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문을 뚫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첫 번째 임장을 다녀온 뒤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처음에는 그냥 천천히 찾아보려고 했다.
집은 한두 군데 보고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와 살아야 했고, 대출도 받아야 했고, 무엇보다 가진 돈보다 집값이 컸다.
그런데 막상 마음에 드는 집을 하나 발견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혹시 이 집을 놓치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다시 집을 보러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 좋은데요?”
이번에는 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괜찮았다.
집 안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마음에 드는 집이라는 게 중요했다.
중개사도 내 표정을 읽은 모양이었다.
“이 가격에 계약하기 쉽지 않아요.”
그러면서 바로 말을 이었다.
“사모님, 이건 빨리 결정하셔야 해요. 계약금 먼저 넣어주세요. 집주인한테 바로 계좌번호 넣어달라고 안내할게요.”
사모님.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웃겼다.
사모라니.
내가 사모님이라는 말을 들을 일이 있나.
그런데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나는 어느새 계속 사모님이 되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엄마랑 상의하고 바로 넣을게요.”
“계약금은 얼마로?”
“얼마로 해야 하는데요?”
“200.”
“……?”
나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100?”
“100이요.”
“전에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아, 그러세요? 그럼…”
중개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돌렸다.
“사모님은 집을 좀 잘 만나시나 보네요.”
집을 잘 만난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집에도 운이 있는 걸까.
사람도 사람을 만나듯 집도 사람을 만나는 걸까.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벌써 집과 내가 만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극존칭이 싫지 않았다.
돈이 오가는 상황에서 ‘사모님’이라는 말은 묘하게 그럴듯했다.
웃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오늘 하늘생명에서 대출 상담 전화 갈 거예요. 전화 잘 받아주세요.”
“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집을 계약하는 이야기에서 갑자기 대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집을 살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중개사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출이 필요했다.
문제는 내가 대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일단 알아봐야 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문자가 왔다.
>
계약금 부탁드립니다.
나는 문자를 한참 바라봤다.
계약서는 쓰지도 않았는데 무슨 계약금이야.
잠시 후 또 문자가 왔다.
>
오늘 1시간 안에 바로 입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까지 왔다.
“사모님, 아직도 안 하시면 어떡해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저 지금 집에도 못 갔어요.”
“네?”
“운전 중인데 어떻게 바로 입금해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가계약금 넣는 거잖아요. 계약서도 아직 안 썼는데요.”
상대는 잠시 조용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말했다.
“그럼 다른 분에게 넘어갈 수도 있어요.”
나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전화를 끊었다.
무슨 돈을 그렇게 바로 넣으라고 난리인지.
이상했다.
집을 사는 일이 원래 이런 건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람이 갑자기 쫓기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집은 너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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