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모두 의식에 술을 쓰는 이유는?

술로보는 동서양의 공통점

by명욱


명절 시즌이 되면 차례주를 찾는 수요가 부쩍 올라간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차례, 성묘 등 조상님께 술을 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고려 및 조선 초기 간소화된 의식에서 차를 올리기도 했지만, 이내 술로 바뀌게 된다.


종묘제례를 보면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라고 불리는데 일반적으로 탁주, 동동주, 청주를 올리는 등 총 3번을 올린다. 하지만 차례 및 제사 등은 간소화 절차에 따라 한 번만 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상들 및 신에 대한 제의식은 동서양 모두 술을 올렸을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농업을 영위하기 이전부터 인류는 제의식에 술을 올렸다.


현재까지 나온 가장 오래된 발효주(제의용) 증거는 이스라엘 라케페트 동굴(Raqefet Cave)에서 나온 약 1만3000년 전 나투프인(Natufian)의 맥주 찌꺼기다. 돌절구에 남은 잔여물을 분석한 결과 죽음을 기리는 의례적 향연(ritual feasting)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논문(Liu et al., 2018)이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가톨릭 미사에서 매주 와인으로 성찬식을 진행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제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술 대신 맥주를 썼을 뿐, 고대 게르만족의 제의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서양 모두 왜 술로 이러한 의식을 진행했을까?


첫 번째로 술이 빚어진다는 것 자체가 신의 섭리였다.

지금은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 발효를 한다는 메커니즘이 밝혀졌지만, 이것은 19세기 프랑스의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발견한 이야기다. 즉 이전까지는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히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효모는 공기 중에 많은데, 그들이 뭉쳐있지 않는 한 거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당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어내고 부산물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보며 인간은 신의 섭리로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신이 만든 피조물을 신에게 바치며 제의를 진행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효모.jpg출아법으로 증식하는 효모. 당을 먹고 알코올을 배출하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진 nutri.fandom.com


두 번째는 술 자체가 가진 물질의 변화였다.

술은 완성되기 이전에는 단순한 달콤한 수분이었다. 곡주의 경우는 식혜와 같은 상태가 많았고, 와인과 같은 과실주는 과일 주스와 같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알코올이 발효되면서 물질 자체가 완전히 다르게 된다. 이것은 전과 후가 다르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즉, 술이 되기 전에는 단순한 음료, 술이 되고 난 이후에는 인간을 취하게 하는 물질이 되는 것이다. 제의를 통해 이 술을 마시게 되면, 마신 당사자도 다르게 되는 것이다.


2019052702207_0.jpg와인이 되기 전에는 단순한 포도주스 및 포도였다. 알코올이 생기는 순간 저장성이 높아지며, 다른 물질이 된다. 이것을 통해 전과 후가 다른 물질의 상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술을 통해 약속을 진행했다. 복숭아밭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술과 고기를 차려 하늘과 땅에 올리며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고 맹세한 삼국지의 도원결의도 그렇다. 신이 강림하여 증인이 된다는 의식도 깔려 있을 수 있다. 게르만족의 맥주 문화에서도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대 노르드어로 숨벨(sumbel)이라는 의식인데 이건 술잔(뿔잔)을 돌리며 세 번에 걸쳐 신·조상·자기 자신에게 축배와 맹세를 올리는 절차다.


특히 숨벨 도중에 오간 말과 맹세는 단순한 농담이나 가벼운 수다가 아니었다. 게르만 세계관에서 숨벨 중에 내뱉은 말은 운명의 우물(Well of Wyrd)에서 노른(Norn)들이 짜는 운명의 실에 새겨진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거짓 맹세를 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엄청난 불명예와 슬롯적 추방으로 이어졌다.


전쟁과 약탈,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게르만 전사들과 부족민들에게 숨벨은 서로 간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유대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강력한 슬롯적 장치였다. 숨벨이든, 도원결의든, 결혼식의 합환주든, 신을 증인 삼아 술로 맹세하고 유대를 다지는 문화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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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결의 및 북유럽의 숨벨이라는 건배 문화 역시 신을 증인 삼아 맹세하고 유대하는 문화 그대로를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도 다른 면에서 일상의 제의식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위하여라고 부르며 건배를 올리는 날에도 알고 보면 신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의식일 수 있다. 이 의식이 파생되어 행사에 술이 쓰인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전통 혼례의 합환주(合歡酒)다. 표주박 하나를 둘로 쪼개 신랑 신부가 각자 술을 따라 나눠 마시는데, 원래 하나였던 박이 술로 인해 다시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마신 후와 마시기 전이 달라지고, 그 달라지는 것을 통해 앞으로는 새로운 관계, 달라진 관계라는 의식을 진행한 것이다.


와인은 여기에 신의 피라는 붉은 색까지 더했다. 이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와인은 와인의 여신 게스틴의 피라고 이미 선언을 했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들과 싸우다 쓰러진 선조들의 피가 땅에 스며 포도나무가 됐다고 믿어 와인을 멀리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가 전한 것이다.


또 포도를 짓밟으면서 즙을 짜내는 과정을 거치며 죽음이라는 상징으로 봤고, 이것이 다시 알코올이 생기며 그윽한 와인으로 변화하는 것을 부활이라고 봤다. 이 죽음과 부활의 상징은 그리스·로마의 디오니소스(바쿠스) 신화로, 다시 기독교의 성찬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알코올로 인한 보존성까지 더해지면서, 이 보존성이 영생으로 이어져 기독교의 상징적인 술이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1215년에는 라테라노공의회에서 아예 화체설이라고 하여 와인이 예수의 피라고 정해버린다.


IMG_4550.jpg가톨릭에서 미사를 올리는 모습. 가톨릭에서는 1215년 라테라노공의회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실체변화한다는 화체설을 교리로 공식 확정했다. 사진 Una Voce


세 번째는 술을 올리는 것 자체가 신을 부른다는 의미

종묘제례의 강신(降神) 절차가 그렇다. 향을 피워 하늘의 혼(魂)을 부르고, 모사(茅沙)에 술을 부어 땅의 백(魄)을 부른다. 마시는 게 아니라 바치는 것 자체로 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종묘제례는 총 4번의 술을 올린다고도 볼 수 있다. 서양의 디오니소스 숭배는 반대로 마시는 쪽에 가깝다. 와인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여겼다.


네 번째는 귀한 음료인 술을 통해 의식의 가치를 강화했다.

제의식은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 달, 국가의 경우 몇 년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만큼 행해지는 모든 절차가 중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소중한 행사에 단순히 단순한 음료가 아닌, 짧게는 수십 일, 길게는 수년을 통해 만들어지는 귀한 술을 올림으로써 의식을 강화하고, 그날의 기억과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술은 신과 조상, 그리고 사람 사이의 약속까지 아우르는 매개체였다.


그렇다면 이번 차례주는 어떤 술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을까? 차례는 원래 주다례라고 해서 낮에 하는 간소한 제의식이다. 고려시대에는 차를 올리기도 했지만, 성리학이 확대되면서 불교의 상징으로 몰린 차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집에서 빚은 술이었다. 제사나 차례를 위한 자가양조, 즉 가양주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명절에 가장 좋은 술이란?

지금도 만약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최고의 술을 물어본다면 직접 빚은 술이 가장 좋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바쁜 현대 시대에 술까지 빚을 여유가 없다면, 내 고향과 본적을 생각해보면 된다.


결국 추석에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간다는 의미는 내 본질을 따라간다는 모든 동물의 회귀본능에 있다. 그렇다면 고향의 음식 맛을 본다면 술도 고향의 술로 올리는 것이 가장 잘 맞을 것이다. 고향이 수도권이라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서울의 무형문화재 술인 삼해주나 경기도 무형문화재 술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또 당장 우리 지역이 아니라도 같은 도 영역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경북이라면 안동소주, 충남권이라면 소곡주, 제주도라면 오메기술, 경남이라면 솔송주 등, 우리 지역의 전통주를 찾아보는 것도 이번 추석의 묘미가 될 수 있다. 물론 조상님이 양주를 좋아하셨다면 양주를 올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PS: 해당 글은 주간동아에 연재하고 있는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의 내용을 추가 및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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