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다시 만난 세계
선생님과 헤어지고 5년 후, 나는 12살이 되었다. 나는 세상을 그림으로 담고 있었다. 내가 지난 5년 동안 그려온 그림이 담긴 10개의 스케치북엔 무지개가 뜬 우리 마을이 그려져있다. 5년 전 선생님이 떠난 직후 뜬 무지개를 그린 그림이다. 나는 보름달이 뜬 날엔 항상 같은 소원을 빌었다. 내가 라퓨티스라면, 우라스티로 달려가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대륙의 서쪽 끝,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바다 한가운데에 거대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이한 자연현상이라 부르며 두려워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말했던, 우라스티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가 마침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가방에 10개의 스케치북과 연필 5자루를 넣고 선생님이 떠났던 그 길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라퓨티스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라퓨티스가 아니라고 기록자가 되지 않은 법이 어디있겠는가. 나는 계속 걸었다. 선생님이 마을에서 '좀' 가깝다고 하셨던 도시에 갔다. 그 도시에는, 마을에서는 잘 맡아지지 않던 매연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풍성해야 할 나무가 아파트 복도에 닿지 못하게 한쪽만 잘려있었다. 계속 걷다가 나는 도시 끝에 있는 작고 푸른 언덕 위 작은 나무 아래에 앉았다. 그리곤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 그렸다. 내 그림 속 이 도시는 회색 투성이 그림자 뿐인 것 같았다. 회색 건물, 회색 풀과 나무, 회색 매연, 회색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은 마치 흑백 사진 같았고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소름이 끼쳤다. 다시 가방에 스케치북과 연필을 넣고 나무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
이상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나는 분명 가방을 옆에 두고 잠들었는데, 지금 난 가방을 맨 채 하늘에 둥둥 떠있었다. 이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일까. 그러다 나는 갑자기 번뜩 생각했다.
"근데 왜 내가 하늘에 떠 있는 거지?"
나는 그대로 바람에 이끄는 대로 날고 있었다. 그래, 나는 바람에 이끄는 대로...?!?!?!?! 설마 내가 라퓨티스인가? 라퓨티스는 사춘기가 찾아올 나이대에 날아서 우라스티에 간다고 선생님이 그랬는데!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라퓨티스였다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조금 전까지 내가 누워 있던 작고 푸른 언덕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중심을 잃고 허공에서 한 바퀴 휘청였다.
"으앗! 떨어진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몸은 추락하는 대신 부드러운 솜이불 위에 얹힌 것처럼 다시 중심을 잡았다.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이건 정말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 아니, 온 세상의 바람이 나를 조심스럽게 떠받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방 속 10권의 스케치북과 연필 5자루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충격이 가시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복받쳐 올랐다. 지난 5년 동안 보름달을 보며 빌었던 소원,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인간 아이라 믿었던 날들, 그리고 '라퓨티스가 아니라고 기록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냐'며 무작정 걷기 시작했던 무모함까지. 그 모든 조각이 하나의 거대한 운명처럼 짜 맞춰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제가 날고 있어요. 저 정말로 선생님이 계신 우라스티로 갈 수 있나 봐요!'
바람은 나를 대륙의 서쪽, 그 소문 속 빛기둥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끌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내가 스케치북에 그렸던 무지개 빛깔의 고향 마을과는 사뭇 달랐다. 매연으로 가득 찬 도시를 지나자, 이번에는 거대한 기계들이 굉음을 내며 메마른 땅을 파헤치는 쓸쓸한 농촌이 보였고, 조금 더 날아가자 화려한 불빛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한 채 걸어가는 차가운 빌딩 숲이 나타났다.
선생님이 왜 이 세상을 '닿지 않는 세계'이자 '따로따로 춤을 추는 코스모스'라고 불렀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그 먹먹함이 온전히 전해졌다. 나는 공중에서 가방을 열어 스케치북 한 권과 연필 한 자루를 겨우 꺼냈다. 비록 바람 때문에 손이 떨렸지만, 이 차갑고 외로운 세상의 풍경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자가 되어 이 슬픔을 잡아두는 것, 그것이 라퓨티스인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P.S. 하루 일찍 보여드린 3부 1화, 어떠셨나요? 1부의 익숙한 장면들이 현재와 부딪히며 만들어낼 새로운 연대기를 기대해 주세요. 이번 《우라스티 연대기 3부 : 다시 만난 세계》는 가림막 앞에서 망설이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첫 달 0원] 멤버십 프로모션과 함께 진행됩니다. 부담 없이 첫 달 무료로 가입하셔서 이리엘과 그리고 이리엘을 찾아온 루시안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금요일부터 본격적인 본편 연재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