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문장이 된 예지몽
"으악!" 내가 소리치며 일어났다.
"아... 아쉽다. 결말을 못 봤어!"
나는 아까 전까지 이리엘과 대륙을 누비고 라퓨타에 있었다. 마치 내가 실제로 영화를 본 것처럼 생생한 꿈이었다.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이리엘과 모험을 했었는데 결말을 보기 전에 깨 버려 너무 아쉬웠다. 애써 아쉬움을 삼키며 바카라상에 앉아 형광등을 켰다. 그리고 나는 꿈의 잔상이 사라지기 전에 꿈의 내용을 메모했다.
───
• 라퓨타
• 강가
• 할아버지와 이리엘
• 잡기 어려운 대어.
• 38분 안에 먹어야 한다고 했다.
• 세리엔과 노에르.
• 같이 먹자고 했다.
• 이상했다.
• 이리엘이 떠올랐다.
• 바람
• 하늘
• 라퓨타
• 세르반
• 리엔베르
───
'라퓨타'라는 이름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 세계를 그대로 부르기에는 어딘가 맞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름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온 단어처럼. 나는 한동안 그 이름을 지우지 못한 채 머릿속을 맴돌게 두었다. 그러다 문득, 그 이름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우라스티(Urasti).’
내가 만든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단어를 뒤늦게 떠올린 것 같았다. 그곳에는 이름이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처럼 사나운 바닷바람이 느껴졌으니까.
나는 꿈에서 깨었을 때 한 세계의 서늘함이 내 몸에 묻어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리엘이 도시에서 받았던 충격으로 인한 흉터를 가진 채 이리엘 이야기 집필을 시작했다.
───
이리엘은 평소처럼 같이 지내는 가옐 아저씨를 따라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와 있었다.
오늘 따라 발끝으로 바다의 시원함이 올라오고 바람도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아저씨. 오늘따라 더 시원해요!"
"이리엘, 뭔 소리야? 바다야 늘 같지." 가옐 아저씨가 덧붙였다.
"향도, 감각도 같은 걸."
가옐의 낙싯대가 크게 휘였다.
"앗?"
"오!"
그는 비싸 보이는 큰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와, 아저씨! 엄청 커요!" 이리엘이 폴짝폴짝 뛰었다.
"이놈은 세리엔이랑 노에르랑 같이 먹자." 가옐 아저씨가 말했다.
"이 비싼 대어를요? 아저씬 같이 사는 애들한테 비싸거나 큰 건 안 주셨잖아요. 돈 벌어야 한다고." 이리엘이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횟감이라 38분 안에 먹지 못하면 못 먹는다고요."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어떻게 물고기가 특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냐?" 가옐이 황당해 했다.
"어… 아저씨?"
이리엘의 발끝이 물 위에서 떨어졌다.
당황한 이리엘이 허둥대며 울먹였다.
"아, 아..아저씨!!!"
모래가 닿지 않았다. 이리엘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꺄아악!!!" 이리엘이 비명을 질렀다.
"이리엘!" 가옐이 놀라며 소리쳤다.
"아저씨!!!!"
이리엘이 소리쳤다.
점점 아저씨가 안 보이고 희미하게만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엘의 13년 인생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지 않던 생생한 바다가 언젠가 보았던 교회의 파란 유리창처럼 보였고, 매일 맡았던 바다의 짠내가 점점 들리지 않았다.
가옐 아저씨가 놀라더니 이리엘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리엘의 머리카락이 먼저 바닷바람에 휘날렸고, 그 다음엔 어깨가, 그리고 손끝이 멀어졌다.
"이리엘...."
가옐은 주저 앉아 허공을 붙잡으려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이리엘이 서 있던 자리를 오래 바라보았다.
"으아앙~! 아저씨!"
이리엘은 울며 아저씨를 찾았다. 하지만 이리엘에게서 떠나가듯 아저씨는 서서히 사라졌다. 이리엘의 눈엔 아저씨가 자신에게서 떠나고 있는 것 같았다. 겁이 났다. 하지만 허허벌판 같은 바다 위에 설 자신도 없고, 이 신비로운 바람은 이리엘을 태우고 떠나는 말로만 들었던 느린 롤러코스터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이리엘은 떨어질까 걱정하면서도 바람이 이끄는 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아래에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있었다.
───
나는 이리엘의 모험을, 이리엘이 직접 말하는 방식으로 바꿔볼까 생각했다. 그 생각 끝에서 새로운 인물이 필요해졌다.
루시안(Lucian).
새벽에 태어났다는 의미를 떠올리며 붙인 이름이었고, 동시에 내가 오래 좋아해 온 발음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름이었다. 이야기를 옮겨 적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장을 이어가다 보면 루시안과 이리엘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곳에 있었지만. 마치 처음부터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이름이 아니라 관계가 먼저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
이리엘은 갈색 지붕 집으로 갔다. 가정교사로 이곳에 온 지 스물아홉번째 날이었다. 그동안 가르쳐 온 루시안은 하얀 백합처럼 순수한 어린아이 그 자체였다. 이리엘은 갈색 지붕집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 날이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야기해 주세요!”
루시안이 웃으며 말했다.
이리엘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럴까. 그럼 내 이야기를 해 줄게.”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야….”
───
‘갈색 지붕 집’은 땅을 뜻하는 장소였다. 왜 하필 갈색이었는지는 아직 기록하지 않았다. 이 문장을 입력한 뒤에, 나는 잠시 이리엘을 떠올렸다. 세상을 거의 알지 못하던 열세 살의 이리엘. 그 아이가 바람을 타고 우라스티로 향하는 동안, 나는 그 여정에 점점 더 많은 장소를 붙이기 시작했다. 머물렀던 곳들, 스쳐 지나간 풍경들, 그리고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 이리엘은 단순히 이동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나는 장소마다 무언가를 ‘보게 되는’ 아이였다. 나는 그 과정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지나며, 스스로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기록으로.
───
안녕하세요. 서하입니다. 원래 2부는 수요일부터 정식으로 들려드릴 예정이었지요. 하지만 제가 만든 이 세계의 문을 조금이라도 빨리 열고 싶어서, 참지 못하고 하루 일찍 독자님들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8화 때 깜짝 선물을 들고 찾아왔던 그날 밤처럼,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2부의 첫 페이지를 먼저 꺼내어 놓습니다. 이번 2부는 1부의 이야기들이 화자의 손끝에서 어떻게 문장으로 태어났는지, 그 창작의 비밀과 연결고리가 담긴 조금 특별한 구조로 이어집니다. 몇몇 이야기들은 실제로 제가 깊이 고민했던 파편들이기도 합니다. 부디 이 새로운 오프닝이 독자님들께 반가운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P.S. 하루 일찍 보여드린 2부 1화, 어떠셨나요? 1부의 익숙한 장면들이 현실의 기억과 부딪히며 만들어낼 새로운 연대기를 기대해 주세요. 이번 《우라스티 연대기 2부 : 문장이 된 예지몽》은 가림막 앞에서 망설이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첫 달 0원] 멤버십 프로모션과 함께 진행됩니다. 부담 없이 첫 달 무료로 가입하셔서 이리엘과 작가인 화자 '나', 그리고 새롭게 찾아올 루시안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요일부터 본격적인 본편 연재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