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의 진짜 지리학

그 '국제 전시회'는 정말 국제적인가

by이형주 David Lee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대부분 이름 앞에 '국제'를 붙인다. 국제전자산업대전, 국제기계박람회, 국제게임전시회. 이름만 보면 한국에 국제 전시회가 넘쳐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그중 몇 개가 진짜 국제 전시회일까.


전시회가 국제적인지 아닌지는 이름이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판별된다. 세계 주요 전시회들이 어디에서 열리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전시회가 '어디를' 커버하는 가다.

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미국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커버하고, 두바이의 전시회는 두바이가 아니라 중동 전체를 커버하며, 싱가포르의 전시회는 동남아 전체를, 독일의 전시회는 유럽 전체를 커버한다. 개최 도시와 커버 시장은 다르다. 그 간극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가 전시회의 글로벌 위상을 결정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독자적인 글로벌 전시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실현되려면,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그 전시회는 어느 시장의 진입 통로가 될 것인가. 한국 시장인가, 아시아 시장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전시회의 이름을 무엇으로 짓든 기업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정확히 그 증거다.


지스타가 보여주는 것


지스타 2026이 11월 19일부터 나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그런데 정작 국내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크래프톤·카지노게임즈, 이른바 '3N2K'가 1차 참가 라인업에서 모두 빠졌다. 국내 게임사로는 웹젠 하나가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그 빈자리는 넷이즈, 빌리빌리, 센추리게임즈 같은 중국 게임사들과, 게임사가 아닌 AI 스타트업 '뤼튼'이 메인 스폰서로 채웠다.


흥미로운 건 이 기업들이 신작을 아예 공개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크래프톤은 신작 5종을, 엔씨소프트는 신작 3종을 이달 말 독일 게임스컴에서 공개한다. 넥슨게임즈는 신규 프로젝트를 다음 달 도쿄게임쇼에서 처음 선보인다. 신작은 있다. 다만 그 신작을 처음 보여줄 무대로 지스타를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조직위는 이 상황을 참가사 국적보다 관람객 만족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AI·영화·만화까지 아우르는 '종합 콘텐츠 전시회'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방향을 내놓았다. 관람객 저변을 넓히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건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답이다.


관람객이 늘어도 시장은 안 늘어난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규모가 아니라 좌표다. 지스타가 아무리 참가사를 늘리고 관람객을 늘려도, 그 관람객이 여전히 한국인이라면 지스타의 커버리지는 한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게임스컴에는 유럽 전역과 북미의 퍼블리셔·미디어·바이어가 모이고, 도쿄게임쇼에는 일본과 아시아 시장의 유통 파트너들이 모인다. 기업 입장에서 신작 공개는 이벤트가 아니라 마케팅 투자이고, 투자의 수익률은 그 자리에서 도달할 수 있는 시장의 크기에 비례한다. 국내 매출 비중이 줄고 해외 매출 비중이 커진 게임사일수록 이 계산은 더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비단 이건 지스타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상당수의 '글로벌 전시회'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국내 참가사, 국내 관람객, 국내 언론으로 이루어진 순환 속에서, '국제'라는 수식어만 붙어 있을 뿐 실제로 커버하는 시장은 한국 국경을 넘지 못한다. 참가사 수, 관람객 수, 부스 면적 같은 규모 지표는 계속 성장해도, 정작 그 전시회가 어느 시장의 진입 통로인지를 묻는 순간 답이 궁색해지는 이유다.


아무도 답하지 않은 질문


지스타 조직위가 내놓은 처방—AI, 콘텐츠, 부대행사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은 결국 국내 관람객층을 다각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이건 시장 커버리지의 확장이 아니라 국내 시장 안에서의 세분화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지스타는 어느 시장의 진입 통로가 될 것인가. 동남아 게임 시장인가, 중화권 퍼블리싱 시장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어딘가인가.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이 나온 적은 없다. 이 질문을 피해 가는 한, 국내 대형사들의 이탈은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신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작을 공개할 무대의 좌표가 국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커버리지를 설계하라


이 문제는 지스타 하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법도 지스타 하나에 국한될 수 없다. 전자, 기계, 뷰티, 식품, 모빌리티 등 '국제'를 표방하는 국내 전시회 전반에 적용되는 문제이고, 전시회의 규모를 키우는 것과 전시회의 좌표를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후자를 하려면 업종을 막론하고 다음 네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바이어 커버리지를 명시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참가사 유치에 쓰는 자원의 상당 부분을 해외 바이어·유통사·투자자에 대한 큐레이션 된 인바운드 프로그램으로 옮겨야 한다. 홍보성 초청장을 뿌리는 수준이 아니라, 업종별·시장별로 매칭된 바이어를 초청하고 실제 상담과 계약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있어야 시장 좌표가 바뀐다. 이는 게임 전시회든 기계 전시회든 뷰티 전시회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둘째, 커버할 시장을 좁혀서 특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커버하겠다는 전시회는 결국 아무것도 커버하지 못한다. 유럽·북미는 이미 그 지역의 오랜 앵커 전시회들이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이 지리적·산업적으로 강점을 가진 동남아, 중동, 혹은 특정 버티컬 시장은 상대적으로 빈자리다. 업종마다 그 전시회가 현실적으로 뚫을 수 있는 시장을 하나둘로 좁혀 특정하고, 그 시장의 유통·투자 네트워크를 끌어오는 데 자원을 집중하는 편이 막연히 '글로벌'을 표방하는 것보다 현실적이다.

host_city_vs_coverage.png그 전시회는 어느시장까지 커버하는가 (출처: VM Consulting)

셋째, 전시회 자체의 '아웃보딩'을 설계해야 한다. 지금까지 아웃보딩은 기업이 전시회 부스 밖에서 강연·시상·사이드 이벤트를 통해 노출을 넓히는 전략이었다. 이 개념을 조직위 차원으로 뒤집어 적용할 수 있다. 전시회 자체가 해외 바이어들에게 노출되는 통로—현지 업종 매체와의 어워드 협업, 해외 투자자 대상 피칭 세션, 현지 파트너사와의 공동 기획 콘텐츠—를 만들어야, 행사가 한국 밖에서도 '가야 할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넷째, 정부와 협회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참가사 수와 관람객 수를 실적으로 보고하는 관성에서 벗어나, 바이어 데이터베이스 구축, 매칭 시스템, 통역·계약 지원 같은 커버리지 확장 인프라에 예산을 재배치해야 한다. 이게 없으면 아무리 콘텐츠를 다각화하고 규모를 키워도 전시회의 좌표는 그대로다.


여기에 더해, 지금 정부와 협회가 따로 운영하는 두 가지 지원—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과 해외 진출 컨설팅—을 하나의 트랙으로 묶어야 한다. 현재 구조에서는 기업이 해외 전시회에 나가는 것과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컨설팅을 받는 것이 별개의 사업, 별개의 창구, 별개의 신청 절차로 흩어져 있다. 그 결과 기업은 부스만 나가서 명함을 뿌리고 돌아오고, 컨설팅은 컨설팅대로 전시회 일정과 무관하게 진행된다.


전시회 참가를 시장 진입 전략의 한 단계로 설계하려면, 참가 확정 이전에 타깃 시장의 유통 구조와 경쟁 환경을 짚어주는 사전 컨설팅이 붙어야 하고, 전시회 기간 중의 바이어 미팅이 그 컨설팅에서 도출된 목표 바이어 군과 연결되어야 하며, 종료 후에는 후속 계약·법무·인증 지원까지 같은 트랙에서 이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전시회 지원 사업과 컨설팅 지원 사업이 부처나 부서 단위로 분리되어 있는 한, 기업은 전시회를 '나가는 행사'로만 소비하고 그 경험이 시장 커버리지로 축적되지 않는다. 커버리지는 한 번의 참가로 생기지 않는다. 같은 시장을 겨냥한 컨설팅과 전시회 참가가 여러 차례 같은 트랙 안에서 반복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이 전시회는 어느 시장의 진입 통로인가


전시회의 위상은 개최지의 크기가 아니라 커버리지의 크기로 결정된다. 지스타는 그 간극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일 뿐, 한국에서 '국제'를 이름에 붙인 전시회 대부분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커버리지가 여전히 국내에 머물러 있는데 기업들의 시장은 이미 국경을 넘었다면, 그 간극은 반드시 이탈로 나타난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이름이 무엇이든 그 전시회는 계속 국내용으로 남는다. 질문은 여전히 같다. 이 전시회는 어느 시장의 진입 통로인가.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AI가 쓴 티가 나는 제안서는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