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리나 작은 편지 (7)
일본어 번역가 김연경(영어 이름 리나)입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만나니 웃음이 나네요!
MBTI가 뭐예요?
얼마 전 한 자리에서, 제가 상대에게 들은 첫 질문이었습니다. 이때는 지금과 달리 웃음이 나지 않았어요. 일단 상대의 말은 속도가 아주 빠르고 톤이 높았어요.
"전 E**J예요. M 씨는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전 E**P요. J구나~."
"네. 그런데 전 일할 때는 J지만 다른 때는 J가 아…"
"J들이 엄청 계획적이라서 피곤하다던데, 맞아요?"
(중략)
"번역이라면 어떤 번역을 하세요? 바카라 같은 건가?"
"아, 안 그래도 번역가라고 소개하면 많은 분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이 일은 바카라을 내는 출판 번역이 있고, 넷플릭스 같은 곳의 영상을 번역하는 영상 번역이 있고요. 제가 주로 하는 건…"
"일본어로 된 바카라 자주 읽어요?"
말이 끝나기 전에 질문하니, 상대가 제 말을 경청하는지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이내 이해했어요. 그와 저는 처음 만났고, 어색해서 긴장하고 말실수를 하기 좋은 환경이잖아요. 잠깐 봤을 뿐인데 그의 경청 능력을 낮게 보는 건 옳지 않아요.
"사람과 처음 만나면 긴장합니다"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처음 만났을 때 경청이 어려울 수 있다면, 번역이라는 환경에서 경청은 어떨까요?
바꿔서 말하겠습니다. 번역가가 일할 때,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경청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저는 대본이 없는 영상을 번역했을 때였어요.
영상 번역을 하면서 여러 대사가 한꺼번에 들릴 때. 배우가 너무 흘리듯이 이야기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때가 있어요. 예전에 영화를 번역했습니다. 영상 번역 툴(영상을 재생하면서 자막을 입력할 수 있는 도구)에서 2초 앞으로 단축키를 끊임없이 누르면서 들어도 대사가 안 들리더라고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번역 툴에 있는 0.5배속을 누르고 들었습니다. 안 들렸습니다. 결국 0.1배속을 누르고, 영상의 10분의 1 속도로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낱낱이 분해하고 듣다 보니 드디어 들렸답니다.
"뭐라고 쓸지 고민했겠네." 이후 다른 영상 작품을 보면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케이크를 들고 가다가 공사 현장에서 그만 엎어 버립니다. 여러 인부가 캐리에게 빨리 비키라면서 끊임없이 소리치는데요. "거기 밟으면 안 되지!", "아직 안 말랐는데!", "아니! 반대 방향으로!", "미안하면 맥주나 사든가요"… 짧은 몇 초에 수없이 쏟아지는 말은 대부분 깔끔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상 번역에서는 들리는 말을 최대한 작성해야 해요. 번역가의 경청과 센스가 요구되죠.
위와 같은 상황에서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해, 번역가 대부분은 번역 툴을 사용합니다.
저는 영상 번역을 할 때 Subtitle Edit, Ooona 등을 썼습니다. 게임이나 관광 같은 산업 번역을 할 때 Trados, memoQ, Phrase 등을 사용했습니다. 생소한 번역 툴을 말하다니, 이름을 처음 듣는 분은 어리둥절하실까요?
제가 굳이 여기까지 말씀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번역가라면 번역 툴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번역 회사에서 번역 툴을 사용하라고 요청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번역 툴에는 배속 기능이나 번역에서 오류 찾기, 반복되는 문장 찾기 등의 기능이 있어요. 시간, 정확성, 가독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답니다.
여러분의 경청 능력 상승뿐만 아니라 빠릿빠릿하게 일할 수도 있게 해 주는 번역 툴. 어려울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현명한 햇살 님은 블로그, 유튜브, 챗지피티와 같은 AI, 컨설팅을 활용해 공부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어요. 대사가 잘 안 들리거나 잘 모르는데 과하게 추측하고 번역하시면 안 돼요. 당연한 말처럼 들리시나요? 그러나 원문이 너무 어려우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랍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그와의 만남도 비슷했습니다. 상대를 추측하지 않고 이해했더니, 대화를 두 시간 가까이 풀어 나갈 수 있었어요. 제가 편했는지 상대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까지 말해 주더군요. 그 말로, 그를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김연경
<소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8년 차 번역가.
일본어, 중국지역통상학,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어 번역가로서 출판, 비즈니스, 영상,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며 저서로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공저), ⟪New Square 01 일상적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공저), 번역 카지노 게임 ⟪번역하다⟫(공저), 땅끝해남에세이 당선작 ⟪단순한 삶⟫(공저), 역서로 ⟪일단 나부터 칭찬합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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