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뉴스를 종종 본다. 어떤 스타트업이 창업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몇 백억 투자를 받았다고. 기업가치가 수 천억에 달한다고. 유니콘 기업으로 곧 등극할 거라고. 그럼 정말 대단해 보인다.
맞다. 대단한 게 맞다. 남의 돈 끌어다 투자받는 거 정말 어렵다.
근데 몇 백억의 투자와 아주 높은 기업가치이면 된 건가?
나는 4년 동안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3번에 걸쳐 총 470억의 투자유치를 이끌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투자 유치를 한 번 끝내고 나면, '내가 이거 또다시 하기 전에 회사 나가고 말지. 다신 이거 안 한다'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힘들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돌아보면 또다시 그 다음번, 그리고 그 다음번 투자유치까지 나는 하고 있었다.
근데 투자를 여러 번 받으면서 든 생각은, 진짜 이게 맞나? 란 생각이었다.
돈이 부족하니까 투자를 받고, 투자를 받아서 더 큰 사업을 해내갈 수 있는 게 맞는데, 계속 투자를 받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일을 하는 목표는 IPO 하나로 귀결된다. 물론 M&A도 있고, 구주매각, 세컨더리 거래 등등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IPO가 가장 많은 선택지가 된다.
이렇게 큰 투자를 할 곳들은 결국 기관 투자자이고, 기관투자자는 exit을 해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 벤처 투자자들은 인내심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다. 펀드 청산기간이 정해진 점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IPO를 가기 위해 열심히 그 모습을 맞추고자 사업을 하게 된다. 사업을 해서 잘 돼서 IPO를 가는 기업들도 있겠지만, IPO를 가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을 지금 갖춰야 하는지, 그러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뭔가 꼬리와 머리가 뒤바뀐 느낌이 든다.
자, 그래, 그래서 IPO를 간다고 치자. 그럼 다 된 건가?
투자자는 다 된 거지.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IPO 하면 보호예수 기간 끝나고 곧장 팔아서 큰 수익을 얻는다. 물론 안 팔고 지분을 남겨두고 더 큰 이득을 보고자 할 수도 있지만, 일단 IPO 되면 적어도 투자자에게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근데 그건 투자자 얘기고.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된 건가?
아니. IPO는 결승선이 아니라 오히려 본게임 시작이다. 수십 명의 투자자 시어머니가 아니라, 수십 수백만명의 시장이란 시어머니 앞에서 요이땅 달리기가 시작된 거다. 작은 흔들림에도 주가는 계속 바뀌고, 숨을 곳은 없이 모든 것이 다 공개된다.
스타트업 내부에서 이런 준비를 진짜 다 생각하고 IPO를 갈까? 글쎄다. 가야만 해서 가는 거다. 내가 이전에 받았던 수백억의 투자가 결국 내가 이 길을 가야만 하게 만든다. 화려했던 투자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니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 전에 고민해봐야 한다.
- 나는 투자를 받아서 결국 무얼 이루고 싶은 걸까?
- 투자자에게는 무얼 줄 수 있는 것일까?
- 그 과정에서 내가 포기하게 될 선택지는 무엇인가?
이런 고민이 너무 배부른 소리라고, 당장 돈 나갈 구멍만 막아도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한다. 내가 오늘 내린 결정이 미래의 내 발목을 잡고 나의 선택지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