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와의 협연

by루미상지
완주군 송광사

어느덧 찾아온 가을, 집에서 가까운 완주군 송광사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부부와 같이 갔다.

해 질 무렵 고즈넉한 산사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송광사 입구의 작은 연꽃 방죽에 피어있던 연꽃들은 다 지고 커다란 연잎들도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절 안으로 들어서자 빨간 꽃무릇이 반긴다. 우리는 여유 있게 도착해 절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연꽃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깔끔하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흑백 연꽃, 붓 터치가 보일듯한 그림 같은 연꽃, 꽃 속의 수술까지 자세히 보이는 화려한 연꽃, 연밥과 같이 있는 정갈한 연꽃 등 다양한 사진들에 눈과 마음을 뺏기며 감상했다.


여섯 시가 되자 사찰음식으로 저녁 식사가 제공되었다. 오래전에 사찰음식을 먹어 본 적이 있었다. 맛은 심심했지만, 왠지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 밤에 먹은 사찰음식은 연잎밥, 채소 샐러드, 노각 무침, 버섯 튀김, 옥수수와 채소 부침, 두부조림, 김치, 연잎 차, 포도 세 알이었다. 역시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았고 깔끔하고 담백한 맛으로 개운했다.

‘음식 먹을 때 밥 한 톨, 고춧가루 하나도 남기면 안 된다’

오늘 밤 절에서 사찰음식을 먹으며 제대로 된 발우공양을 실천해 볼 기회가 온 것 같다. 발우공양에는 생명과 노고에 대한 감사가 들어있다. 농부의 땀방울과 햇빛, 바람, 물 등 자연에 대한 은혜가 있어, 음식을 남기거나 지나치게 많이 담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된단다. 먹을 만큼만 받고 깨끗이 비움으로써 욕심을 내려놓는 수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양이 적은 나는 음식을 나눠주시는 분에게 조금만 달라고 부탁하며 받았는데도 양이 많았다. 꾸미(남편)와 나는 연잎밥 하나를 가지고 둘이 나눠 먹었고 음식물 찌꺼기는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정갈한 음식을 준비해 주신 분들께 감사기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일곱 시에 시작될 음악회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관중 사이에 스님과 비구니 스님, 신부님, 수녀님의 모습이 보여 조금 의아했다.

크고 맑은 종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지며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2011년에 시작된 산사음악회는 벌써 열여섯 해를 맞았다고 한다. 음악회 이름인 ‘나비채’에는 나누고, 비우고, 채우는 삶의 뜻이 담겨 있단다.

지휘자는 먼저 현악기와 목관악기를 소개하며 어떤 소리가 나는지 직접 들려주었다. 곡을 연주하기 전에는 청중들이 곡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곡에 대한 설명을 해주어 감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오르간 협연이 있었고, 영화 <인터스텔라> 중 ‘콘필드 체이스’,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등 귀에 익은 명곡들로 무대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신부님이 무대에 등장했다. 신부님은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오르간을 공부하셨고 연주 활동을 계속해 오셨다고 한다.

몇 년 전, 잠깐 미국에 머물렀을 때 오래된 교회에서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었다. 유서 깊은 교회 벽면에는 거대한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파이프에서 들려온 맑고 깊은 소리에 가슴 뛰었었다.

오늘 밤은 야외무대여서 작은 오르간 앞에 신부님 혼자 앉았다. 하나둘 보이던 별들이 어느덧 밤하늘에 가득 차 쏟아져 내릴 듯 반짝거리며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신부님이 양손을 오르간 위에 올리자 미리 합주를 약속이나 한 듯 적막을 깨고 풀벌레들이 일제히 노래하기 시작했다. 방울벌레와 여치, 귀뚜라미가 오르간 연주보다 먼저 가냘픈 소리와 미세한 떨림 음,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르 사르 찌르르 차르르 또르르 뚜르르~~~”

산골 작은 산사의 앞마당을 가득 채워 앉아있던 청중들은 뜻밖의 화음에 놀라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신부님이 건반 하나를 누르며 오르간 연주는 시작되었고 풀벌레들은 합창했다.

“샤르르 쓰아 쏴아아 아~~~

오케스트라와 오르간 화음에 맞추는 꽉 찬 풀벌레 노랫소리는 낭랑했다. 신부님이 잠시 멈추면 풀벌레는 더 크게 노래했고, 오르간 소리가 커지면 풀벌레 소리는 작아졌다. 합주 소리는 투명한 가을 공기 사이로 퍼졌고 맑은 밤하늘에 청명하게 울렸다.


찬조 출연해 준 풀벌레들은 갈고닦은 화음으로 맡은 몫을 톡톡히 했다. 오늘 밤엔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된 산사음악회였다. 깊어가는 가을 고즈넉한 산사 작은 음악회에서 가슴 따뜻한 만남의 장을 보았다. 불교 사찰에서 하는 음악회에 풀벌레들과 천주교 신부님, 수녀님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니 화합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세대와 성별, 계층 간에 편을 가르고 나누는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보며 마음이 포근했다. 무르익어 가는 가을밤 산속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 우리를 배웅하는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는 계속 뒤를 따라왔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