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이고 사람이고 시인입니다

by이세벽

저는 개이고 사람이고 시인입니다



개는 말입니다

길을 가다 개오줌 냄새 나면

코를 처박고 끙끙거리다 기어코 핥고 맙니다

어쩌다 목줄이 풀리면 개오줌 냄새를 따라

거리 이곳 저곳을 헤집기도 하지요


사람은 말입니다

길을 걷다 돈 냄새 나면

코를 박고 끙끙거리다 기어코 핥아 먹습니다

진심 버리고 돈 냄새 따라

세상 이곳 저곳을 헤매기도 하지요


시인은 말입니다

무심코 다니다 시 냄새 나면

코를 박고 끙끙거리다 기어코 눈물을 보이고 맙니다

간혹 생의 목줄을 끊고 시 냄새 따라

그리운 이곳 저곳을 떠돌기도 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시는 말입니다

목줄 풀린 개와 진심 버린 사람을

마음의 여과지로 걸러낸 것에 불과합니다

덕택에 여과지는 수시로 찢기고 더러워지지만

내 안의 개와 사람이 선물로 주기도 하고

생의 목줄을 끊는 순간 생겨나기도 하니까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개에게도 그리움이 있고

사람에게도 개가 있고

시인에게도 사람이 있고

심지어 개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말입니다

어떤 날은 개처럼 살고

어떤 달엔 사람처럼 살고

어떤 계절엔 시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좀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개 같은 사람이고

사람 같은 개이고

사람 같은 시인이고

시인 같은 사람이고

개 같은 시인이고

시인 같은 개입니다


젊은 시저.jpg그리운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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