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기 재학생이 정리한 지원, 연구계획서, 그리고 면접
좋은 기회가 생겨서 대학원에 한 번 더 가게 되었다.
형님, 학위 컬렉터예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었지만, 딱히 대꾸는 못 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새로운 배움 앞에서 설레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곧 4학기다. 졸업이 코앞인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원할 때는 검색을 해도 나오는 게 없어서 꽤 헤맸다. 세 학기를 지나온 지금, 그때의 기록을 정리해 둔다.
취업난이 길어지면서 인공지능과 컴퓨터공학 분야로 사람이 몰린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한다는 예측도 한몫하는 것 같다. 학부생만이 아니라 회사에서 AI 전환 업무를 떠안게 된 온라인 게임인, 데이터 직군으로 전환하려는 사람, 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까지. 각자의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이 응시한다.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온 것 같은 얼굴도 꽤 보였다. 경쟁률을 정확히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매 학기 조금씩 증가하는 것으로 들었다. (10:1이라는 소문도 있으니 내가 들어왔을 때보다는 높다)
두 곳에 면접을 봤다. 빅데이터 학과 면접 날은 마침 대학 입학시험이 있었는지 캠퍼스가 하루 종일 북적였다. 인공지능 학과 면접은 공학관에서 봤다. 모든 면접장에서 휴대폰 사용이 통제되어 사진은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굳이 다녔던 학교를 왜 또 가요?
다른 학교로 가서 인맥을 쌓지.
고민 끝에 다녔던 학교로 선택했다. 커리큘럼도 비교했지만, 결국 아는 학교가 주는 안정감과 회사와의 거리, 나이 든 만학도의 고갈된 체력 등을 고려할 때 최적의 선택이었다. 인맥과 새로운 경험에 욕심이 났지만, 물러섰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학업계획서 항목이 있는데, 석사 논문 연구계획서처럼 작성하면 좋다. 대략 순서는 이렇다.
요즘은 생성형 AI가 다 해주니까, 교수님들 연구 분야 논문들을 요약해서라도 읽어본다. 읽어본 내용은 면접에도 도움이 된다. 주의할 점은 아무도 하지 않는 주제를 무작정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주제 말고, 자신의 커리어에서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 면접에서 물어봤을 때 충분한 깊이로 대답할 수 있는 진짜 관심사를 담는다.
온라인 게임인에게는 데이터와 문제가 손에 있다. 왜 하필 내가 이 연구를 해야 하는가. 어떤 경험과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가를 추가하면 좋다.
졸업 논문이 없는 학과라도 '교수님들에게 익숙한 형식과 내용이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전공 질문 여부였다. 후기를 찾아보면 이런 말이 많았다.
전공 질문 안 하던데요?
실제로 공학대학원처럼 역전파를 설명해 보라는 식의 질문은 없었다. 다만 질의응답이 조금만 길어져도 교수님들이 지원자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대부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업계획서 한 줄만 파고들어도 아는지 모르는지 드러난다.
그래서 최소한 이 정도는 정리하고 가면 좋겠다.
- 트랜스포머 구조가 왜 판을 바꿨는지
- 파운데이션 모델과 파인튜닝의 관계
- 기계학습과 딥러닝의 차이, 지도학습과 비지도학습
- 내 학업계획서에 등장하는 모든 용어
마지막 항목이 제일 중요하다. 용어를 외우는 것과 내 말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요즘은 학업계획서나 자기소개서를 AI로 쓰는 경우가 많다 보니, 막상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며 설명을 못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덧붙이면 저 개념들은 합격한 다음에 더 필요했다. 1학기 첫 수업부터 당연히 안다는 전제로 진도가 시작된다.
대학원 입학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하고 일하다 보면 면접날이 빠르게 다가온다. 혼자 예상 질문을 고민하기도 어렵고 검색해도 별 내용이 없다. 이때는 언어 모델이 꽤 쓸모가 있다.
이 계획서를 읽는 심사 교수 입장에서, 가장 허술한 부분 다섯 개를 지적하고 예상 질문을 만들어줘.
너는 인공지능융합대학원 면접관이야. 한 번에 한 질문씩 하고, 내 답변을 듣고 꼬리 질문을 이어가줘.
면접은 짧다. 하고 싶은 말이 백 개여도 전달되는 건 세 개 정도다. 핵심 메시지 세 개를 정해 놓고, 어떤 질문이 와도 그리로 돌아오도록 다듬는다.
정리하면, 서류는 교수님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첫인상. 면접은 짧은 시간에 진실의 순간(MoT)을 만드는 자리. 언어 모델로 준비는 충분하다.
선배, 저도 대학원 갈까요?
내가 정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온라인 게임 생활하면서 오랜만에 학교에 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에 또 다른 활력이 된다. 다만, 저녁 10시까지 진행되는 학과 수업, 팀원들과의 프로젝트, 보고서 과제 등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한다. 게다가 엄청나게 비싼(?) 학비까지.
1년 전에 EBS에서 '대학 혁신'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다. 교수를 이름으로 부르는 수업, 교수도 교재도 없는 학교, 등수를 없앴더니 학생 논문이 0편에서 50편 넘게 늘어난 의대가 나왔다. 방식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지식을 옮겨 담는 일은 더 이상 대학이 제일 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남는 건 사람과 질문 쪽이었다. 솔직히 개념 설명만 놓고 보면 교수님보다 클로드가 나은 경우가 많다.
쓸 만한 인재를 길러내고 그 실력을 보증해 주던 대학과 학위가 언제까지 그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학위가 있으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진학하기에는 밑지는 선택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반대로 무엇을 묻고 누구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가 정해져 있다면, 학위는 그 과정에서 따라 나오는 부산물이 아닐까.
학위 컬렉터 소리를 들으면서도 또 등록한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다. (회사 지원 때문은 절대 아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