커뮤니케이션의 경로도 길어지고 속도도 엄청 느려지고 사람은 너무 많은데 진행이 안 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맨 마지막에 있는 사람도 “그래 우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이렇게 지시했지만 이건 틀렸을 수 있어”, “그렇죠?”라고 얘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적은 사람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이 재밌어요.
네이버 최연소 임원이자 카지노 대표였던 디자이너 조수용의 ‘일의 감각’, 최성운의 사고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