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시산업 발전 세미나는 왜 늘 공허한가

공급자의 언어로 짜인 판에서 고객은 보이지 않는다

by이형주 David Lee

어제 청주 오스코에서 열린 '한국무역전시학회 정바카라포럼 및 춘계학술대회'의 주요 의제는 한국이 독자적인 글로벌 전시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한국 전시산업이 내수와 지원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공감한다.

그러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불편한 감각을 지울 수 없었다. 논의의 흐름이 어느 순간부터 CES 비판으로 기울고 있었다. 매년 수백 개의 한국 기업이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현상을 문제 삼으며, 그 에너지를 국내로 돌려야 한다는 논조였다. 처음 들으면 그럴듯하다. 그런데 나는 그 논의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업들은 대체 왜 CES에 가는가. 그것을 묻지 않은 채 CES를 비판하는 것이 과연 유효한가.

기업이 왜 글로벌 전시회를 가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글로벌 전시회를 만들 수도 없다.

논의의 테이블에 없는 사람들


포럼 내내 허전함을 느꼈는데, 끝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논의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 전시 주최자가 있고, 컨벤션센터 관계자가 있고, 관련 분야 교수가 있고, 정부 담당자가 있다. 공급자들의 이야기다. 정작 전시회의 진짜 주인공, 참가기업의 목소리는 늘 빠져 있다. 전시회를 만드는 사람들이 전시회를 써야 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빌리지 않은 채 판을 짜고 있는 셈이다.

나는 어제 기업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시간이 부족해 끝내 묻지 못했다. 이 글은 그 질문을 대신하는 것이다.


기업은 왜 CES에 가는가


나는 매년 100여 개 기업의 해외 전시 참가를 자문하면서 이 질문을 되풀이해서 받는다. "왜 CES에 참가해야 하나요?" 그리고 매번 같은 답을 돌려준다. "CES에 '가는' 게 아닙니다.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는' 겁니다."

기업들이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이유는 CES가 좋아서가 아니다. CES가 연결해주는 시장 때문이다. CES 혁신상 수상 여부는 기술력과 시장 가능성에 대한 업계의 공식 인증으로 작동하고, 전시장 곳곳의 피칭 세션은 투자자와 파트너를 향한 치열한 경쟁의 장이다. 전시장 바깥, 도시 곳곳의 호텔과 레스토랑, 프라이빗 라운지에서는 공개되지 않는 협상들이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그 협상의 결과가 이듬해 산업 지형을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업의 reputation이 평가받고, 거래가 성사되고, 다음 해의 사업 방향이 결정되는 생태계 전체가 CES를 CES이게 한다.

기업들은 그 생태계에 접속하기 위해 매년 비행기에 오른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국내 전시회로 오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전시회는 목적지가 아니라 수단이다. 어느 시장과 연결해주는 수단인가가 기업의 선택을 결정한다.


전시회의 진짜 지리학


세계 주요 전시회들이 어디에서 열리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전시회가 '어디를' 커버하는가다. 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미국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커버하고, 두바이의 전시회는 두바이가 아니라 중동 전체를 커버하며, 싱가포르의 전시회는 동남아 전체를, 독일의 전시회는 유럽 전체를 커버한다. 개최 도시와 커버 시장은 다르다. 그 간극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가 전시회의 글로벌 위상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독자적인 글로벌 전시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실현되려면,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그 전시회는 어느 시장의 진입 통로가 될 것인가. 한국 시장인가, 아시아 시장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전시회의 이름을 무엇으로 짓든 기업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논의 어디에도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은 없었다.


바이어를 '모셔오는' 것과 '오게 만드는' 것의 차이


해외 바이어 유치 문제를 보면 이 간극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전시회의 바이어 유치 방식은 오랫동안 같은 형태를 반복해왔다. 숙박비와 항공료를 지원하고, 전시장 안에서 몇 시간의 상담 자리를 마련하는 것. 이 구조 자체가 본질적 한계를 안고 있다. 지원이 끊기면 바이어도 끊긴다. 전시회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아니라, 지원금이 만들어내는 방문인 셈이다.

바이어가 자기 돈을 내고 기꺼이 오고 싶게 만들려면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몇 시간의 상담 테이블이 아니라, 실제 기업의 공장을 방문해 생산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도시 산업단지를 직접 둘러보며 한국 제조업의 스케일을 체감하고, 정부와 지자체 산업 담당자와의 미팅을 통해 세제 혜택과 정주 환경, 문화적 맥락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는 실질적 동기가 생겨야, 비행기표를 스스로 끊는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주최자는 바이어 유치 자체를 대행사에 위탁한다. 그 결과 바이어 데이터와 네트워크는 주최자가 아닌 대행사의 자산으로 쌓인다. 매년 반복되는 행사임에도 주최자가 축적해야 할 본질적 경쟁력이 외부에 머문 채 내재화되지 않는다. 1박 2일짜리 바이어 유치 프로그램으로 글로벌 전시회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도끼로 로켓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회전하는 통합 논의


포럼마다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의제가 있다. 국내 유사 전시회 통합 전략이다. 비슷한 주제의 전시회들이 각자의 이름을 달고 난립하는 현실을 정리하자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실제로 통합이 성사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주최자 이해관계, 부처 간 칸막이, 지자체의 정치적 계산이 뒤엉켜 논의는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돈다. '통합하자'는 말이 해마다 반복된다는 것 자체가, 통합이 되지 않는다는 가장 솔직한 증거다. 정바카라은 항상 거창하고, 실행은 항상 쪼그라든다.

한국 전시산업 발전을 논하는 자리가 왜 매번 공허하게 느껴지는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판을 짜는 기준이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전시회의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시회를 이용하는 기업이 어느 시장에 닿고 싶은지, 해외 바이어가 왜 이 땅을 찾아야 하는지,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 먼저다.

글로벌 전시회는 규모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객이 반드시 와야 할 이유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생긴다. CES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미국이 크고 강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기업들이 그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시장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시회가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갖고 싶다면,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은 어느 시장에 진입하게 되는가. 그 답이 명확하지 않은 한, 논의는 앞으로도 공허하게 반복될 것이다.


어제 청주 오스코에서 던지지 못한 질문을 이 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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