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닐다

by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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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딘가에 도착하면 바로 들어가지 않는 편이다.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을 때도 그렇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찾아갔을 때도 그렇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바로 앞까지 와서도 주변을 한 바퀴쯤 돌아본다. 골목을 조금 더 걸어보기도 하고, 근처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시간이 남으면 서점에 들어가거나 괜히 다른 가게의 유리창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약속 시간이 가까워진다. 그제야 천천히 원래 가려던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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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런 행동을 두고 내가 시간을 잘 못 쓰는 사람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굳이 돌아갈 필요 없는 길을 돌아가고, 이미 찾은 장소 주변을 한참 기웃거리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목적지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가고 싶은 곳은 분명하다. 다만 그곳에 가는 길을 하나로 정해두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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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서도 비슷하다. 꼭 보고 싶었던 곳이 있어도 그곳만 보고 돌아오는 날은 어쩐지 아쉽다.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가게 하나를 발견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전시 포스터를 보고 걸음을 멈추는 순간이 있어야 하루가 조금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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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목적지대로 가면 된다. 그 주변을 몇 바퀴 돌았다고 해서 결국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건 도착하기 전의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잠깐 다른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정해진 곳으로 가는 중에 굳이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원래 길로 들어서는 것.

도닐다.

생각보다 나는 이 단어와 꽤 비슷하게 걷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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