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디의 눈물,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있을까

롤드컵 준우승 팀은 왜 1년 만에 무너졌나

by나코리

내가 프로 스포츠를 보는 이유는 결국 스토리 때문이다.


1조 원을 받고도 여전히 검소한 오타니 쇼헤이. 불혹을 넘겨서도 리그를 호령하는 최형우. 김태균에게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서 분함을 못 이겨 울던 어린 날의 양현종.


이런 이야기는 웬만한 소설보다 매력적이다. 술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최고의 안주이기도 하다.


프로의 세계에 이런 이야기가 넘치는 이유가 뭘까. 재능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돈을 받느냐 아니냐로 나눈다. 하지만 우리가 프로에 열광하는 건 통장에 찍히는 액수 때문만은 아니다. 그 무게를 지고 끝내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 때문이 아닐까.


재능과 프로.png


관객이 되고 나서 보이는 것들


해야 할 일이 많아져서인지, 손가락이 예전 같지 않아서인지, 언제부턴가 롤을 직접 하기보다 보는 쪽이 되었다.


야구 보듯 TV로 경기를 챙겨보면서 롤은 내게 진짜 e스포츠가 되었다. 수억 원의 제의를 받고도 팀을 옮기지 않는 페이커, 유부남으로 롤드컵을 우승한 앰비션, 미국 영주권을 쥐고도 여전히 달리는 코어장전. 2022년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눈물을 쏟던 데프트의 우승을 본 뒤로는 매년 롤드컵이 만들어낼 이야기를 기다리게 됐다.


2025년 롤드컵은 오랜만에 볼거리가 많았다. 4번 시드 T1의 우승, 과거 손을 떨며 울던 케리아의 미소.


그중에서도 내 눈에 들어온 건 비디디였다. '통나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팀원들이 흔들려도 자기 자리를 지켰고, 최강이라던 젠지를 꺾고 롤드컵에 올라갔다. 결승에서는 T1을 마지막 세트까지 몰아붙이며, 롤드컵 역사의 한 장면을 남겼다.


소년 가장 같은 그의 모습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이영호가 보였다. 나는 그 서사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타니 양현종 최형우 비디디 기아.png프로의 노력은 스토리로 이어진다


성공의 함정


경영학에는 성공의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잘된 경험이 다음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현상이다. 성공을 만든 바로 그 방식이 다음 실패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카루스 패러독스라고도 부른다. 날개를 만들어준 밀랍이 태양 앞에서 녹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이야기가 너무 강력했던 게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팀을 짊어졌다는 서사가 만들어지면 조직 안의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그 사람이 편해야 팀이 산다는 전제가 어느새 깔린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판단의 기준이 조용히 이동한다.


물론 밖에서 보는 사람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결과를 놓고 되짚어보면 그런 모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카로스의 추락.png이카로스의 추락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


올해도 나쁘지 않았다. 서포터 쪽에 부침이 있긴 했지만 비디디와 커즈 외에 퍼펙트와 에이밍이 돌아가며 캐리했다. 작년보다 평가가 좋은 선수들로 시작했고, 초반에는 이변도 여러 번 만들었다.


그런데 롤드컵 진출이 걸린 시점을 얼마 앞두고 에이밍을 방출했다. 이유는 피드백 과정에서의 불화. 그리고 9위 팀 선수와 트레이드했다.


무엇을 기대한 걸까.


갈등을 치웠으니 이제 연습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불편한 선수와 부딪히느니 이번 시즌은 접자는 쪽이었을까.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누구 편도 들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팀 전체를 위한 판단이 아니라, 팀의 일부 또는 개인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었다. 그 기준에서 보면 불화의 다른 쪽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답이었을 것이다.


나는 비디디를 응원하는 팬이면서도, 그때 이 팀이 차라리 잘 안 되기를 바랐다. 이런 결정을 하고도 결과가 좋으면, 1년 내내 롤드컵 티켓 한 장을 위해 달려온 다른 팀 선수들이 우스워질 것 같았다.


image.png비디디의 눈물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한동안 그 차이가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프로는 잘하는 사람, 아마추어는 아직 부족한 사람.


그런데 실력은 입장권에 가깝다. 그 문을 통과한 뒤부터는 다들 잘하는 사람들이고, 거기서부터는 다른 것이 사람을 가른다. 무엇을 위해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까지 감수하는가. 결국 태도와 목적에서 갈린다.


동아리의 목적은 화합이다. 져도 서로 다독이고, 상처 안 받게 배려하고, 기분 좋게 집에 간다. 회원의 자존심이 승리보다 중요할 수 있다.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그러려고 모인 곳이니까.


프로는 다르다. 팬의 시간과 돈이 들어가 있다. 목적은 결과다.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느라 이길 수 있는 수를 포기하는 순간, 그 팀은 프로가 아니라 돈 많이 쓰는 동아리가 된다.


회사도 비슷하다. 아무도 안 다치게 결론을 뭉개는 회의가 있다. 누구 안을 채택했다고 하기도 애매하게 다 조금씩 반영해서 끝내면, 그날 회의실 분위기는 좋다. 성과와 숫자는 따로 논다.


동아리는 화합으로 기억되고, 프로는 결과로 남는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png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안 다치게 하는 게 존중일까


나는 존중이라는 말을 오래 오해했다.


쓴소리를 피하는 것. 폼이 무너진 선수의 고집을 받아주는 것. 불편한 사실을 덮어두는 것. 이런 걸 존중이라고 불렀다.


프로의 세계에서 존중은 반대 방향인 것 같다. 최고로 대우하니까 최고의 기준을 요구한다. 아마추어는 상처받을까 봐 피드백을 삼키고, 프로는 성장하라고 아픈 사실을 꺼낸다. 존중은 기준을 낮추는 게 아니라 올린다.


그리고 그 피드백이 불화가 된다.


그런 조직에서는 순서가 뒤집힌다. 문제를 지적한 쪽이 문제아가 된다. 그러면 다음부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남는 건 안락한 분위기뿐이다.


조직에서도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피드백을 꺼리는 리더들이 많다. 사실 후배에게 쓴소리를 삼키던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불편한 사실을 덮는 건 배려가 아니라 직무유기인 줄 알면서도 동아리 같은 화합을 추구한다.


마이클 조던 명언 팀워크.png


"팀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의 감정을 이유로 드는 건, 리더십이 아니라 비겁함일 때가 많다.


기준을 세워 잘못된 걸 쳐낸다. 선수를 벤치로 내린다. 플랜을 강제한다. 전부 미움 사는 일이다. 악역을 맡아야 한다. 그래서 아마추어 지도자는 안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갈등을 피한다.


선수가 원해서요. 멘탈을 위해서죠.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 말이 특히 그렇다. 원래는 팀을 흔드는 스타를 정리할 때 쓰던 말인데,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사람을 치우는 데 쓰인다. 포장은 똑같다. 안에 든 게 결과인지 편안함인지가 다를 뿐이다.


좋은 조직은 갈등이 없는 조직이 아니다. 잘하는 사람이 모일수록 각자의 확신 때문에 갈등은 반드시 생긴다. 문제는 갈등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능력이다. 동아리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이면 되지만, 프로 팀은 마음 안 맞는 실력자들을 데리고 결과를 내야 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 물어야 할 건 누가 더 착한지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우리가 더 강해지는가.


감정을 누르라는 게 아니다


프로가 감정 없는 기계라는 얘기는 아니다.


프로도 화가 난다. 억울하고, 질투하고, 인정 못 받으면 서운하다. 방출 통보를 받은 선수가 아무렇지 않을 리 없고, 양현종이 마운드에서 운 것도 감정이다. 존중을 빼고 엄격함만 남기면 그건 프로가 아니라 그냥 갑질이다.


감정을 없애라는 게 아니라, 감정 때문에 결정을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선수의 감정도, 리더의 감정도.


그래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올해 KT 롤스터가 우승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시 없을 기회를 보내 버린 것은 아닐까.


그 선수가 남았으면 반드시 우승했을 거라는 말은 아니다. 승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그 답을 영영 확인할 수 없게 됐다. 불편을 치우느라, 확인해 볼 기회까지 같이 치워버렸으니까.


프로 줄리어스 어빙 아마추어.png


착한 패배는 스토리가 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아무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서로 배려하다가 졌다는 이야기 말이다.


젊은 양현종의 눈물이 기억에 남는 건 그가 13년 연속 100이닝을 던지며 지금도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5년의 비디디의 눈물이 공감되었던 것은 무너지는 판에서도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이길 수를 찾아 헤매는 그의 플레이 때문이었다.


심리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이 이익보다 손실을 훨씬 크게 느낀다고 했다. 손실 혐오라고 부른다. 눈앞의 불편은 항상 실제보다 커 보인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손실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 팀이 피한 손실은 갈등이었고, 대신 치른 손실은 시즌이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그 말은 맞다.

다만 그 말이 지켜지지 않는 방식은 대개 스타가 팀을 흔드는 쪽이 아니다. 한 사람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를 맞춰가다가, 어느새 팀이 사라져 있는 쪽이다.


처음에 나는 프로 스포츠를 보는 이유가 스토리 때문이라고 했다.

글을 쓰고 다시 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스토리가 있어서 프로인 게 아니라, 프로답게 해서 스토리가 남는 것이었다.


26년의 비디디 팀은 스토리를 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번 눈물은 내게 와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