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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라그딘 : Smaragdine

에메랄드처럼 깊고 선명한 녹색

by구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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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녹색을 생명의 색이라고 부른다. 봄의 나무와 여름의 잔디, 비가 그친 뒤의 숲을 떠올리면서.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녹색이 생명보다는 생명이 지나간 자리에 가까운 색이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나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는 증명할 필요가 없어진 것들은 비로소 깊어진다. 내가 스마라그딘이라는 이름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 색이 그런 깊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라그딘. 발음하는 동안 혀끝에 작은 보석 하나가 놓이는 것 같은 이름이다. 에메랄드에서 유래한 이 색은 녹색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빛을 받으면 젖은 잎맥처럼 밝아지고, 빛이 물러나면 오래 잠긴 우물처럼 어두워진다. 그 사이에는 검은색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너무 많은 생명이, 녹색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어둠이 남아 있다.


나는 이 색을 볼 때마다 한 사람의 노년을 생각한다.

젊은 날의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떠났는지, 왜 끝내 돌아오지 않았는지. 우리는 오해받지 않기 위해 기억을 정돈하고, 사랑받기 위해 상처의 모양을 다듬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기 위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까지 끌어다 증거로 삼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설명은 하나씩 줄어든다. 모든 오해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고, 어떤 사랑은 끝내 상대에게 도착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며, 자신이 옳았다는 증명보다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평온이 소중해지는 순간을 맞는다.


그때 사람은 조금씩 스마라그딘을 닮아 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녹색이지만, 그 안쪽에는 수많은 계절이 겹쳐 있다. 한때 눈부셨던 빛은 어둠과 섞였고, 상처는 지워지는 대신 색의 일부가 되었다.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얼굴. 기쁨과 슬픔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어느 하나도 자기 삶의 전부라고 믿지 않게 된 얼굴.

나는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름다움이란 대개 멀리서 볼 때 가장 정확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주름이 있고, 오래된 흉터가 있고, 차마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있다. 서랍 속에는 이미 죽은 사람의 편지가 남아 있고, 바카라갈피에는 누군가와 함께 읽으려다 끝내 혼자 읽게 된 문장이 끼워져 있다. 오래 입지 않은 옷에서는 한때의 체온이 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옷을 버리는 일만은 해마다 다음으로 미뤄진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미련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쩌면 미련은 떠나지 못한 마음이 아니라, 떠난 것들이 우리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 사람이 건네던 말투는 어느 날 우리의 입에서 되살아난다. 끝난 사랑은 다시 시작되지 않지만, 그 사람에게 배운 다정함은 다른 누군가의 추운 손을 잡을 때 뜻밖에도 남아 있다. 우리는 상실을 극복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실을 몸 안에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빈자리를 메우는 대신 그 빈자리가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크기로 자신을 바꾸어 간다.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듯이.

나이테는 나무가 살아온 날들의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나무가 자기 안에 새겨 놓은 시간의 형태다. 가뭄은 가뭄대로, 풍요는 풍요대로, 어느 해에 찾아온 추위는 추위대로 나무의 몸속에 남는다. 바깥에서 보면 한 그루의 나무지만, 그 내부에는 서로 다른 날씨들이 동그랗게 겹쳐 있다. 오래된 나무를 베어 단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한 생명이 끝내 말하지 못한 일기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스마라그딘에도 그런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색은 처음부터 짙었던 것이 아니다. 빛을 받는 일과 빛을 잃는 일을 거듭하면서, 밝음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깊이에 도달했을 것이다. 녹색이 어두워졌다고 해서 생명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둠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밝은 곳에서는 반짝임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반짝임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잃는 것이 많아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잃는다. 몸이 기억하던 동작을 잊고,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던 다리의 힘을 잃고, 아무렇지 않게 내일을 약속하던 마음을 잃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의 확신도 사라진다. 한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불가능한 것들을 더는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든다.


그것은 패배와 조금 다르다.

패배는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붙이는 이름이다. 그러나 성숙은 어떤 것을 원하지 않게 된 뒤에도 자신이 초라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모든 문이 열려 있어야 자유롭다고 믿지만, 어느 날에는 더는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조차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었는지 영영 모른 채 살아가는 일. 그 가능성을 자신의 삶에서 지우지 않으면서도, 매일 그 문 앞에 서 있지는 않는 일.


스마라그딘은 내게 그런 자유의 색이다.

짙은 녹색의 표면에는 수많은 물방울이 맺혀 있다. 물방울들은 제각기 작은 빛을 품고 있다. 어떤 것은 희미하게 빛나고, 어떤 것은 너무 선명해서 그 아래의 색을 잠시 잊게 한다. 그러나 물방울 하나하나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기울어진 표면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리거나, 햇빛이 강해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빛은 떠나고, 물은 마르고, 사과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삶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어려운 사실을 본다.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으면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그런 식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모양을 바꾸어 놓는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듣고도 더는 가슴이 무너지지 않는 날이 온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슬픔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애도의 깊이가 얕았던 것도 아니다. 어떤 감정은 사라짐으로써 우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는 형태로 남는다.


나는 그것을 잊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잊음이라는 말에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고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매일 떠올리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내게 가르쳐 준 사랑으로 누군가를 대할 수 있고, 과거의 잘못을 끊임없이 되새기지 않아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제자리를 찾아 주는 능력이기도 하다.


어느 날 나는 잘 익은 녹색 사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다. 껍질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움푹 파인 꼭지 주변은 깊은 그늘에 잠겨 있었다. 밝은 곳에서는 녹색이 유리처럼 투명했고, 그늘에서는 거의 검은색에 가까웠다. 하나의 사과가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나는 그것을 돌려 보았다. 빛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색도 달라졌다. 하지만 사과는 어느 순간에도 다른 사과가 되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우리는 자신이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변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한때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견디게 되고, 한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되며, 한때는 자신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이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일. 그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일.


사람은 자기 삶의 모든 시절을 사랑할 수는 없다. 부끄러운 시절이 있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이 있으며,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자기 삶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모든 시절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일이 아니다. 아름답지 않았던 시간도 자신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더는 부정하지 않는 일이다.


스마라그딘의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다. 그것은 순수한 녹색이 아니다. 검은빛을 품고도 녹색이기를 그만두지 않는 색이다. 밝음과 어둠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둘이 한 표면 위에 함께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는 색이다.

나는 이제 아름다움이란 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끝내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을 겪지 않은 얼굴보다 슬픔이 지나간 뒤에도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얼굴이, 한 번도 무너지지 않은 마음보다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삶을 허락하는 마음이 더 오래 눈길을 끄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완전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이 말을 이해한다고 해서 삶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실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어떤 기억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몸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깨어난다. 인간에게는 끝내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있고,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모든 상처가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슬픔이 사람을 깊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어떤 고통은 그저 고통으로 남는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삶을 함부로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스마라그딘은 상처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상처가 생긴 뒤에도 색은 계속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둠이 찾아왔다고 해서 빛이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며, 빛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려 주지는 않으면서도, 잃어버린 것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나는 언젠가 아주 늙고 싶다.

오래 산다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지나간 일들을 전부 이해하게 되는 노인이 아니라,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품고도 평온할 수 있는 노인이 되고 싶다. 젊은 날의 나를 변호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과장하지 않으며, 미래의 나에게 지나친 약속을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놓친 것들을 헤아리느라 남아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사람.


창가에 앉아 사과를 깎다가 문득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가도 그 사람이 더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 오래전 사랑했던 이름을 떠올리면서 그 이름이 이제는 자신의 하루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쯤 고마워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마음은 어떤 색일까.

나는 그것이 스마라그딘이기를 바란다.

너무 밝아서 모든 것을 드러내지도 않고,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도 아닌 색.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많은 깊이를 보여 주지만, 끝내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 색.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 수 없으면서도, 더는 서둘러 알아내려 하지 않게 만드는 색.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 그 사람의 일부로 남겨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끝내 이해되지 않을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른다.


해가 저물면 사과의 녹색은 조금씩 어두워질 것이다. 표면에 맺혔던 물방울도 말라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짙어진다고 해서 사과가 가진 녹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는 쉽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한 사람의 삶을 깊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 사람에게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빛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사과를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창밖에서는 저녁이 천천히 나무들을 지우고 있다. 멀리 있던 것들이 먼저 사라지고, 가까이 있던 것들도 차례로 어둠에 잠긴다. 마침내 사과의 윤곽마저 희미해진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자세히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그리고 어떤 것들은, 끝내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오래 바라볼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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