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집의 떡과 김칫국

젠슨 황 호명 효과가 드러낸 시장의 민낯

by이영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다. 그리고 김칫국은 떡이 나오기도 전에 마시는 것이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이 두 속담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누구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는 말 한마디에,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들썩였다. LG전자는 약 27% 급등했고 두산로보틱스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회동이 이루어지기도 전이었다. 구체적인 협력 내용이 발표되기도 전이었다.


결산보고서가 없어도 됐다. 공시가 없어도 됐다. 경영 실적도 필요 없었다. 왕이 그 자리에 있을 예정인 사람의 이름만 있으면 충분했다. 이것을 시장은 '협력 기대감'이라고 부른다. 나는 다르게 부른다. 환각이다.


두 현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젠슨 황이 SK하이닉스를 HBM4 공급사로 직접 명시하는 것과, 그가 LG 회장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건이다.


전자에는 실물 인과가 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는 HBM이 물리적으로 필요하고, SK하이닉스는 그 공급망의 핵심에 있다. 왕이 부른 것이 아니라, 왕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가장 잘 만드는 곳이 거기라는 구조적 사실이 있다.


후자에는 인과가 없다. 연상만 있다. 젠슨 황이 온다, LG도 거기 있다, LG도 AI와 연결될 것 같다, 오를 것 같다, 산다. 이 연상 사슬 어디에도 LG전자 자체는 없다. 그 회사가 무엇을 만들고, 어떤 구조로 돈을 버는지는 이 사슬에 등장하지 않는다.


언론이 키우고, 증권사가 불을 지피고, 개인이 환호한다


이 환각에는 증폭 구조가 있다. 혼자서는 이렇게 커지지 않는다.

언론은 '방한 기대감'이라는 검증 불가능한 감정을 뉴스로 포장한다. 증권사는 그 옆에서 '젠슨 황 방한 수혜주' 리포트를 낸다. 분석처럼 생겼지만 실은 연상 목록이다. 이 리포트가 거래량을 만들고, 거래량이 주가를 올리고, 주가 상승이 리포트를 정당화한다. 자기실현적 예언이 완성된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가장 비싼 가격에 개인이 달려든다. 불나방이 불이 뜨거운 줄 몰라서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옆 사람이 달려가니까 나도 달려가는 것이다. 성은은 왕만 거둘 수 있다. 호명으로 후궁이 되지 않는다. 달려든 사람은 수만 명이다.


AI 가전이라는 서사의 실체


LG전자 주가가 오른 배경에는 또 하나의 서사가 있다. AI와 가전의 결합, 이른바 피지컬 AI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장고에 AI가 들어간다고 해서 냉장고 교체 수요가 폭발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냉장고가 고장 나거나, 이사하거나, 10년이 지나야 바꾼다. 완전 자율주행차가 나왔다고 모든 사람이 1억짜리 차를 사지 않는 것과 같다. 기술의 완성과 시장 침투 사이에는 현실의 벽이 있다. 그 벽은 기술 수준과 무관하게, 수요 구조가 결정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진짜 AI 가전 시대가 오려면 집 자체가 서버가 되어야 한다. 냉장고와 에어컨과 조명이 각자 똑똑한 게 아니라, 하나의 마스터 AI가 집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통제해야 비로소 가능한 세계다. 내가 귀가할 시점을 예측해 불이 켜지고, 달걀이 떨어지면 자동 주문이 되고, 가족의 일정에 맞게 온도가 조절되는 집. 그 마스터 AI는 아직 없다. 홈 서버 표준도, 이종 기기 간 프로토콜도, 데이터 신뢰 체계도 미완성이다.


그리고 설령 그 마스터 AI가 완성된다 해도 그것이 구글이나 애플의 것이 된다면, LG전자는 그 플랫폼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하드웨어 공급자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삼성이 세계 최고의 폰을 만들었지만 앱 생태계의 수익은 구글이 가져간 것처럼. AI 가전 시대의 주인은 가전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집을 운영하는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높다. 5년짜리 과제가 하루 만에 주가에 반영됐다. 그것도 삼겹살집 회동 예정일을 근거로.


그림자가 아닌 원천에 투자해야 한다


비슷한 착각이 하나 더 있다. 삼성전자가 잘 나가니 삼성전자 협력사를 사는 투자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논리는 거꾸로다.


삼성전자가 잘 나간다는 전제가 맞다면, 그냥 삼성전자를 사면 된다. 포장박스를 만드는 협력사는 삼성 매출의 일부가 희석되어 연동될 뿐이고, 삼성이 단가를 쥐어짜면 오히려 마진이 줄 수 있다. 하방은 연동되고 상방은 불확실한 구조다.


원천에서 멀어질수록 서사는 그럴듯해지고 인과는 희석된다. 복잡하게 사유한 것 같지만, 실은 서사를 따라 움직인 것이다.


기업가치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업가치는 그 기업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풀고, 이익을 쌓고, 그 미래가치가 주가에 반영되는 회로. 이 회로가 작동할 때 시장은 자원을 제대로 배분한다. 잘하는 기업에 돈이 모이고, 못하는 기업에서 돈이 빠진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장의 일부는 이 회로를 우회하고 있다. 왕이 이름을 부르면 가치가 생기고, 왕이 떠나면 가치가 사라진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기업 경영진도 학습한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왕 옆에 서는 것이 주가에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반영된다는 것을.


그것은 투자자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기업의 실질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다.


씨앗은 서사 위에 심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젠슨 황 방한을 이유로 주가가 오른 기업들을 볼 때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그 기업이 이 세계에서 진짜 무엇을 잘하는가. 그 역량은 젠슨 황이 없어도 유효한가. 그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진 것인가, 호명되어 생긴 것인가.

서사는 빠르게 오고 빠르게 간다. 구조는 느리게 형성되고 느리게 무너진다.

씨앗은 구조 위에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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