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100돌에 불거진 불편한 진실

세종은 무엇을 사랑했는가

by이영태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은 올해, 오래된 믿음 하나가 흔들리고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한글, 불편한 진실』이 그 진원지다. 세종이 백성을 가엾이 여겨 한글을 만들었다는,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부터 배워온 그 서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먼저 강 교수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 보자. 그의 방법론은 하나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동기를 판단하라. 세종이 훈민정음 어제서문에 아무리 "백성이 가엾어 만들었다"라고 적어놓았어도, 그 말을 뒷받침하는 후속 조치가 없었다면 그 말은 실체 없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가 든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부민고소법. 백성이 관리의 비리를 고소할 수 있게 한 이 법은 세종 2년에 폐지됐고, 이후 세종은 재위 32년 동안 이를 복구하지 않았다. 백성에게 '말할 권리'를 주려 했다던 임금이, 정작 백성이 말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 하나는 계속 막아둔 셈이다. 다른 하나는 삼강행실도. 위계 관계 속 하위자의 자발적 복종을 그려내는 이 텍스트를 근거로, 강 교수는 한글의 실제 쓰임이 백성을 가르쳐 순응시키는 교화, 즉 훈민(訓民)에 있었다고 결론짓는다. 애민이 아니라 통치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논리 자체는 정교하다. 감정이 아니라 행적으로 진심을 가늠하겠다는 태도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그 정교한 틀에 채워 넣은 증거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첫째, 증거의 대표성 문제다. 세종의 32년 재위 동안 기록된 정바카라은 무수히 많다. 노비의 산후 휴가를 7일에서 100일로 늘리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비 남편에게도 한 달의 휴가를 준 일. 사형수는 반드시 3심을 거치도록 한 금부삼복법.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막으려는 조치. 천민이라는 이유로 양로연 참석을 막자던 상소를 물리치고 신분 관계없이 노인을 대접한 일. 이런 사례들 옆에 부민고소법 미복구를 나란히 놓으면, 그림은 훨씬 복잡해진다. 상반된 증거들 중 자신의 결론에 맞는 것만 골라 쓰는 건, 행동으로 진심을 판단하겠다는 방법론 자체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는다.


둘째, 더 결정적인 문제는 시점이다. 삼강행실도의 한문 원본은 세종 16년에 반포됐지만, 정작 한글 번역(언해)은 성종 12년과 20년, 즉 세종이 죽은 지 수십 년 뒤에야 나왔다. 강 교수의 논증은 "세종의 행동이 세종의 의도를 말해준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데, 정작 핵심 증거는 성종의 행동이다. 주어가 슬쩍 바뀐 것이다.


여기서 반론이 하나 더 나올 수 있다. "노비 출산 휴가도 사실은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부려먹기 위한 것 아니었나."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논법을 끝까지 밀면 위험해진다. 잘해줘도 부려먹기 위해서, 못해줘도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 — 이런 식이면 세종이 무엇을 하든 다 설명이 가능해진다. 반증할 수 없는 주장은 검증 가능한 역사적 판단이 아니라,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신념에 가깝다.


그렇다면 애민이 맞느냐 하면, 그것도 확정할 수 없다. 애초에 서문의 "안타깝게 여겨"라는 문장조차 세종의 '말'이지 동기 그 자체가 아니다. 애민이든 훈민이든, 둘 다 세종의 불균질 한 행적 위에 사후적으로 얹은 하나의 서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가장 적은 가정으로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쪽이 어디인가. 나는 이 편이 맞다고 본다. 세종은 관심이 가는 프로젝트에는 깊이 몰입했고, 흥미가 덜한 실무(보급 체계 구축 같은)에는 그만큼 힘을 쏟지 않았다. 일관된 이념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관심사를 따라 들쭉날쭉 움직였다는 쪽이 더 적은 전제를 요구한다. 다만 이것도 증명된 진실이 아니라, 지금 가진 증거로 가장 검소하게 설명하는 잠정적 결론일 뿐이다.


결국 이 논쟁이 우리에게 남기는 건 세종에 대한 최종 답이 아니라, 하나의 습관이다. 어떤 인물이나 정바카라을 두고 "이것이 그의 진짜 의도였다"는 단일하고 매끈한 서사를 마주할 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체 행적 중 대표성 있게 뽑힌 것인가. 그리고 그 주장은 어떤 관찰이 나와도 살아남는 반증 불가능한 방패는 아닌가. 이 두 질문은 오백 년 전 임금의 마음을 헤아릴 때만이 아니라, 오늘 어떤 정바카라 결정자나 경영자의 '진짜 속내'를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마주할 때도 똑같이 유효하다. 매끈한 서사일수록, 그 매끈함이 만들어진 이유를 먼저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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