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세 번째 자리

by송작가


맨체스터, 1893년 가을

집이 싼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수요일마다 모르는 사람이 저녁을 먹으러 와요.”

렌 부인은 누수나 곰팡이를 설명하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식탁에 놓인 수저 세 벌을 내려다보았다. 혼자 살 집을 찾는 중이었다.

“문을 안 열어주면요?”

“그럼 목요일에도 있어요.”

부인은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하나씩 잡아당겼다. 검은 장갑이었다. 오른손 엄지의 솔기가 벌어져 있었는데, 그녀는 그 부분을 안으로 접어 감췄다.

나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 건너 벽돌담에는 비에 젖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멀리서는 글자를 읽을 수 없었지만 종이 위쪽의 굵은 테두리와 아래쪽에 줄지어 붙은 작은 종잇조각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 셋방 광고였다. 지난 토요일 그와 비슷한 광고를 세 장 보았고, 세 군데 모두 이 집보다 비쌌다. 그중 한 곳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이 집의 주소를 적어준 사람은 사무실 맞은편 자리에 앉는 하웰이었다. 그는 내가 방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는 한참 생각하다 렌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직접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충분한 대답은 아니었다.

“목요일에 다시 온다는 뜻입니까?”

“제가 아는 바로는 기다린다는 뜻이에요.”

“어디서요?”

부인이 현관 쪽을 보았다.

복도 끝으로 보이는 문에는 아래쪽에 짧은 빗장이 달려 있었다. 빗장을 받치는 쇠붙이 주변만 유난히 새 목재였다. 나는 집에 들어올 때 그것을 보아두었다. 당시에는 동네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입자가 그렇게 했군요.”

“한 번.”

“경찰을 부르지는 않았습니까?”

“부르겠다고는 했어요.”

그녀는 장갑을 가방에 넣었다. 더 물으면 집을 보여주는 일을 그만두겠다는 몸짓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방의 잠금쇠는 닫지 않았다. 나는 그 차이를 마음에 두었다.

집 안에는 가구가 남아 있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식당에는 식탁과 의자 세 개, 모서리가 깨진 찬장이 있었다. 위층에는 침대와 세숫대가 놓인 방 하나, 창문이 뒤뜰을 향한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작은 방에는 바카라상을 놓을 수 있었다.

그 방 때문에 나는 아직 여기 있었다.

“식사를 차려줘야 한다는 조건입니까?”

“당신이 드시는 것과 같은 걸로요. 대접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저녁을 거르면요?”

렌 부인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았다. 내 옷깃과 소매를 살피는 것과는 다른 시선이었다.

“그러면 빵이라도 두세요.”

나는 찬장의 깨진 모서리를 엄지로 쓸었다.

“손님 몫을 내고 나면 집세가 싼 것도 아니겠군요.”

“방금 위층을 보고 오셨잖아요.”

그 말은 옳았다. 나는 위층을 보고 왔고,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식탁에는 수저와 함께 접시 세 장이 놓여 있었다. 접시 두 장에는 작은 꽃무늬가 있었고, 나머지 한 장은 아무 무늬도 없는 흰색이었다. 손잡이가 닳은 칼 세 자루는 모두 다른 물건이었다.

“손님이 두 명 오는 건 아니고요?”

“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세 사람 몫이죠?”

부인은 흰 접시를 들어 꽃무늬 접시 위에 포갰다.

“그냥 꺼내둔 거예요.”

그녀는 그것들을 찬장으로 가져갔다. 접시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부인이 이 집을 남에게 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남편이 쓰던 의자나 아이가 잠들던 방을 낯선 사람에게 내주기 싫어하는 집주인은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가구를 보지 않았다. 위층을 안내할 때도 침대나 벽지보다 내 반응을 살폈고, 지금은 접시를 넣은 뒤 찬장 문을 단단히 닫고 있었다.

아쉬워하는 사람의 태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려워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장갑의 벌어진 솔기를 다시 떠올렸다. 내가 본 몇 가지 행동만으로는, 그녀가 집을 빌려주려는 이유와 꺼리는 이유를 구별할 수 없었다.

“손님이 오는 시간은요?”

“일곱 시쯤.”

“술에 취해서 옵니까?”

“그런 적은 없다고 들었어요.”

“부인께서는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까?”

“길에서 본 적은 있어요. 저는 여기 살지 않으니까요.”

“그럼 누가 시작한 일이지요?”

그녀는 잠시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부터 있었던 약속이에요. 작년에 남편이 죽고 제가 맡았죠. 남편은 이 집에 관한 일을 저한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대답을 준비하는 시간이 조금 길었다.

나는 더 물을 수 있었다. 약속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전 세입자가 어디로 갔는지, 그녀의 남편은 언제 죽었는지. 그중 어느 질문이든 그녀가 집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주머니 속에는 동전이 여섯 개 있었다. 금액은 세어보지 않아도 알았다. 아침부터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계약서를 보죠.”

그녀가 가방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계약서에는 집세, 지급일, 가구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수요일의 손님에 관한 말은 없었다.

“이 조건은 쓰지 않으셨군요.”

“써드릴까요?”

나는 그녀가 내민 펜을 받았다.

“아뇨.”

서명을 하는 동안 부인은 처음으로 창문 밖을 보았다.

나는 내 이름을 끝까지 쓴 뒤 펜촉을 들었다.

킬리언 모로.

렌 부인은 종이를 받아 잉크를 말렸다.

“짐은 언제 들이시겠어요?”

“오늘.”

“짐꾼을 보내실 건가요?”

“제가 가져올 겁니다.”

그녀는 문 옆에 놓인 내 가방을 보았다. 가죽 손잡이는 두 차례 수선한 것이었고, 바깥쪽 주머니에는 양말 한 짝이 끼어 있었다.

나는 그 양말을 밀어 넣었다.

***

수요일 오후, 크로프트 씨가 내 바카라상 위에 종이 한 장을 놓았다.

“다음 주 지급 명부에서 빼게.”

종이에는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에드윈 베일.

나는 펜을 잉크병 가장자리에 가볍게 댄 뒤 장부를 당겼다.

펜윅 상회의 장부에는 면직물과 운송료, 창고 임차료, 대금이 들어오지 않은 거래들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나는 다른 장부를 맡았다. 짙은 녹색 표지의 얇은 바카라이었다. 오래전에 일을 그만둔 사람과 죽은 직원의 유족에게 지급하는 돈이 기록되어 있었다.

표지 안쪽에는 ‘임의 구호금’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임의’라는 두 글자는 다른 글자보다 진했다. 처음 쓴 사람이 덧칠한 것인지, 나중에 누군가 강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베일의 이름을 찾았다. 열일곱 번째 줄이었다. 매주 같은 금액이 나갔다. 지난 금요일까지 지급 표시가 되어 있었다.

“중단 사유는 무엇으로 적습니까?”

“사망.”

나는 크로프트 씨가 놓은 종이를 뒤집어보았다.

뒷면은 비어 있었다.

“날짜는요?”

“비워두게.”

“사망 날짜를 모르면 다음 주까지 지급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주에는 지급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 몫도 보류하게.”

그는 내 바카라상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보통은 지시를 한 뒤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일을 마치는 것을 지켜보는 경우는 합계가 맞지 않거나, 자기 상관이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날 그의 손에는 다른 서류가 없었다.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습니까?”

“내가 자네에게 사유를 설명해야 하나?”

“가족이 있다면 명부를 옮겨야 할 수도 있어서요.”

“없네.”

나는 장부의 주소 칸으로 시선을 내렸다. 오래전에 적힌 주소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 뒤의 주소는 비어 있었다. 돈은 본인 수령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그러면 수령증은—”

“모로.”

크로프트 씨는 내 이름을 작게 불렀다.

맞은편 바카라상에서 하웰이 종이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멈춘 것은 잠깐이었다. 그는 곧 다음 장을 넘겼지만, 이번에는 모서리가 접혔다.

“자네는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

“일곱 주입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을 수 있겠군.”

그는 내 의자 뒤에 손을 얹었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건 회사의 의무 지급금이 아니야. 펜윅 씨가 개인적인 호의로 계속해오신 일이네. 그분이 중단하라고 하셨고, 나는 자네에게 그렇게 전하는 거야.”

나는 그가 방금 사망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지급을 중단하는 것과 사람이 죽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었다. 장부에는 둘 중 하나만 적어도 충분했다. 굳이 두 가지를 함께 적으려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 이유를 물으면 어떻게 될지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 바카라상에는 금요일까지 마쳐야 하는 거래 내역이 쌓여 있었다. 서랍에는 돌려받지 못할 줄 알면서도 전 하숙집 주인에게 맡겨둔 물건들의 목록이 있었다. 겨울 외투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나는 녹색 장부 옆으로 붉은 잉크병을 가져왔다.

“사망. 지급 종료. 날짜는 공란으로 두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나는 에드윈 베일이라는 이름에 가는 줄을 그었다. 이름을 읽을 수 없게 지우지는 않았다. 기록을 수정할 때는 원래의 글자가 남아 있어야 했다.

비고란에 사망이라고 썼다.

마지막 획에서 펜촉에 걸려 있던 잉크가 조금 번졌다. 나는 압지를 대고 손가락으로 눌렀다. 크로프트 씨는 그제야 의자에서 손을 뗐다.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간 뒤 하웰이 몸을 조금 기울였다.

“그냥 지급 종료라고 쓰면 되는 걸.”

나는 압지를 들어 얼룩을 확인했다.

“그렇게 말했어야겠군요.”

“지금 가서 말하라는 뜻은 아니네.”

하웰은 다시 자기 일로 돌아갔다. 몇 줄을 적더니 바카라상 아래에서 종이 꾸러미를 꺼냈다.

“빵 남은 것 좀 먹겠나?”

“괜찮습니다.”

“난 안 괜찮아. 아내가 이걸 다시 가져오면 내일 또 싸줄 테니까.”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빵을 반으로 나눴다. 말라붙은 치즈가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나는 작은 쪽을 받았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먹었다. 사무실에서는 펜촉 긁히는 소리와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 들렸다.

나는 크로프트 씨의 말을 다시 생각했다. 그는 죽었다고 단정한 뒤, 의심을 받자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설명으로 옮겨갔다. 둘은 같은 주장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두 번째 설명을 받아들이고 첫 번째 문장을 적었다.

그 과정이 너무 쉬웠다.

내가 결정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지시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사망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내 업무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후에 해야 할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뒷문 아래로 물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신문지를 접어 문틈에 끼우고, 부엌 의자 위에 올려둔 바카라들을 더 안쪽으로 옮겼다. 이사한 날 렌 부인은 바람이 특정한 방향으로 불 때만 그런다고 말했다. 맨체스터의 바람이 그 방향을 좋아하지 않기를 바랐으나, 아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 짐을 푸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바카라을 놓을 자리를 정하는 데만 그보다 오래 걸렸다.

위층의 작은 방에는 아직 바카라상이 없었다. 찬장에서 꺼낸 나무 상자 두 개를 포개 임시로 썼는데, 무릎을 넣을 수 없다는 결점이 있었다. 그날 아침까지는 바닥에 앉아 바카라을 읽었다.

나는 부엌에 불을 붙이고 빵을 잘랐다. 귀갓길에 사온 양고기 스튜를 냄비에 부었다. 감자 몇 조각을 더 넣으면 두 사람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요일의 손님에게 어떤 음식을 내놓아야 하는지 렌 부인은 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불평한다면 적어도 내가 어긴 약속은 없을 터였다.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바카라 한 권을 펼쳤다.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원리》였다. 습관을 다루는 장에 종잇조각을 끼워두었다. 빌린 바카라이므로 여백에 글을 쓸 수 없어서, 나는 따로 자른 종이에 생각을 적어 페이지 사이에 넣었다. 그 때문에 바카라은 빌려왔을 때보다 두꺼워져 있었다.

지난밤에 적은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떤 행동을 자주 한다고 해서 그 행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펜을 들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행동의 결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

부엌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바카라을 덮고 냄비를 불에서 당겼다. 바닥에 붙은 감자를 숟가락으로 긁어내자 검은 조각이 떠올랐다. 그 조각들을 골라내는 동안 현관 쪽에서 소리가 났다.

노크는 세 번이었다.

나는 벽시계를 보았다. 일곱 시에서 조금 모자랐다. 시계가 정확한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불을 줄이고 현관으로 갔다.

문을 열자 남자가 서 있었다.

쉰 살이 넘었을 것 같았다. 모자챙에서 떨어진 빗물이 외투의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외투는 낡았지만 단추는 모두 달려 있었고, 목에 감은 천은 세탁한 것이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보퉁이를 몸 뒤쪽으로 옮겼다.

“저녁 인사를 드립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지 않았다. 약간 쉰 소리가 났다.

“수요일이라서 오셨습니까?”

그는 내 얼굴을 살펴보았다.

“렌 부인이 말씀하셨군요.”

“들어오시죠.”

내가 비켜섰지만 그는 바로 문턱을 넘지 않았다.

“이 집을 빌리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혼자 사시고요?”

“그렇습니다.”

그는 잠시 복도 안을 보았다. 내가 자기 질문을 불쾌하게 여기는지 확인하듯 다시 내 얼굴을 보더니 모자를 벗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문을 닫고 빗장을 밀었다.

돌아서니 남자는 식당 문 앞에 서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식탁보다 벽 쪽을 먼저 보았고, 이어 찬장과 창문을 살폈다.

“달라졌습니까?”

내가 물었다.

“조금.”

“가구는 손대지 않았는데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젖은 외투를 가리켰다.

“벗으셔도 됩니다.”

그가 왼손으로 단추를 풀었다.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린 채였다. 단추가 하나 걸리자 그는 잠깐 나를 보았다. 나는 먼저 손을 내밀지 않고 기다렸다.

“이것만 좀.”

나는 두 번째 단추를 풀어주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오른손 가운데 두 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굽어 있었다. 손가락을 펴지 못하는 듯했다. 손목에는 오래전에 아문 흉터가 있었다.

그가 외투를 벗는 동안 작은 보퉁이가 의자 위에 놓였다. 천 사이로 빵의 딱딱한 끝이 보였다.

나는 그가 저녁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라는 렌 부인의 말을 떠올렸다.

“음식은 있습니다.”

그는 내가 보는 것을 알아차리고 천을 접어 덮었다.

“혹시 모르니까요.”

“지난번에는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부엌에서 냄비를 가져와 식탁 가운데 놓았다. 남자는 창문을 등지는 의자 앞에 섰다가, 맞은편 의자를 조금 빼냈다. 그곳이 자기 자리라는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가 앉은 뒤 접시에 스튜를 덜어주었다.

“감자가 좀 탔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음식을 내려다보았지만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나는 내 몫을 덜고 앉았다. 따뜻한 접시를 잡은 손이 조금씩 풀렸다. 사무실에서는 오후 내내 손끝이 차가웠다.

“렌 부인이 말한 조건은 식사 한 끼였습니다.”

내가 말했다.

“네.”

“술은 없습니다.”

“술은 필요 없습니다.”

“그 밖에 제가 알아야 할 게 있습니까?”

남자는 내 뒤쪽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찬장이 있었다.

“접시 하나만 더 꺼내주시겠습니까?”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누가 더 옵니까?”

“아뇨.”

“그럼 음식이 모자랍니까?”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접시를 보았다. 스튜는 가장자리까지 담겨 있었다.

“음식을 담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부엌 쪽에서는 불이 작게 타닥거렸다. 창문 바깥으로 수레가 지나갔다. 바퀴가 돌 틈에 부딪칠 때마다 유리창이 가볍게 떨렸다.

“빈 접시를 놓아달라는 겁니까?”

“네.”

“어디에요?”

남자가 식탁 끝의 빈 의자를 보았다.

월요일에 흰 접시가 놓여 있던 자리였다.

나는 그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무엇을 살폈는지 다시 생각했다. 벽, 찬장, 창문. 달라진 것이 있다고 했지만 가구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식탁만 두 사람 몫으로 차려져 있었다.

“누구 자리입니까?”

그는 대답하기 전에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제게는 필요한 일입니다.”

“그건 설명이 되지 않는군요.”

“알고 있습니다.”

그 대답 때문에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내 이해를 구하는 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죽은 아내나 자식에 관해서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이야기는 내가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는 내 손을 보았다가 시선을 거뒀다.

“싫으시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접시도, 음식도.”

그가 의자에 걸어둔 외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계속 문밖에서 기다릴 생각입니까?”

움직임이 멎었다.

“그 이야기까지 들으셨군요.”

“사실입니까?”

“지난번에는 그랬습니다.”

“왜요?”

그는 한동안 식탁 끝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침묵을 재촉하지 않았다. 대답을 못 하는지, 고르는 중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그날은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말이 끝난 뒤에도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장을 열자 흰 접시가 꽃무늬 접시들 아래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식탁 끝에 놓았다. 칼과 숟가락도 하나씩 가져왔다. 그동안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됩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앉아 내 접시를 당겼다.

“나는 킬리언 모로입니다.”

남자는 굽은 손가락이 있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악수를 해야 하는 순간인지 판단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내밀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이제 당신 이름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나를 보았다.

“에드윈 베일입니다.”

나는 숟가락을 접시 가장자리에 걸쳐놓았다.

사무실의 녹색 장부가 떠올랐다. 열일곱 번째 줄. 날짜를 비워둔 칸. 내 의자 뒤에 얹혀 있던 크로프트 씨의 손.

남자는 아직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식탁 아래로 오른손을 내렸다.

엄지손톱 밑에는 오후에 묻은 붉은 잉크가 남아 있었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