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좋은 하숙집

by최명숙

요즘 나는 가성비 좋은 하숙집 주인이 되었다. 하숙생인지 세입자인지 동거인인지 모를 아들에게 생활비를 받고 있으니. 지난가을부터다. 육 개월이 되었다. 십 년 나가 살던 아들이 수천만 원의 빚만 지고 들어왔다. 한심하고 기함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자식을 좌절하게 둘 수 없었다. 아들은 자발적으로 쓰고 있는 카드를 모두 내게 주고, 월급이나 강연비 등을 들어오는 대로 내게 입금했다. 필요한 경비는 타서 쓰며 긴축경제로 돌입한 지 2년 3개월 만에 빚을 다 갚고 생활비를 내놓는다.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했다. 독립생활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걸 핑계인 듯 변명인 듯 설명을 들으며 알 수 있었다. 오죽하면 ‘집수저’라는 말이 다 있겠느냐고 했다. 집수저란 서울이나 서울근교에 본가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란다. 아들은 집 나와 살면서 집세, 작업실비용, 물감 값, 통신비, 거기다 먹는 것까지 하면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 빚만 늘었다고 했다. 한숨 쉬는 아들을 나는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 청년들의 고민과 좌절 그리고 흐릿한 한줄기 빛 같은 희망을 읽으며 안타까웠다.


왜, 우리 아들은 그 좋은 머리로 예술을 하느라 고뇌에 휩싸여 있는 것일까. 왜, 더 야무지게 세상살이를 하지 못하는 걸까. 복합적인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왜 나는 말리지 않고 수용했을까. 왜, 왜, 왜. 수없이 왜라는 물음을 던지며 가슴 치며 후회했으며 나보다 먼저 두 팔 걷고 동조한 남편도 원망했다.


하지만 어미는 보살피고 품어주는 아이콘을 장착한 존재인 듯하다. 내 품 안으로 파고드는 자식을 내치지 못했고, 힘껏 도와 빚을 청산하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들은 고맙고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나름대로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고 암담했을까 싶은 마음에 힘닿는 대로 조력하기로 했다. 어릴 적에 속 하나 안 썩이고 순종적이던 아들을 떠올렸다. 어미로서 마음고생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이때 채워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 스스로 괴로울 때 있었다. 나의 자녀교육 방법이 잘못된 것도 같고, 남의 자식 가르치느라 내 자식을 제대로 못 가르친 것 같아 후회막급일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난 것에 연연한 것처럼 어리석은 게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 할 수 없다. 그 빚에서 어서 벗어나 광명 찾도록 도와야 하는 게 어미가 할 일이다, 그렇게 하자.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는 마음과 도울 마음이 교차되어 천국과 지옥을 순례했다.


그랬던 아들이 육 개월 전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이제 생활비를 내고 있다. 안 내도 된다고 했으나 아들은 부득부득 낸다. 그러면서 말한다. 가성비 좋은 하숙집이라고. 그 말에 난 쿡쿡 웃는다. 필요한 생필품 대부분을 택배로 주문하면서도 말한다. 가성비 좋은 하숙 하면서 이런 것 정도는 사야죠,라고. 그러면 또 우리는 웃는다. 어쩌다 하는 외식비도 항상 아들이 낸다. 그때도 말한다. 가성비 좋은 하숙생이 이거라도 해야죠. 갚아야 할 빚이 없는 것만 해도 행복한 듯하다.


아들은 지금 저축을 열심히 하고 있다. 월급의 80% 이상이다. 조직의 쓴 맛 아니 빚의 쓴 맛을 아는 듯하다. 다시는 1원도 빚을 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단다. 한동안 쉬는 날 하루 없이 거의 12시간씩 강의를 하더니 요즘엔 학기 중이라 줄어서 한숨 돌렸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 아들이 가끔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를 막론하고 각자 삶을 바카라임지고 살아야 하기에 지켜보고 있을 뿐, 깊이 개입하지 않는다.


십여 년 밖에 나가 살면서 아들은 자유를 누림과 동시에 고생도 많이 한 것 같다. 이젠 나갈 생각이 전혀 없단다. 집이 이렇게 편하고 행복한 줄 미처 몰랐다며, ‘집수저’의 특권을 이젠 마음껏 누리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특권인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독립해서 살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의미리라. 내가 싫어하는 게 일명 ‘수저론’이다. 집수저라는 말은 아들에게 처음 들었는데, 청년들 사이에선 자주 회자된단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서 이젠 집수저까지 나왔다니 우스우면서도 씁쓸하다.


나는 가성비 좋은 하숙집 주인이 되었다. 하숙생인지 세입자인지 동거인인지 알 수 없던 아들이 집수저 특권을(?) 발판 삼아 빚을 청산하고 생활비를 내면서 살고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기승전결혼’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는다. 지금 아들이 행복하다니.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함함해한다는데 나도 요즘 그렇다. 그나저나 받고 있는 생활비를 써야 하나 모아서 돌려줘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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