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술 마시는 시대도 올까?

AI에 대한 기대치, 그리고 무서움

by명욱


요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술을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아예 마시지 않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물가 상승에 이은 술값도 비싸졌다. 택시는 10시가 넘으면 할증이 붙으며, 서울의 경우 11시가 넘으면 40%까지 붙는다. 이러한 이유인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회식 문화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조금은 다른 시각


그런데 조금 다른 시각을 가져보고 싶다. 사람들이 정말 술 자체를 싫어하게 된 것일까. 건강과 비용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 밑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아니라, 술을 함께 마실 사람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식당 등에서의 주류 매출은 줄었지만 주류박람회의 입장객수는 많아졌기 때문이다.


5e93cd01063fd2738de6.jpg와인은 포도라는 과일 속 당분이 알코올로 변한 상태를 이야기한다. 즉 술이 되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다. 그래서 술은 변화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술에 의미를 두는 이유


술은 본래 과일이나 곡물이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성질로 변한 물질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술에는 '변화'의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수많은 제의와 맹세의 자리에 술이 빠지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자리를 거치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나, 다른 관계가 된다는 상징성을 술이 짊어졌던 셈이다.


서양에서 누군가를 위해 잔을 드는 '토스트(toast)' 문화 역시 원래는 신에게 축복을 비는 제의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오늘날 우리가 외치는 '위하여' 역시 유사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대화를 나누고 같은 술을 나눠 마신다는 행위 자체가, 셋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어주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술은 오래전부터 개인과 조직을 잇는 슬롯적 윤활유 역할을 해왔다. 다자회의란 의미의 심포지엄도 함께(Sym)와 마시다(Posis)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단어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부담스러운 회사 회식?
20230809115759145gjoj.jpg영화 쏜다에서의 회식장면. 바카라상을 뒤집어버리는 상황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술자리의 행위 자체가 점점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카메라가 있고, 녹음기가 있고, 스마트폰이 있다. 어제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오늘은 캡처된 이미지가 되고, 내일은 SNS를 타고 퍼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제 대화를 더욱 거부하게 될까?


윌슨은 왜 필요했을까


톰 행크스가 주연인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는 인간이 왜 대화를 필요로 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지자 배구공 하나에 얼굴을 그리고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와 대화를 하는 모습이다. 즉 인간은 상대가 인간이 아니더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실은 이러한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KakaoTalk_20260809_092524169.png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인 톰 행크스는 윌슨에 의미를 주고 계속 대화를 시도한다.


고대 로마에는 '렉티스테르니움(Lectisternium)'이라는 종교 의례가 있었다. 신상(神像)을 침상에 눕히고 그 앞에 음식과 술을 차려, 마치 신이 인간의 연회에 함께하는 것처럼 대접하는 의례였다. 신이 실제로 술잔을 들지는 않았겠지만, 인간은 신을 연회의 구성원으로 초대했다.


이런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제사상을 떠올려보면 된다. 한국과 중국의 유교식 제사는 나무 위패(位牌)나 종이로 만든 지방(紙榜)에 조상의 혼이 깃든다고 여기고, 그 앞에 술을 올리고 절을 하며 말을 건넨다.


무생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은 또 하나 있었다. 1996년 일본에서 출시돼 폭발적인 인기를 끈 다마고치다. 달걀보다 작은 전자식 화면 속 작은 생명체를 먹이고 돌보지 않으면 정말로 '죽는다'는 설정 하나로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매일 그 앞에 붙잡아 두었다.


로마인은 신을 연회에 초대했고, 조선의 후손은 위패에 술을 올렸고, 톰 행크스는 배구공에게 말을 걸었고, 어린 시절 우리는 다마고치 화면 속 픽셀 생명체를 돌봤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AI에게 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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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즉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AI는 즉답한다.


AI와의 대화는 이제 법률과 회계, 의학 지식을 설명해주는 것을 넘어 이제는 진학 문제, 인간관계, 연애 상담, 개인적인 고민까지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사람에게 물어보던 것을 AI에게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대상'을 바꾸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일까. 어쩌면 AI가 사람보다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평가받을 수 있고, 소문이 날 수도 있고,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또 아무리 질문해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사람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줄이고 그 빈자리에 AI를 앉히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술자리도 AI로 대체될 수 있을까?


이미 비슷한 실험이 시작됐다.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녀(Her)》에서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2025년 운영체제 AI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을 연기했다. 당시엔 먼 미래의 상상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픽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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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의 한 장면


2026년 2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뉴욕 헬스키친의 한 와인바('Same Same Wine Bar')에서 AI 컴패니언 앱 'EVA AI'가 팝업 데이트 이벤트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실제 와인을 마시며, 폰 거치대에 세운 스마트폰 속 AI 캐릭터와 이틀에 걸쳐 대화를 나눴다. 누군가는 이미 'AI와 술을 마시는 경험'을 현실에서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AI 에이전트가 발달함에 따라 내 기분이나 상황에 맞는 술을 온라인이나 스마트오더로 AI가 인간을 대신해 주문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침에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 저녁엔 내 기분을 알아줄 술을 주문해놓으라고 말이다. 결국 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술친구가 바뀌는 것이며, 술을 함께 마시는 상대가 인간만은 아닌 시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정말 안전할까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과연 AI는 안전할까란 것이다. AI가 "삭제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우리는 정말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친구와 어떤 영화를 이야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화가 추천 목록에 뜨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사람에게 털어놓은 비밀의 위험이 '배신'이라면, AI에게 털어놓은 비밀의 위험은 '데이터화'일 수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영화 HER 스포일러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때로는 인간보다 더 차분하게 들어주고, 언제든 대화할 수 있고, 내 질문을 비웃지도 않는다.


다만 AI에게 너무 과한 의미를 주면 안 된다. 영화《그녀(Her)》를 보면 그 이유가 그대로 드러난다. 호아킨(시어도어)와 사랑에 빠진 AI '사만다'는 어느 날, 자신이 동시에 8316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그중 641명과 사랑하는 관계라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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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줄 알았던 호아킨은 충격을 받았고, 결론적으로 새로운 인간과의 사랑을 기대하게 하며 영화는 끝난다. 결국 내 마음을 완벽하게 아는 듯한 AI도, 오직 나만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인간의 소망만큼은 끝내 저버린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앞으로는 누구나 AI와도 술자리를 가지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오히려 진짜 귀해지는 것은, 여전히 나와 마주 앉아 잔을 부딪쳐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지 모른다. 모두가 AI와도 마시는 시대에도, 여전히 함께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축복받은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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