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사 나로 살아지쿠다!
살려고 잊은 기억과 현재를 살기 위해 붙잡은 기억이 서로를 부둥켜 앉고 우는 4월이다.
4월 제주엔 유독 비가 자주 내렸다. 맑게 갠 날에도 거센 바람이 불었다. 바람의 속성이 무엇인가.
머리카락이라도 헝클어 흔적을 남기고, 기어코 지나갔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제주엔 그런 날들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삶은 과거로 흐르지 못하고 웅덩이처럼 고였다. 지키지 못한 순간이 끝없이 반복되던 곳. 남겨진 사람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웅덩이를 품은 섬이 됐다. 제주에는 해마다 4월이면 과거가 되지 못한 삶들이 돌아와 봄 볕에 벌어진 상처를 드러냈다. 돌아갈 수도 돌려보낼 수도 없는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계절, 봄이다.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4월을 애도할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었다. 4.3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내 이름은]을 봤고, 세월호를 모티브로 한 김애란의 단편 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다시 읽었다.
두 작품은 시간과 배경 모두 다르지만, 그날의 폭력과 무력함 만은 같았다. 마땅히 지켜졌어야 할 삶이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진실이 남은 자리. 사건은 남겨진 이들에게 빚으로 남아, 오랫동안 그 삶에 바람을 일으켰다.
영화 속 '정순'은 스스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모두 지웠다. 하지만 봄바람이 불기만 하면, 지워진 기억은 몸을 통해 터져 나왔다. 반면, 명지는 기억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기억을 끝까지 마주하는 일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죽은 남편이 살리려던 제자의 유일한 유족을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거대한 비극을 관통한 그들은 분노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트라우마란 날개가 꺾인 채 삶을 이어가는 일이었고, 사건의 종료가 아닌 시작을 뜻했다. 삶의 모든 문장을 파괴한 뒤 시작되는 긴 후유증 말이다.
바깥은 눈부신 봄날이지만, 영혼을 다친 이들은 흑백 필름이 돌아가는 그 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정순과 명지는 잊는 것과 붙잡는 것 사이에서도 결국,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외면하지 말라고 했다. 회피하고 덮어두는 걸로는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고 말이다.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김애란-단편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에서]
폭력적 기억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때문에 우리는 상처를 없애기 위해 애쓰기보다 그 상처를 안고도 무너지지 않을 힘을 키워야 했다. 그러려면 울고 있는 기억을 억지로 달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남겨진 이들이 ‘정순‘처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 오래 걸렸수다. 이제사 나로 살아지쿠다.'
- 영화 [내 이름은] 중- 정순의 대사
[나를 달래는 기록 # 9]
풍경이 풍경을 배반하고, 계절이 계절을 앞지르며 달려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뒤처지더니 섬처럼 남겨졌다. 살아남은 것이 죄가 되지 않기를, 기억하는 것이 통증으로만 남지 않기를 기도한다. 4월의 푸르름이 더 이상 우리를 배반하지 않길 바라며, 나는 오늘의 문장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