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다용도실에는 10년째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드럼세탁기가 있다. 바닥에서 딱 5cm 올라온 단차 공간이 녀석의 전용 무대다. 그런데 어느 날, 탈수 모드에 들어간 세탁기가 덜덜 덜덜 거친 진동을 일으키더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쿵. 결국 5cm의 단차 턱을 넘어 앞으로 푹 기울어져 버렸다. 완전히 엎어진 건 아니고, 턱에 비스듬히 걸쳐진 채 멈춰 섰다.
문제는 그 상태로는 세탁기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이었고, 더 큰 문제는 이 집엔 몸무게 45kg짜리 여자 사람 혼자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누구를 부를까 하다가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리를 굴려 꾀를 냈다. 맞은편 벽에 등을 바짝 대고, 기울어진 세탁기 경사면에 두 다리를 얹었다. 헬스장에서 레그 프레스를 하듯 온 힘을 다해 다리를 쭉 폈다. 오, 밀린다! 세탁기가 턱 위로 쑥 올라갔다. 내친김에 이번엔 세탁기에 등을 대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벽 쪽으로 밀어 넣었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허리에서 ‘앗’ 하는 비명이 터졌다. 삐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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