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

by최명숙


우리는 누구든 나가는 한 사람을 배웅한다. 그것도 승강기 앞까지 나와서. 그 시각이 새벽이든 아침이든 오후든 저녁이든 상관없다. 누구든 나가게 되면 앉았다가, 밥 먹다가, 바카라 읽다가, 글 쓰다가, 심지어 화장실에 있다가도 ‘잠깐만!’ 소리치며 나와서 배웅한다. 대중가요 ‘잠깐만’은 부르지 못하지만 외치는 건 잘한다. 잠깐만! 하면 나가려던 사람이 잠깐 멈춘다. 그러면 후다닥 승강기 앞까지 나간다.


요즘엔 찬바람이 훅 끼쳐 오는데 그래도 승강기가 올라와 멈추고 탈 때까지 옆에서 기다린다. 짧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잔소리 같지 않은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적 없다. 무슨 말이든 한다, 아주 시답잖은 말이라도. 언제 오는지 춥진 않은지 피곤하진 않은지, 뭐 그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주절거리다 보면 승강기가 올라오고, 나가는 사람은 승강기 안으로 들어가고, 밖에 있는 사람과 서로 손을 흔들고, 싱긋 웃으며 인사한다.


이쯤이면 아주 다정한 신혼부부 모습이 연상될지 모른다. 적어도 둘 사이가 아주 좋은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라도. 솔직히 가족 구성원들이 이렇게 배웅하는 일이 있던가. 온이네 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것도, 아주 가끔. 그런데 우리 집에선 하루에 꼭 한 번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아주 각별한 모자 사이라고 할 순 없다. 개성이 강한 우린 부딪칠 때 있으므로.


아들이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생긴 습관이다. 다른 건 몰라도 들고 날 때만큼은 우리는 서로 행선지를 알리고 배웅도 한다. 한 집에 사는 식구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바쁜 세상에 우리도 참 무슨 일인가 싶을 때 있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진 않다. 십여 년 이상 독립해 살던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미로서. 그래서 출근할 때 배웅하게 되었는데 이년 반이 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배웅이 번폐스럽거나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전선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따뜻한 어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도 아니다. 그냥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이젠 아들이 출근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자동적으로 몸이 벌떡 일어나진다. 신혼 때도 남편에게 해본 적 없고, 살면서도 그래본 적 없는데. 아들에게 대단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식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마음일 뿐이다.


아들이 휴무일일 때 내가 출강하게 되면 배웅한다. 그냥 있어, 나오지 마!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선다. 누워 있다가도, 작업하다가도, 화장실에 있다가도, 나 다녀올게 하면 후다닥 일어나 나온다. 정말 안 나와도 된다니까 그러네, 못마땅한 듯 말해도 아들은 싱그레 웃으며 말한다. 엄마가 나가시는데 어떻게 방에 있어요, 참! 따뜻하다, 그 말이. 승강기 앞에서 잘 다녀오시라고, 잘 챙겨 먹으라고, 서로 염려하는 인사를 나누며 배웅하고 배웅을 받는다.


서로에게 섭섭하거나 마음이 언짢더라도 배웅만큼은 꼭 한다.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라 해도 의견 차이가 날 수 있고 섭섭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만큼 같이 지내다 보니 서로에 대하여 웬만큼 파악이 된 듯하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서로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삼간다. 일종의 배려다. 부모자식 간이라 해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야 알고 행하게 되었다는 게 애석하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배웅과 배려, 내포된 뜻이 형제처럼 닮았다.


오늘 아침에도 아들은 6시 50분에 출근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승강기 앞까지 나갔고 승강기가 올라오는 동안 춥지 않은지, 빠뜨린 건 없는지, 도시락은 잘 넣었는지, 조심해 다니라는 둥 별로 쓸데없는 말을 몇 마디 주워섬겼다. 아들은 시답잖은 나의 물음에 네, 그럼요, 알겠어요, 역시 시답잖은 답변을 했다. 승강기가 멈추고 열리자 아들은 탔다. 우리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승강기는 닫혔다. 승강기 내려가는 기계음이 들리고 나는 바깥 찬 기운에 몸을 움츠리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따뜻하다. 나의 작은 배려로 아들의 마음에도 따스한 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랐다.


컴퓨터를 부팅하고 백일백장 과제하기 위해 생각들을 끌어 모은다. 뭘 쓰지? 그래, 오늘은 ‘배웅’이다. 글감이 잡히자 망설이지 않고 자판을 두드린다. 내 사유의 조각들이 화면에 선명하게 박힌다. 쓰면서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나는 이만하면 아주 정답게 동거 중이라는 걸. 함께 사는 동안엔 더 배려하고 모자간의 정을 나누며 살리라. 아, 그래도 아들이 얼른 결혼했으면 좋겠다. 아들만 생각하면 기승전결혼인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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