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 모드

by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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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면 곤란하기에 나의 휴대폰은 365일 무음 모드다. 물론 그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고요함을 은근히 즐기는 편이다. 차마 내 의지로는 외면하기 힘든 숱한 연락과 메시지들 사이에서 "무음이라 못 들었어", "나중에야 봤네"라며 스스로에게 합법적인 유예 기간을 주는 셈이다. 내게 무음 모드란 세상과 나 사이의 무차별적인 연결을 한 겹 부드럽게 걸러주는 다정한 필터에 가깝다.


사실 무음 모드라고 해서 세상의 호출을 온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다. 손목에 채워진 스마트워치가 매 순간 알림을 띄우고 메시지의 내용까지 친절하게 읊어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자극에 즉각 응답하지 않아도 될 '약간의 틈'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한숨 크게 고르고 반응할 수 있는 나만의 선택권. 만약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하고 소통 지향적인 사람이었다면 상황에 맞춰 재빨리 벨소리로 전환하며 살았겠지만, 나는 이 기능을 나만의 호흡을 지키는 핑계이자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서늘한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당장 전화를 받아야만 하는 위급한 연락이 왔을 때, 내가 만든 이 무음의 동굴에 갇혀 그 찰나를 놓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다. 내가 겹겹이 쳐둔 이 안전한 결계 때문에 삶의 결정적 순간들을 나도 모르게 흘려보냈거나 소리 없이 사라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안전하지만 적막한 방패 뒤에 숨어 지내다 보니, 문득 언젠가는 이 무음의 결계를 걷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이 나를 향해 내는 소리들을 필터 없이, 다가오는 그대로 껴안고 맞이하는 삶. 그렇게 날것의 소음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삶도 꽤 괜찮지 않을까, 가만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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