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노트. 말로 무너졌습니다
기지개를 크게 켰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그쳤다. 유난히 빛나는 아침 햇살이 반가웠다. 여행지여서 더 그랬을까. 전날 밤. 봄(태명)과 아침에 해를 보면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약속했었다. 앞쪽 안장에는 부모가, 뒤쪽 카시트에는 아이가 타는 자전거. 가족 투숙객이 유독 많은 호텔에서 준비한 자전거 서비스였다. 우기(雨期)에 비추는 귀한 태양을 누릴 요량으로 아이를 뒤에 앉히고 페달을 밟았다. 해수욕장을 끼고 자전거를 타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아내는 속도를 높이는 나와 꺅꺅 소리를 내는 아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나도 아내와 아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백사장의 오른쪽 끝까지 달린 후 아내에게 핸들을 맡겼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해안 자전거 도로. 라탄 모자로 가린 얼굴에 보이는 아내의 미소. 엄마 뒤에서 금방 잠이 들 것 같은 봄의 노곤한 표정.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이런 것일까. 엄마의 태중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은 아이를 찍다 보니 해수욕장 왼쪽 끝에 도착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내가 먼저 페달을 돌려 출발했다. 자연스레 윤종신의 노래 ‘해변 무드송’이 흘러나왔다.
“우리 여기에서 그냥 확 살아 버릴까. 난 부족할 게 없어. 내가 필요한 건 너뿐인데.”
함께 살아 버리고 싶은 두 사람은 잘 따라오고 있을까. 고개를 돌렸다. 왜 자전거에는 백미러가 달려 있지 않은 것일까. 나는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뒤였다. 봄을 즐겁게 해 주려고 냈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바람에 눌러썼던 라탄 모자가 날아갔다. 안전 요원이 부축하는 아내와 팔꿈치와 아스팔트의 강렬한 만남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 앞에 도착했다. 나는 아내가 오랜만에 자전거를 운전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아내는 20kg에 가까워진 봄의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과감하게 U턴을 한 자전거는 바깥쪽으로, 안쪽으로 비틀거리다 맨바닥에 고꾸라졌다. 아내를 토닥이고, 카시트의 안전벨트를 풀고, 봄을 들쳐 안았다. 나의 흰 리넨 셔츠에 봄의 핏방울이 물들수록, 나의 반바지에 봄의 눈물 자국이 남을수록, 과산화수소가 상처 부위에 닿을수록, 자신의 팔꿈치에 피가 흐른다는 걸 깨달을수록, 봄은 목을 놓아 울었다. 해변에 설치된 나무 오두막에서 아이와 함께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갑자기, 파라솔 밑 접이식 의자에 누워있다가 일어난 다른 투숙객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아이와 당혹감에 홍조를 띤 아내를 내버려 둔 채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에게로 걸어가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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