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우리들의 방과 후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미래소년 코난>을 기다리며 채워졌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갇혀 지내는 요즈음 아이들과 달리, 그 시절 우리들은 다른 세상을 접하기 어려웠다. 그 만화 영화들은 그대로 우리의 꿈이 되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뚫고 나온 소년들의 모험심은 내 마음에도 가득차 있었다.
우리는 가끔 자전거를 타고 줄포 바다를 향했다. 편도 8킬로미터(km)가 넘는 길이었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힘들지도, 지겹지도 않았다. 마침내 마주한 줄포 갯벌은 작은 게들의 천국이었다. 아주 작은 숨소리에도 수천 마리의 게들이 정말 '게 눈 감추듯' 진흙 구멍 속으로 사라지던 풍경이 아직도 선하다. 친구들과 진흙구멍을 헤집으며 두세 시간쯤 뒹굴고 나면 검은 비닐봉지가 묵직해졌다.
한번은 갯벌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는 우리에게 동네 어르신이 다가왔다. "얘들아, 조금 있으면 물때가 바뀐다. 항상 조심해야 해. 여기서 사고가 난 적이 여러 번 있단다." 그때는 그 충고가 그저 잔소리 같아 흘려들었다. 하지만 공직에 들어와 쉰이 된, 인생의 중반전을 지나고 있는 요즘에야 비로소 그 어르신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 삶의 지혜였는지 새삼 깨닫는다.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있듯, 인생에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흐름과 '물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스물여덟이라는 청춘의 입구에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치열하게 달린 끝에 마흔다섯이라는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사무관(5급)이 되었다. 승진 후 첫 희망지를 써낼 때, 내 마음은 부안으로 향했다. 시골집과 가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줄포 바다의 추억이 가슴 깊은 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첫 물때는 나를 부안으로 이끌지 않았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집이 있는 목포였다. 돌아보니 그 또한 삶이 내게 준 가장 다행스러운 물때였다. 목포에 머문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이라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하는 아들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아빠로서 한 일이라곤 주말마다 기숙사에서 아들을 데려오고 다시 데려다주는 단조로운 일과가 전부였다. 그 시절의 공기를 아들과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눈물겹게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올해는 평소보다 사무관 인사 발령이 늦어졌다. 4월말이 다 되어서야 희망지 조사가 이뤄졌다. 이번에도 부안이 아른거렸다. 마음 한구석에는 또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도 엄습했다. '제주든 사천이든 국가가 가라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며 애써 마음을 비워내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문이 들려왔다. 동해로 발령이 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연고도 없는 낯선 동해 바다라니, 거기까지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복도로 나와 떨리는 손으로 인사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차라리 제주도로 보내달라고 애원이라도 할 참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의외의 덤덤한 답변이 돌아왔다.
"황 사무관은 부안으로 갈 것 같은데..."
그 순간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따스한 줄포 바다의 바람으로 바뀌는 듯했다. 멀리 돌아오느라 조금 늦었을 뿐, 내 인생의 물때는 결국 나를 자전거를 타던 그 소년의 바다로 다시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해의 밀물이 갯벌의 빈 구멍들을 하나씩 채우듯, 이곳 부안에서의 온라인 게임 생활은 따뜻하게 채워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