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다

스러짐으로 완성되는 영원의 서정(抒情)

by구시안


어스름이 지평선의 경계를 허물 때 빛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자신의 마지막 이름을 써 내려간다. 그것은 스러짐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빛깔이 하나의 어둠으로 돌아가기 위해 치르는 서정(抒情).


우리가 태양이라 부르던 그 거대한 눈동자가 지상의 침묵 속에 눈을 감을 때, 바람은 언덕의 풀잎들을 하나씩 어루만지며 다 하지 못한 말을 건넨다. 저물어간다는 것은 시간이 스스로를 포옹하는 방식. 나뭇가지에 걸린 마지막 햇살 한 조각마저 어둠 속으로 고요히 침몰할 때, 인간은 자신의 그림자를 거두고 무한한 밤의 깊이와 면담한다.


모두 사그라드는 것들 위에 서서 스스로 빛이 되지 못한 밤을 사랑했다. 아침이 다시 오지 않아도 좋을 만큼 아름답게 저무는 저 순간을 위하여.


그림자가 길게 누워 지상의 모든 경계를 다독일 때, 우리는 비로소 빛의 무게를 깨닫는다. 한 시대를 태우고 남은 노을은 하늘이라는 거대한 문장 위에 찍히는 가장 붉고 고요한 마침표.


새들은 허공에 남긴 마지막 궤적을 거두어 나무의 깊은 품으로 돌아가고, 강물은 제 몸을 흐르던 햇살의 파편을 어둠의 저편으로 가만히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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