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의 달콤함

그 맛

by구시안
7f2c76df-aace-4889-a01a-2ed7cd25050b.png


특히, 겨울. 지독한 혹한에 몸이 움츠려 들 때.

길치인 나는 어딜 가려면 한 참을 해맨다.

특히 안 가본 곳.

새로운 곳.

택시를 타도 이상한데 내려줄 때도 있고.


주소라는 것이 있어 틀릴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위치는 바뀔 때가 있고, 이상한 곳에 덩그라니 놓여질 때가 있는데. 나는 내 팔자라고 생각한다.


길치에는 답이 없다.

더 중요한 건 길치라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무균 상태를 생각한다. 어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다. 아무런 균도 존재하지 않는 곳. 그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무균의 달콤함을 알고 있다.

모든 상처는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완벽하게 닫힌 방 안에서는 상처 대신 고요가 썩어간다.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피투성이의 야만이라기보다, 어떠한 균(菌)조차 살아남지 못하도록 소독된 완벽한 무균(無菌)의 공간이다. 그곳은 안전의 요새인 동시에 부패가 허락되지 않아 영원히 화석화되는 거대한 유골함이다.


여름이 절정에 달할 때, 어머니는 대형 유리병 속에 하얗고 둥근 복숭아들을 차곡차곡 재웠다. 그리고 그 위에 병이 넘치도록 백설탕을 부었다. 그것은 과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지혜라기보다, 부패라는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단맛의 영원을 박제하려는 의식에 가까웠다. 설탕이 복숭아의 세포막을 찢고 들어가 수분을 빨아들이는 동안, 과육은 쪼그라들고 국물은 끈적하게 엉겨 붙었다. 세균이 깃들 여지조차 없는 고농도의 당밀 속에서 복숭아는 더 이상 과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하지도, 늙지도, 그렇다고 생명을 이어가지도 못하는 유령 같은 달콤함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삶의 방식마저 그 설탕 절임에 가두기 시작했다. 세상의 거친 모서리에 살갗이 긁힐까 두려워 감정의 표피를 소독하고, 타인과의 접촉에서 오는 미세한 염증들을 견디지 못해 관계의 면역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갈등이 없는 대화, 실패가 예약되지 않은 도전, 상처 입지 않는 사랑만을 찾아 헤매는 동안 우리의 삶은 무균실의 배양기처럼 차갑고 투명해졌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빵을 부풀게 하는 것도, 포도를 술로 만드는 것도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명들의 폭력적인 침입 덕분이다. 흙 속의 곰팡이와 이름 모를 박테리아가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 속에서 생명의 순환을 이뤄내듯, 인간의 내면 역시 타자와의 불완전한 마찰, 즉 타인의 균이 내 몸에 스며들어 일으키는 미열을 앓아야 비로소 성숙해진다. 상처받지 않겠다는 결심은 곧 느끼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유리병 속의 복숭아는 썩지 않는 대신 껍질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것을 입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맛은 달콤함을 넘어선 아린 독(毒)과 같았다. 살아 있음의 증거인 냄새와 부패의 가능성을 모두 지워버린 대가였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완성은 모든 균을 박멸한 무균의 영원이 아니다. 때로는 곰팡이가 피어나고 썩어 문드러지는 수모를 겪더라도, 그 안에서 기꺼이 숨 쉬고 흔들리는 생생한 혼돈일 것이다. 달콤함에 절여져 서서히 질식해 가는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설탕이 아니라, 차라리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거친 들판이다. 비록 상처 입을지라도, 살아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불완전한 오염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화요일 연재
이전 05화나는 뒷골목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