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오후, 정훈은 마당에서 감을 따고 있었다. 최씨 아저씨가 사다리를 빌려주었고, 민재와 민서가 아래에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아빠, 이쪽! 이쪽에 큰 거 있어!"
민서가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정훈은 사다리 위에서 손을 뻗어 감을 땄다. 주황색 감이 손안에 들어왔다. 단단하고 무거웠다. 15년 동안 정훈이 잡아왔던 것은 서류와 키보드, 마우스와 프레젠테이션 리모컨이었다. 감 한 알이 손바닥에 앉는 그 감각이 낯설게 좋았다.
"받아!"
감을 아래로 던졌다. 민재가 바구니로 받았다. 깔끔하게. 민재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정훈은 그 미소를 사다리 위에서 바라보았다. 호치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미소였다. 학원에서 돌아올 때도, 국제학교에서 에세이를 받아올 때도, '괜찮아요'라고 대답할 때도 없었던 미소. 감 하나를 바구니에 받았을 뿐인데, 민재는 웃고 있었다. 감을 다 따고 마당에 내려온 정훈은 현관 앞 계단에 앉았다. 현주가 보리차를 들고 나왔다.
"많이 땄네."
"최씨 아저씨네 것까지 합치면 마을 전체가 먹을 양이야."
현주는 웃으며 정훈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민서가 감을 하나 들고 민재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민재가 도망치면서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현주가 작게 속삭였다.
"저거 봐. 민재 웃는다."
현주의 속삭임에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좋은 떨림이었다.
"응. 오랜만이다."
정훈은 그 '오랜만'을 길게 발음했다. 짧게 말해버리면, 그동안 민재가 웃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치게 빨리 지나갈 것 같았다.
"여기 와서 처음 봤어. 저렇게 웃는 거."
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그 장면이 흩어질 것이었다. 그냥 현주의 손을 잡았다. 현주의 손은 따뜻했다. 호치민의 레지던스 소파에서 잡던 손과 같은 손이지만, 다른 온도였다.
그날 저녁, 식탁에 가족이 둘러앉았다. 은숙이 보내준 된장과 김치, 최씨 아저씨가 준 고구마, 그리고 현주가 만든 계란말이가 식탁에 올랐다.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한 밥상이었다. 식탁은 신혼때부터 썼던 낡은 4인 식탁이었고, 의자는 네 개 중 두 개의 등받이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현주는 "이사 오면서 버리려 했는데 놔둬서 다행이다" 하고 웃었다. 민서가 감을 깎으며 물었다.
"아빠, 우리 또 해외 가?"
"글쎄. 왜?"
"아니. 그냥. 여기가 좋아서."
민재가 밥을 먹다가 불쑥 말했다.
"나도 여기가 좋아. 학교 애들이 착해. 그리고 선생님이 한국어로 말하니까 편해."
정훈과 현주가 눈을 마주쳤다. 현주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하지만 슬픈 눈물이 아니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정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식탁 위에 엎어둔 휴대폰의 뒷면에서 푸른 불빛이 일정한 박자로 새어나왔다. 정훈은 화면을 뒤집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의 영상통화 요청이었다. 그러나 정훈은 그 번호를 알고 있었다. 손끝이 화면에 닿기 전에, 마음이 먼저 알았다. 태훈이었다. 정훈은 잠시 멈췄다. 현주가 정훈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물었다.
"누구야?"
"…태훈이."
현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한 번 걸어준 전화로 이미 준비된 길이었다. 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현관문을 닫고, 감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그리고 수락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태훈의 얼굴이 떴다. 그러나 정면은 아니었다. 화면 한쪽에 조금 더 작은 얼굴이 먼저 떴다. 네 살의 남자아이. 머리를 빡빡 깎았다. 감기가 다 나은 뒤 새로 자란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위에 남아 있었다. 공룡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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