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출발
8월 14일, 말복이었다. 아침 8시, 성당 옆 주차장에 열 사람이 하나둘 모였다. 오늘은 백두산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두 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청주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짐을 부친 뒤 출국 수속을 마쳤다. 11시 30분, 비행기에 올랐다.
양쪽에 세 좌석씩 놓인 작은 티웨이 항공기였다.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고 2시간 30분쯤 지나 중국 땅에 내려앉았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는 24인승 봉고차였다. 열 명의 일행과 기사님, 가이드가 함께 3박 4일을 움직였다. 차창 밖으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첫날 우리가 머문 곳은 이도백하였다. 백두산을 오르기 전 머무는 작은 신도시 같은 곳이었다. 주민들이 모여 살고 호텔도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신호등이 두 개뿐이라는 말에는 웃음이 나왔다. 차창 밖으로 터널이 이어졌다. 선봉리 제2터널은 7.3km 정도로 제1터널보다 조금 길다고 했다. 그렇게 길을 달릴수록 백두산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이드는 연변조선족의 삶과 중국의 역사, 그리고 빠르게 변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서 선전의 발전,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 자율주행차와 배달·청소 로봇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만강 주변과 시인 윤동주생가 그리고 용두레 우물
두만강 너머에는 북한이 있었다. 첫날 우리는 두만강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 건너편은 북한이었다. 약간은 탁해 보이는 물 위로 유람선이 천천히 지나갔다. 강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만 먹으면 헤엄쳐 건널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리였다. 강 건너편에는 건물들이 보였다. 하지만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곳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찾았다. 윤동주 문학관과 생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곳곳의 돌과 바닥에는 시인의 시와 그를 기리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특히 커다란 돌비석에 새겨진 시인의 얼굴과 「서시」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포즈로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피어 있는 백일홍은 오래된 생가와 어우러져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타국에서 만난 우리 시인의 흔적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용두레 우물이었다. 우리나라의 옛 시골에서 보았던 우물과 비슷했다. 예전에는 기우제를 지내며 비가 오기를 빌었던 곳이라고 한다. 크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 오래된 우물 하나도 문화유산으로 잘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런 작은 장소에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들을 만날 때가 있다.
첫날 저녁은 버섯과 양파, 두부, 쑥갓이 듬뿍 들어간 불고기 전골이었다. 감자볶음, 마른 호박, 콩나물, 두부, 미역귀, 돼지고기 볶음까지. 낯선 중국 땅이었지만 식탁에 오른 음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차에 올라 도시의 야경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거리는 화려했다. 환하게 밝혀진 가로등과 건물의 불빛이 차창 밖으로 흘러갔다.
백두산 1442개의 계단을 오르며
다음 날의 목적지는 백두산 서파였다. 백두산에 들어가기까지 기다림이 길었다.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서파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점심은 간편하게 야채 비빔밥을 먹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였다. 잠시 쉬었다가 11시 30분쯤 백두산 서파에 입장했다 천지까지 올라가려면 144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었다. 올라가기 힘든 사람들은 가마를 이용하기도 했다.
앞뒤에서 남자 두 분이 한 사람을 가마에 태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가마를 메는 사람들의 수고와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도 중간중간 쉬어가며 한 계단씩 올랐다.
연신 땀을 닦았다. 앉을 곳이 보이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었다. 중간쯤 올라가니 붉은 천들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다. 가족과 자신의 소원을 적어 걸어놓은 것 같았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기도 힘든 백두산에 왔으니 모두 꼭 천지로 보고 가고 싶었다. 천지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끝없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마침내, 천지
오늘은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그 희망 하나로 사람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찰량의 다른 자매들은 먼저 올라가 있었다. 우리는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다시 힘을 냈다. 그리고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올라섰을 때였다. 멀리서 지인들의 얼굴이 보였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우리는 서로 얼싸안았다.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끼리 감격의 기쁨을 나누며 사진을 찍었다.
이레나가 천지 쪽에 가서 사진을 찍자고 이끌어 주었다. 사람들이 바싹 붙어 서 있어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았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기필코 지켜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잠시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사정을 해도 한 번 잡은 자리는 쉽게 내주지 않았다. 악착같이 그곳을 지킬 만큼 천지는 모두에게 그런 장소인 듯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사진을 찍고 일행과 합류했다. 그래도 힘겹게 땀을 흘리며 끝까지 올라오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천지가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 마침내 천지를 마주했을 때,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늘과 산 사이에 고요하게 자리한 물.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그곳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백두산은 한 나라의 산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산. 그리고 지금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 천지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산의 이름과 경계는 사람이 정하지만, 산 자체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있다. 사람은 산을 나누고 경계를 긋지만 물은 경계를 모른다. 하늘도 국경을 모른다. 그리고 산은 오늘도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무제한 삼겹살과 마사지숍
저녁에는 돼지고기 삼겹살과 목살을 먹었다. 좋은 고기는 아니었지만 무제한으로 함께 먹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상추와 야채, 반찬을 마음껏 가져다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낮에 다녀온 천지 이야기와 계단을 오르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평소 술과 고기를 잘 먹지 않는 김아녜스도 이날은 목살을 안주 삼아 고량주를 조금 마셨다. 몇몇은 맥주를 마셨지만 다들 술에는 약해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마사지숍으로 향했다. 밖에는 과일을 파는 사람들과 마사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의자에 앉아 기다리자 빨간 수박을 쟁반 가득 썰어 주었다.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기다리다가 몇 사람씩 마사지실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누워 발을 따뜻한 물에 담갔다.
하루 종일 고생한 발을 풀어주는 듯했다. 마사지사의 손길이 온몸을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한 마사지사의 팔에 든 멍을 보게 되었다. 이유를 물으니 남편에게 맞은 흔적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일행 마사지사는 자신도 그래서 이혼했다며 헤어지라고 말했다. 우리는 참지 말라며 함께 안타까워하고 분개했다. 낯선 땅에서 만난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의 끝, 말씀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은 성모승천 대축일이었다. 여행 때문에 미사에 참례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냥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본당 전 전례부장과 차장, 그리고 현 전례부원들이 함께하고 있었기에 숙소에서 말씀의 전례를 하기로 했다. 독서와 복음을 읽고, 오늘의 여행에서 느낀 점과 천지를 본 소감, 그리고 말씀을 통해 마음에 와닿은 것을 서로 나누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마음만 들여다볼 때는 알 수 없었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허그로 기쁨을 나누었다.
참 이상했다. 하루 종일 1442개의 계단을 오르고 땀을 흘렸고, 몸은 몹시 피곤했는데 마음은 오히려 따뜻하고 뿌듯했다. 천지를 보고 온 하루의 끝을 말씀과 나눔, 기도로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천지를 만나러 갔는데, 그날 우리는 서로의 마음도 만났다. 피곤한 몸을 누이며 하루를 돌아본다. 백두산의 천지도 오래 기억에 남겠지만, 그날 열 사람이 함께 나눈 웃음과 땀, 그리고 기도 역시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광복절이며 성모승천 대축일에 1442개의 계단 끝에서 만난 천지는.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