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산수국이다. 나비나 별이라 불러도 잘 어울릴 보라색과 연분홍색의 겹꽃들이 꽃봉오리 주변에서 날아오르듯 화려하게 피어난다. 푸른 잎사귀에서는 싱그러운 생기가 가득 느껴진다.
몇 년 전, 광양의 '하조나라'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펜션과 카페를 운영하는 그곳의 여사장님은 나와 글벗이다. 마을을 끼고 도는 계곡은 수량이 풍부하고 경치도 빼어나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그곳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수국이다. 울창한 숲 사이사이에 심어진 수국은 6월 초에 피어나 늦은 여름까지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당시 글벗은 나에게 수국 화분을 선물했다. 2~3년은 족히 자랐을 법한 크기에 잎에는 생기가 돌고 줄기도 풍성했다. 그 화분을 아파트에서 키우다가 정읍 시골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 아무래도 넓은 땅에서 자라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고,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몇 달 후 다시 찾은 마당에는 앙상한 줄기만 남아 있었다. 다음 해 가득 피어날 수국을 상상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올해 다시 수국을 사다 심었다. 이번에는 마당에서 가장 양지바르고 흙이 좋은 데를 골랐다. 얼마 후 꽃은 피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상상하던 풍성한 자태는 아니었다. 그러다 지난 6월, 수국으로 유명한 나주 느러지전망대에 깄다. 울창한 나무 그늘 밑에 심어진 수국들은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중이었는데도 유난히 튼실하고 탐스러웠다.
문득 수국의 '수'자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빼어날 수(秀)'나 '물 수(水)' 중 하나일 거라 짐작만 할 뿐이었는데, 찾아보니 정답은 '물 수(水)'였다. 이름 그대로 물을 무척 좋아하는 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곳들은 모두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 습기를 촉촉하게 머금은 땅이었다.
나는 수국의 본성도 모른 채, 그저 내 기준에 맞춰 해가 잘 드는 곳에만 심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삶의 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치나 종교, 교육처럼 인간이 얽혀 만든 거대하고 복잡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만의 잣대로 타인을 재단하고 규정해 왔던가. 대상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내 욕심만 앞세웠던 서툰 날들이 부끄럽게 떠올랐다.
느러지전망대에서 만난 튼실한 수국은, 내 기준에서 가장 좋은 '양지바른 곳'만을 고집했던 나의 맹목적인 사랑을 일깨우며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귀한 깨달음을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