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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있다. 영수증처럼 바스락거리는 일상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수분이 바짝 말라가는 기분이 들 때. 꽉 막힌 퇴근길 지하철 안이든, 쉴 새 없이 알림이 울려대는 단톡방 한복판이든, 온갖 바카라임감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주 자그마하고 발칙한 소망 하나가 고개를 든다.
‘아, 한 사흘만 깔끔하게 증발하고 싶다.’
마치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치이익 소리를 내며 흔적도 없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상상. 그것은 지친 일상이 보내오는 가장 솔직한 SOS 신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꾸는 증발은 거창한 도피나 영원한 잠적이 아니다. 그것은 주도적인 일시 정지에 가깝다. 내가 없으면 당장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굴던 업무 메일함과 나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관계로부터 자발적으로 전원 버튼을 끄는 것. 그리고 세상이 “어? 어디 갔지?” 하고 고개를 두리번거릴 때, 낯선 동네의 작은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보는 짜릿한 숨바꼭질이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라는 무거운 옷을 입고 살아가느라, 가끔은 내가 증발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 ‘증발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시간과 감정을 타인에게 온전히 내어주다 보니 정작 나를 채울 수분이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사라져 줄 필요가 있다. 휴대폰을 뒤집어놓고, 생산적인 생각은 전면 중단한 채,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의 속도나 가만히 들여다보는 무해한 시간 속으로 말이다.
과학 시간에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공기 중으로 증발했던 수증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하늘 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다가, 결국 더 맑고 깨끗한 비나 이슬이 되어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우리의 증발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잠시 자취를 감추는 것은 영원히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꽉 쥐고 있어서 뜨거워진 스스로를 식히기 위함이다. 그렇게 공기 중을 둥둥 떠다니며 나만의 숨을 들이쉬다 보면, 신기하게도 다시 내 삶으로 톡, 떨어질 단단한 에너지가 고여 가기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잠시 증발을 선택해도 좋다.
당신이 잠깐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후 다시 돌아왔을 때, 한층 더 맑고 촉촉해진 당신의 계절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