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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운 말 : 내 마음이 그래!

2강. 말을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by봄아범


저는 말인 체하는 말로 살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라디오 프로그램의 구성 작가와 방송국의 기자가 써주는 문장을 마치 저의 말인 것처럼 입 밖으로 내는 연습을 해왔습니다. 그 시작은 대학생으로 방송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처음 맡은 아침 프로그램의 제목은 ‘캠퍼스로 가는 길’. 저는 프로그램 제목의 억양을 배우고 연습했습니다. ‘캠퍼스로’의 ‘로’에는 언덕을 내려가듯 억양을 떨구고, ‘가는’의 ‘는’은 경쾌하게 살짝 올리고, ‘길’은 산까치가 날아가듯 올리는 연습. 프로듀서가 조사해 쓴 건강 정보나 날씨 기사 문장의 ‘조사’는 펴는 어투로 처리하고, 문장이 끝날 때는 비행기가 착륙하듯 내려가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제 말투를 따라 하며 놀려도 괜찮았습니다. ‘아나운서는 앵무새다’라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기본을 쌓는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조금씩 제 억양은 일자로 펴지고, 무리 없이 내려갔습니다. 소리 안에 담긴 내용이 남의 말인 것은 애써 무시하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 온라인 게임 생활은 아니죠. 주어지는 업무도 해내야 하는 시간이 온라인 게임인의 숙명입니다. 저에게는 마이크에서 물러나서 콘솔 앞에 앉는 프로듀서 일이 그랬습니다. 다른 진행자의 멘트를 들으며 그에 맞는 선곡을 하기를 1년. 제가 마이크 앞에 서 있던 시간이 길어서 그랬을까요. 귀에 들어오는 상대방의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방송이’라 여겨지는 부러 반 톤 올린 목소리. ‘이런 억양이 예쁜 말’이라 생각되는 과하게 비음을 넣고 몰아서 빠르게 처리하는 어미. 힘이 너무 들어가서 ‘끝 곡’을 ‘끝 각’이라고 말해버리는 실수. ‘저건 아닌데’라고 시작된 작은 생각은 ‘왜 저러는 걸까’라는 의구심으로 확장하여 ‘더는 못 듣겠다’는 괴로움으로 폭발했습니다. 부스 안 진행자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 것도,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조차 고역이어서 주조정실의 창밖 풍경에 시선을 두며 견디는 시간. 저는 창 유리에 비친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제야, 제가 신입사원으로 생방송을 진행할 때 맞은편에 앉은 프로듀서이자 최고참 선배 L이 자꾸 일어나서 창밖을 서성이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청취자로서 지금 제가 가지는 불편은 신입사원일 때 저의 말과 닮아있었으니까요. 그때의 저는 ‘아침 출근길 프로그램은 이렇게 진행해야 한다’는 마음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더 강한 발성과 과한 웃음은 음 이탈과 부정확한 발음을 만들었습니다. 청취자 문자 코멘트까지 글로 써서 읽는 저에게 L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요. 차마 듣기 힘들 때 창밖을 바라보며 그저 본인이 깨우칠 때까지 기다려 준 L에게 저는 죄송하고 감사해졌습니다. 동시에, 저의 프로듀서 업무는 속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말인 체하는 말로 살며 상대방에게 준 불편을 고스란히 겪으면서 나의 말을 돌아보는 시간. 이제는 그동안의 제 화법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말다운 말은 어떤 표현일까. 저는 봄(태명)의 투명함에서 그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는 항상 주말 아침 식사를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직접 양파를 채 썰어서 볶아 소스를 만든 함박스테이크를 먹는 시간. 함박스테이크 위에 올려진 달걀 프라이의 노른자를 톡 터뜨리는 놀이 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육즙과 치즈의 고소함에 춤을 추는 시간.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브로콜리를 먹으면 초콜릿을 먹는 시간. 그렇습니다. 봄의 아침은 초콜릿을 향해 달려가는 특급열차였습니다. 혹여 아이가 ‘배가 부르다’며 밥을 남기려고 하면 아내와 저는 ‘초콜릿도 못 먹겠다’며 식기를 정리하려 했습니다. 반색을 하는 봄은 접시를 설거지하듯 싹 비우고 ‘초콜릿 주세요!’ ‘초콜릿은 내 거!’를 연발했습니다. 든든한 식사 후에 초콜릿이 얼마나 달콤할까요. 당연히 하나로 부족할 겁니다. 아이는 저에게 ‘하나만 더 먹겠다’며 ‘따악 하나만 더 먹겠다’며 ‘모어 초콜릿, 플리이즈’라는 영어까지(!) 구사했습니다. 저는 이유를 알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아이에게 왜 초콜릿이 먹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그래!”


제가 생각한 이유와 다른 답이 들렸습니다. 달콤하니까. 맛있으니까. 느낌을 말할 줄 알았던 아이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저는 그동안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말을 해왔습니다. 적당한 톤과 어미 처리. 더듬지 않는 발음과 군더더기 없는 코멘트에 집중했습니다. 그 안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만 존재했지, 자신을 헤아리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나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었으면 하는 꿈. 최초로 발화하며 듣는 내가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 말을 하는 지금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이유 없이 초콜릿이 먹고 싶은 봄의 마음처럼, 설명을 걷어 낸 제 마음에서부터 말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조금의 진정성이 제 말에 깃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초콜릿을 하나 더 달라는 봄에게 말했습니다.


“따악 하나만 더 먹는 거야. 지금 아빠 마음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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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소년. 2012년부터 종교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제작하는 남자. 2023년부터 가족과의 기록을 남기는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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