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회계연도는 왜 4월에 시작될까?

만우절과 와인이 이어지는 남다른 스토리

by명욱

영국의 회계연도는 왜 4월에 시작될까? 만우절과 와인의 인문학


찰나의 시간, 어느덧 2026년의 1분기가 지나고 4월 말에 들어섰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하며 세웠던 원대한 계획들이 어느덧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자바카라하기엔 아직 이르다. 인류 역사에서 ‘진정한 새해’는 오랫동안 1월이 아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그 흔적은 뚜렷하다. 영국의 공식적인 새해는 1월 1일이지만, 정부의 예산 집행과 세금 계산의 기준이 되는 회계연도는 여전히 4월 1일에 시작된다. 영국이 4월을 회계의 기점으로 삼게 된 배경에는 복잡한 역사가 얽혀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16세기까지 3월 25일을 새해 첫날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행정적 혼란을 법적으로 정리한 인물이 바로 샤를 9세다. 그는 1564년 ‘루시용 칙령(Edict of Roussillon)’을 선포하며 프랑스 전역의 새해를 1월 1일로 통일할 것을 명령했다. 이때 재미있는 풍습이 생겨났다. 날짜가 바뀐 것을 모르거나 여전히 4월 1일에 새해 인사를 나누며 선물을 보내는 이들을 ‘4월의 바보’라고 부르며 놀린 것이 오늘날 만우절의 유래 중 하나로 전해진다.


이후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그레고리력을 통해 신년 체계를 공고히 했으나, 성공회를 통해 가톨릭과 거리를 둔 영국은 교황의 달력을 거부하며 고집스럽게 3월 새해를 고수하다 1752년에서야 이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날짜 오차를 조정하고 세수 손실을 막기 위해 영국의 조세 및 회계연도는 자연스럽게 4월 초에 정착되었다.


왜 하필 3월이었을까?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성모 영보와 부활절이 맞물린 ‘생명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지만, 그 뿌리를 더 깊이 파고들면 유럽 문화의 근간인 고대 그리스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Dionysus)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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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가 1595년경에 그린 <바쿠스(Bacchus)>이다. 로마 신화의 술의 신 바쿠스(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를 묘사한 작품으로,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디오니소스는 부활한 자

디오니소스는 ‘두 번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그의 탄생 설화는 처절하고 드라마틱하다. 제우스는 인간 세멜레와 사랑에 빠졌으나, 정실부인 헤라는 유모로 변신해 세멜레에게 “당신의 연인이 정말 신이 맞느냐”며 교묘한 의구심을 심었다. 불안해진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신들조차 거역할 수 없는 ‘스틱스강의 맹세’를 받아낸 뒤 본모습을 보여달라 요구했다.


문제는 그의 본모습은 강렬한 번개를 동반한다는 것. 결국 그녀는 제우스의 강렬한 번개 불꽃에 타 죽고 만다. 하지만 세멜레는 홀몸이 아니었다. 그것을 발견한 제우스는 태아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를 넣고 남은 기간을 키워 탄생시켰다.


포도재배의 습성을 본다면 이 신화는 놀라운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포도는 씨앗을 뿌려 재배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새로운 꽃가루가 날아와 수정을 하여 형질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종류의 포도나무 줄기를 잘라 튼튼한 나무에 붙이는 ‘접붙이기(Grafting)’로 진행되고 있다.


즉, 세멜레의 배에서 디오니소스를 꺼내 제우스의 허벅지에 넣었다는 것은 포도나무에 다른 줄기를 접붙이기하는 포도 농사법과 매우 닮아 있다. 유사한 맥락은 성경에도 있다. 요한복음 15장의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부분이다. 훌륭한 나무에 붙은 가지만이 좋은 열매를 맺듯 신의 생명력에 의지해 결실을 보려 했던 고대인들의 염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번개의 축복과 이집트 오시리스의 부활

제우스의 번개 또한 흥미롭다. 과학적으로 번개는 공기 중의 질소를 지면에 고정해 땅의 지력을 회복시킨다. 북유럽 신화 속 토르(Thor)는 천둥의 신이면서도 농민들에게 중요한 존재였고, 풍요와 연결된 신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러한 코드는 이집트 농경과 부활, 그리고 와인의 신으로 이어지는 ‘오시리스(Osiris)’와도 이어진다.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살아난 오시리스는 파라오들이 영원한 생명과 통치의 정통성을 얻기 위해 닮고자 했던 신이다. 고대인들은 그가 부활해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봄이 오면 식물의 싹을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그의 몸을 칠하며 축제를 벌였다. 헤로도토스는 이 오시리스가 그리스로 건너와 디오니소스가 되었다고 기록했다.


축제에서 연극으로, 그리고 민주주의로

이 부활의 서사는 고대 아테네의 봄 신년 축제인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에서 절정을 이룬다. 꽃(Anthos)에서 유래한 이 축제는 매년 3월, 와인의 신을 맞이하는 의식이었다. 고대인들은 이 시기에 햇와인 항아리를 처음 개봉하며 축배를 들었는데, 이 신성한 술자리는 점차 신을 찬양하는 합창으로 이어진다.

이 합창은 다시 ‘비극 연극’의 모태가 되었다. 연극 속에는 권력자의 비극적 몰락이 담겨 있었고, 시민들은 와인의 신이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극을 보며 권력을 비판하고 토론하는 법을 익혔다. 이러한 토론과 비판이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일찍이 “와인 속에 진실이 있다(In vino veritas)”고 믿었다. 와인의 취기가 이성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본연을 드러낸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의한 카타르시스(Catharsis)와도 맥을 같이 한다.


주인공의 비극을 보며 눈물로 슬픔을 씻어내듯, 와인 한 잔에 억눌린 감정을 토해내며 위로받는 과정 또한 영혼을 정화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결국 연극과 와인 모두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슬롯를 정화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봄의 전령사, 로제 와인과 코냑의 새해

이러한 봄에 주목받는 와인이 바로 로제 와인이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중간 형태로 밝은 핑크빛을 한 로제 와인의 색은 마치 봄에 피어나는 꽃과 같은 이미지를 준다. 그래서 한 해 중 로제 와인의 매출이 가장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시기가 바로 이맘때다.


그래서 페어링되는 음식도 봄철 제철 식재료다. 대표적으로 아스파라거스나 아티초크, 그리고 부활절의 어린 양고기와 로제 와인의 조화는 미식가들이 1년을 기다려온 봄의 의식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의 고급 포도 증류주인 ‘코냑(Cognac)’에도 이맘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점이다. 코냑은 법적으로 3월 31일까지 반드시 모든 증류를 마쳐야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4월 1일을 기점으로 오크통 숙성 연도인 ‘콩트(Compte)’가 카운트된다. 아무리 일찍 증류하여 통에 넣었어도 4월이 되어야 비로소 한 살을 먹는 셈이다. 3월에 술의 문을 열고 4월부터 진정한 숙성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결국 진정한 시작은 봄부터라는 것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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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류를 증류해서 만드는 위스키는 숙성을 하는 순간부터 숙성년도에 들어간다. 하지만 와인을 증류해 만드는 코냑은 언제 숙성을 시작하더라도 4월 1일부터 숙성년도로 계산한다. 3월 말에 익은 와인을 열고, 새해인 4월부터 숙성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유럽의 새해가 4월부터라는 맥락과 이어진다.
다시 시작하는 봄의 새해

오늘날 1월 1일이 새해가 되었음에도 3월과 4월의 경계에는 이처럼 수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 영국의 회계 기준이 4월에 시작되는 것 역시 3월 말까지 한 주기를 마무리하려는 의도다. 우리 조상들이 지냈던 음력 설 또한 입춘과 맞물린 실질적인 봄의 시작이었으니, 동서양 모두에게 이 시기는 생명력의 관성이 작용하는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2026년의 첫 다짐이 흔들리고 있다면, 이제 막 숙성을 시작하는 코냑의 마음처럼 스스로를 다시 정립해보면 어떨까. 죽음 같은 겨울을 견디고 새싹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 포도나무처럼, 다시 시작할 ‘봄의 신년’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으니 말이다.


PS: 해당 내용은 KBS오늘아침1라디오에 출연하여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아래 링크도 같이 올려놓습니다.

봄에는 왜 와인을 마셔야할까_명욱 세종사이버대 교수_오늘 아침 1라디오 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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