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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무엇에 세금을 매겨야 하는가

국경을 넘는 부(富) 그리고 국경에 묶인 국가

by마글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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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캘리포니아주가 억만장자에게 순자산의 5%를 한 차례 부과하는 세금을 추진하자,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캘리포니아와의 거주 관계를 정리하거나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반면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남기로 했다. 대신 메타는 의결권 없는 새로운 종류의 주식을 발행하기로 했다. 저커버그가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잠재적인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주식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였다. 그는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향후 8년간 캘리포니아에 머무르기로 약속했다.


동일한 세금에 대해 세계적인 기술기업 창업자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누군가는 국경을 넘거나 거주지를 바꾸고, 누군가는 자본구조를 변경한다.


그런데 이 두 선택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금은 더 이상 소득을 얻은 뒤 정산하는 문제가 아니다. 거주지와 지배구조, 자산의 보유 형태, 나아가 기업의 미래 투자전략까지 결정하는 경제적 변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캘리포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에서는 초고액 자산가들의 해외 이주가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부유층 과세 문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갈등으로 재등장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자산가의 이탈과 과세 형평성을 둘러싼 논쟁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재정 부족을 해결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려 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어느 곳에서 투자하며, 어떤 방식으로 자산을 보유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조세국가가 직면한 새로운 딜레마다.


과거의 국가는 자국 영토 안에 있는 부를 과세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부의 소유자는 국경을 넘어 움직이고, 부를 만들어내는 기업은 여러 국가에 걸쳐 있으며, 자산의 상당 부분은 금융상품과 지식재산권으로 존재한다.


국가는 여전히 영토를 기준으로 작동하는데, 자본은 점점 더 영토의 제약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는 부자 증세 논쟁은 과연 세율이 높은가 낮은가의 문제일까.


나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1. 영국에서 사라졌다는 200조 원, 정말 사라진 것일까


최근 영국에서는 노동당 정부 출범 이후 해외로 떠났거나 영국과의 관계를 약화한 억만장자들의 합산 순자산이 약 1,210억 파운드에 달한다는 분석이 등장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200조 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이 숫자는 매우 충격적이다. 한 국가의 대규모 경제자원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부자가 해외로 이주했다는 사실과 그가 소유한 재산이 해당 국가에서 실제로 유출됐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가령 런던에 거주하던 억만장자가 스위스로 이주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가 보유한 영국 기업의 주식은 여전히 영국 기업의 지분일 수 있다. 런던의 부동산도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가 설립한 회사의 공장과 직원, 영국 내 사업활동 역시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단지 그 부자의 세법상 거주지가 바뀐 것이다.


따라서 1,210억 파운드라는 수치는 실제 은행 예금이나 투자자금이 국외로 송금된 규모가 아니라, 영국을 떠났거나 영국과의 관계를 줄인 부자들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의 합계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현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부자의 이주가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손실은 현재 보유한 재산 전체가 아니라 그 재산에서 앞으로 발생할 소득과 이익에 대한 과세권의 축소다.


자산가가 떠난 뒤에도 영국 소재 자산이나 영국에서 발생한 소득에는 영국의 과세권이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거주자에게 적용되던 해외 소득·자본이득 과세와 향후 경제활동에서 발생할 세수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그가 앞으로 설립할 기업, 투자할 스타트업, 운용할 금융자산이 다른 국가를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즉, 정부가 걱정해야 할 것은 당장의 자산 규모만이 아니다. 어느 나라가 미래의 세원을 확보하게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부의 이탈을 논하려면 최소한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사람의 이동, 자본의 이동, 그리고 경제활동과 과세권의 이동이다. 이 셋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결코 같은 현상이 아니다. 이를 구분하지 않는 순간 부자 증세의 경제적 효과는 과장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2. 프랑스의 75% 세금이 남긴 진짜 교훈


부자 증세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나라가 프랑스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연간 소득 100만 유로를 초과하는 초고소득층에 대해 최고 75% 수준의 과세를 추진했다.


슬롯적 반응은 극적이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고, 일부 기업인과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해외 이전을 검토했다.


이 사건은 이후 부자 증세 실패론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정확한 정바카라 평가를 위해서는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프랑스의 75% 과세는 일반적인 순자산 전체에 매년 부과하는 부유세가 아니었다. 최초에는 초고액 소득에 대한 과세로 추진됐지만 헌법적 논란을 거친 뒤, 일정 규모 이상의 보수를 지급하는 기업이 추가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수정됐다. 적용 기간도 2013년과 2014년의 보수에 대한 한시적 과세였다.


프랑스 정부가 예상한 세수는 2년간 약 4억2,000만 유로였다. 재정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프랑스의 기존 부유세인 ISF가 이 조치와 별개였다는 점이다. ISF는 2015년에 폐지된 것이 아니라, 2018년 마크롱 정부에서 부동산 중심의 자산세인 IFI로 대체됐다. 이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프랑스의 사례는 모든 형태의 부유세가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고율 과세가 얼마나 제한적인 재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큰 정바카라 불확실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실제로 당시 로이터 보도는 대규모 부자 탈출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기업 친화적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평가를 전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금을 실제로 얼마나 더 냈는가뿐만이 아니다. 기업가나 투자자는 세율 자체보다 앞으로 어떤 세금이 추가로 도입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더 큰 위험으로 인식할 수 있다.


투자란 현재의 비용을 지불하고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는 행위다. 그런데 그 미래 수익에 적용될 세금의 규칙이 정치적 환경에 따라 급격히 달라질 수 있다면, 투자자는 기대수익률에 불확실성이라는 비용을 추가한다. 그 결과 실제 세율이 오르기 전에 투자계획이 변경될 수도 있다. 조세정바카라의 비용은 세금 자체뿐 아니라, 세금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에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에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최저세율이 아니다. 오랫동안 신뢰할 수 있는 세제와 안정적인 법률체계일 수도 있다.



3. 영국의 실험은 아직 실패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영국 정부는 2025년 4월 6일부터 오랫동안 유지해 온 비거주자 과세 특례, 이른바 논돔(Non-dom) 제도를 대폭 개편했다. 과거에는 영국에 거주하면서도 세법상 본거지가 해외에 있는 일부 개인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해외 소득과 자본이득에 대해 유리한 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었다. 개편 이후에는 국외 거주 경력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신규 영국 거주자에게 최초 4년 동안 해외 소득·자본이득에 대한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영국을 오랫동안 국제금융 중심지로 만들어 온 조세상의 이점 하나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실제 통계다.


영국 국세청이 2026년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2025 과세연도 논돔 납세자는 약 7만3,400명으로 전년 대비 약 0.5% 감소했다. 논돔 및 간주 거주자 관련 납세자를 합친 세금과 슬롯보험료 부담액은 약 136억 파운드로 오히려 9% 증가했다. 물론 이 자료만으로 새로운 제도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당 통계는 2025년 4월의 본격적인 제도 개편 이전 과세연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의 장기적 이민 반응과 세수 변화는 별도로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다.


일부 유명한 억만장자의 출국 소식이나 자산 합계만으로 국가 전체의 세수 손실을 확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는 앞으로 몇 년간 매우 중요한 경제적 실험이 될 것이다.


정부는 세율과 과세 범위를 변경했을 때 당초 기대했던 추가 세수가 실제로 확보됐는지, 부유층의 이주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그리고 해당 이주가 기업투자와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분해서 분석해야 한다. 세제 개편의 성패는 유명 인사의 출국 명단이 아니라 이러한 지표로 판단해야 한다.



4. 경제학의 실증연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자 증세 논쟁에서 가장 흔한 오류는 극단적인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이다. 부자 몇 명이 떠나면 경제가 붕괴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주장도 있고, 반대로 부자의 이주가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 문제를 실제 행정자료를 활용해 검증한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2026년 10월 미국경제학회가 발간하는 권위 있는 학술지 American Economic Review에 발표된 연구는 북유럽 국가의 부유세와 고액 자산가의 국제 이주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최고 부유세율이 1%포인트 상승할 경우 부유층 납세자 수가 약 2% 감소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분명한 이동 반응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어지는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이러한 이주 반응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연구진의 추정에 따르면 최고 부유세율 1%포인트 인상에 따른 부유층 이주 효과는 전체 고용을 약 0.02%, 투자를 0.07%, 부가가치를 0.10%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의 이동은 관측되지만, 그것이 곧 국가경제 전체의 대규모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달 발표된 노르웨이의 별도 실증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예일대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2021~2024년 노르웨이의 관련 세제 개편으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은 최대 약 100명으로 추정됐다. 이주 반응은 최상위 0.1% 부유층에 집중됐다.


연구자는 이주가 없었다면 2021~2024년 부유세 세수가 약 75%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주를 반영하더라도 예상 증가율은 약 71.5%였다.


해외로 이주한 기업 소유주의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줄였다는 유의미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이 연구는 아직 정식 학술지 심사를 거친 결과가 아닌 워킹페이퍼이며, 비교적 단기적인 효과를 다룬다. 장기적인 창업 및 투자 유인까지 모두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두 연구가 제공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일부는 떠난다. 그러나 일부가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과세정바카라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주의 규모, 실제 세수 변화, 기업활동의 감소 여부를 함께 비교하는 것이다.


이는 정바카라결정자가 반드시 구분해야 할 문제다.


한 나라에 거주하는 억만장자가 100명 줄어드는 것과, 그로 인해 고용이 10만 개 감소하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이다. 첫 번째 현상이 실제로 관측되었다고 해서 두 번째 현상이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5. 자산에 세금을 매기는 일은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과 다르다


부유세 논쟁이 복잡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자산과 소득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소득은 일정 기간 발생한 경제적 성과다. 반면 자산은 특정 시점에 평가된 경제적 가치다.


가령 한 창업자가 자신의 회사 주식으로 1조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억만장자에 해당하는 자산가일 수 있지만, 실제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현금은 50억 원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여기에 순자산의 5%에 해당하는 일회성 세금이 부과된다면, 단순 계산상 500억 원의 납세의무가 발생한다. 이 경우 그는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식을 매각하거나, 배당을 받거나,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해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결정이 기업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식을 팔면 지분율이 하락하고, 대출을 받으면 개인의 재무위험이 커지며, 배당을 늘리면 회사의 투자재원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물론 세금이 항상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자산 규모와 유동성, 지분구조, 기업의 재무여력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부유세가 단순한 소득 재분배 장치가 아니라 기업금융과 자본구조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저커버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메타의 의결권 없는 주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결정은 거주지 이전 대신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동시에 경영권과 경제적 지분을 분리하는 자본구조상의 선택이기도 하다. 이는 오늘날 초고액 자산가에게 세금이 얼마나 중요한 재무적 변수가 되었는지를 상징한다.


반복적으로 부과되는 부유세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예를 들어 순자산에 매년 2%의 세금을 부과하고 해당 자산의 연간 수익률이 4%라고 가정하자. 다른 세금과 비용을 고려하기 전에도 자산에서 발생한 연간 수익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 자산세로 지출된다. 물론 실제 부담은 자산 평가방식과 수익의 실현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매년 부과하는 보유세와 일회성 과세는 동일한 세율만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좋은 조세정바카라이라면 세율뿐 아니라 과세표준의 평가, 납부 시점, 유동성 확보 방법과 조세회피 가능성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정교하지 않은 세금은 부자에게만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소유한 기업의 투자와 고용에도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이러한 설계상의 문제를 충분히 보완한다면 부유층 과세가 기업활동에 미치는 왜곡을 줄일 여지도 존재한다.



6. 그런데 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가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부유세의 한계를 다뤘다면, 이제 반대편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자 증세 논쟁에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경제적 현실이 있다.


오늘날 초고액 자산가의 부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일반적인 근로자는 노동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다. 급여가 지급되는 순간 소득이 발생하고, 정부는 이를 비교적 쉽게 포착해 과세할 수 있다.


하지만 초고액 자산가의 재산은 상당 부분 기업 지분과 금융자산의 형태로 존재한다. 주가가 상승하면 순자산은 크게 증가하지만, 주식을 매각하지 않는 이상 그 평가이익은 일반적으로 실현된 자본이득으로 과세되지 않는다. 여기에 자산담보대출, 지주회사, 신탁 등 다양한 법률·금융구조를 활용하면 개인이 실현하는 소득의 시점과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 이는 모두 불법적인 탈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 부분은 합법적인 세무 및 재무관리다. 그러나 그 결과가 조세 형평성에 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매년 급여소득의 상당 부분에 세금을 납부하는 근로자와, 훨씬 더 큰 경제적 부를 보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개인 소득세를 납부하는 자산가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EU Tax Observatory는 2024년 글로벌 조세회피 보고서에서 세계 억만장자들의 실효 세 부담을 순자산 대비 연간 약 0~0.5% 수준으로 추정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것이 일반적인 소득세율이 아니라 자산가치에 대한 세 부담을 환산한 지표라는 것이다. 일반 근로자의 소득세율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제기하는 구조적 문제는 분명하다.


경제적 부가 자산가격 상승의 형태로 축적되는 경우, 소득의 실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기존 조세체계는 그 증가분을 즉각적으로 포착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유층 과세 논쟁은 단순한 부자에 대한 정치적 반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금융자본주의에서 경제적 부의 형성과 세금이 부과되는 시점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욱이 막대한 부는 기업가 개인의 능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급한 인재, 국가가 제공한 도로와 전력망, 사법제도가 보장하는 계약의 집행, 자본시장의 유동성, 공공 연구개발 투자까지 다양한 슬롯적 기반이 부의 형성에 기여한다. 따라서 성공한 기업가에게 슬롯적 기여를 요구할 논리적 근거는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높은 순자산세 하나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핵심은 어떤 방식의 과세가 형평성을 개선하면서 경제활동의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다.



7. 세계는 지금 부를 유치하기 위한 새로운 경쟁을 시작했다


국제적인 부자 증세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현상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각국이 부유층 과세를 강화하는 동안 다른 국가들은 부자를 유치하기 위한 제도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스위스, 아랍에미리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서로 다른 세제와 거주 제도를 통해 국제적인 자산가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자들의 이주가 반드시 세율 하나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치안, 의료, 교육, 문화적 환경, 국제공항 접근성, 자산 보호, 정치적 안정성, 법률제도의 예측 가능성 등도 함께 작용한다. 가족과 사업 네트워크가 이미 형성된 국가를 떠나는 일에는 상당한 비용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자산가에게 높은 세금이 곧 즉각적인 이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거주지를 변경할 수 있는 선택권 자체가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과거에 자산가의 해외 이주는 상당한 생활상의 희생을 수반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 국가에서 거주자격을 확보하고, 사업과 개인 거주지를 분리해 운용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부유층의 국제 이동을 연구하는 기관들조차 이주 의향과 실제 이주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2의 거주권을 취득한 사람이 실제로 떠난 것은 아니며, 해외 이주 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국내 투자가 중단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변화는 존재한다. 과거에는 국가가 부자에게 어떤 세금을 부과할 것인지 결정했다면, 이제는 부자도 어떤 국가의 세제 아래에서 살아갈지 선택할 수 있다. 조세정바카라이 일방적인 명령의 성격에서 국제적 경쟁의 요소를 강하게 띠게 된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단순히 세율을 낮추는 경쟁 역시 한계가 있다. 모든 국가가 부자에게 가장 낮은 세율을 제공하려 한다면 결국 공공재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재원 자체가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조세의 하향 경쟁, 즉 Race to the Bottom의 문제로 설명한다. 따라서 조세경쟁은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쪽에는 과도한 과세로 경제적 유인을 훼손하는 위험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본 유치를 위한 경쟁 때문에 슬롯적으로 필요한 과세 능력을 잃는 위험이 있다. 어느 한쪽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이유다.



8. 해법은 초부유층에 대한 국제적인 과세 공조일까


최근 국제 조세 논의에서 주목받는 제안 중 하나가 억만장자에 대한 글로벌 최저한세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이 제시한 대표적인 구상은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의 개인에게 연간 자산가치의 2%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실효 세 부담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모든 국가가 동일한 형태의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득세와 자본이득세 등 기존 세금으로 이미 부담한 금액을 고려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추가 과세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EU Tax Observatory의 추정에 따르면 이러한 제도가 국제적으로 구현될 경우 전 세계 약 3,000명의 억만장자에게서 연간 2,000억~2,500억 달러 수준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가능성이 제시된다. 물론 이는 연구자의 정바카라 시나리오에 따른 추정치이지 실제로 실현된 세수가 아니다. 국가별 동참 정도, 자산 평가방식, 조세회피 반응에 따라 실제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제안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세율 2%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국가 간 경쟁의 규칙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한 국가만 강한 세금을 부과하면 자산가는 다른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국가가 일정한 최소 과세원칙에 합의한다면, 단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거주지 이전의 경제적 이점은 줄어들 수 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글로벌 최저한세 논의가 국제 조세 협력의 선례를 제공한 것처럼, 초고액 자산가에 대해서도 새로운 국제적 조정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난관도 만만치 않다. 자산의 정확한 가치를 누가 평가할 것인가. 비상장기업의 지분은 어떤 방식으로 산정할 것인가. 국가 간 과세권이 충돌하면 누가 우선권을 가질 것인가. 국적과 거주지가 다른 개인에 대해서는 어느 국가가 추가 세금을 징수할 것인가. 더욱이 자본시장이 발달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자산가를 유치하려는 국가와 이미 많은 자산가를 보유한 국가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글로벌 부유세 공조가 단기간에 완성될 가능성을 당연하게 전제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자본은 세계화됐는데 과세는 여전히 국가별로 분절되어 있다는 문제를 국제슬롯가 제도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조세의 미래는 세율 경쟁만이 아니라 국가 간 정보 공유, 과세표준의 투명성, 조세회피 방지, 과세권 배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9. 한국은 이 논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상속세는 경제적 형평성과 기업 경쟁력, 자본의 국제 이동이라는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표적인 조세제도다. OECD가 2026년 발표한 한국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며, 2024년 상속·증여세수는 전체 세수의 약 2.4%, GDP의 약 0.6%에 해당했다. 상속·증여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OECD는 상속세의 슬롯적 기능도 인정한다. 부의 세습을 완화하고 세대 간 기회 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높은 상속세 부담이 기업 승계 과정에서 유동성 문제를 초래하고 창업 및 투자 유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이 현재 피상속인의 전체 유산을 중심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는 실제 상속인이 취득한 자산 규모와 개인적 사정을 고려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단순히 세율을 낮추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과세 대상으로 삼고, 누구에게 세금을 부과하며, 언제 납부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공정하고 효율적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한국의 정바카라적 선택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첫째, 자산의 경제적 성격에 따른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 현금성 금융자산과 비상장 제조기업의 지분은 같은 금액으로 평가되더라도 유동성과 경제적 기능이 다르다. 기업 승계 과정에서 과도한 지분 매각이 강제되지 않도록 납부 유예와 분할 납부 제도를 합리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사업용 자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광범위한 비과세를 허용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혜택이 부의 세습과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고용·사업 유지 요건과 사후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세율보다 과세체계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기업의 투자와 승계계획은 1~2년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다. 따라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세제가 반복적으로 바뀐다면 세율의 수준과 별개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고소득과 자산의 축적에 대한 과세뿐 아니라 투자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를 만들어낼 유인도 함께 살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은 기존 부자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창업자가 기업을 설립하고, 새로운 기술을 상업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할 수 있다.


넷째, 기업의 승계 문제와 일반 주주의 권익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승계 과정의 과도한 세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지배주주의 사익편취나 소수주주에 대한 불이익까지 용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모든 주주가 기업가치 성장의 성과를 공정하게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자본시장 경쟁력에 더 중요할 수 있다.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것은 부자를 무조건 붙잡는 조세제도가 아니다. 성공한 경제주체가 슬롯에 합리적으로 기여하면서도, 국내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매력적인 선택이 되는 제도다. 이 두 목표는 반드시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10. 좋은 조세정바카라은 세금을 많이 걷는 정바카라일까, 부를 더 많이 만드는 정바카라일까


부자 증세 논쟁을 한 단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국가들의 실제 경험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먼저 스위스를 살펴보자.


2006년 스위스의 작은 주(州)인 옵발덴(Obwalden)은 고소득층을 유치하기 위해 소득세와 자산세 체계를 개편했다. 고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세 부담을 낮춤으로써 부유층의 이주를 유도한 것이다. 결과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2022년 Journal of Urban Economic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16년 옵발덴의 고소득 납세자 비중은 다른 주들과 비교했을 때 약 두 배로 증가했고, 납세자당 평균 소득도 개혁 이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16% 높아졌다.

이는 세제가 실제로 고소득층의 거주지 선택을 바꿀 수 있다는 실증적 증거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한계도 있다. 부유층이 옵발덴으로 이주했다고 해서 그들이 소유한 기업의 생산성이나 국가 전체의 경제적 부가 같은 비율로 증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스위스의 한 지역이 다른 지역에 있던 부유층을 유치했다면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는 부의 창출이 아니라 납세자의 재배치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세경쟁의 본질이 드러난다. 한 지역의 세수 기반이 커졌다는 사실이 국가경제 전체의 부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 사례도 있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노르웨이는 부유층에 대한 세 부담을 높이는 일련의 개혁을 시행했다. 일부 억만장자가 해외로 이주하면서 부자 증세가 경제를 파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2026년 10월 발표된 예일대 연구진의 실증분석은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연구에 따르면 개혁으로 인해 해외로 이주한 자산가는 최대 약 100명으로 추정됐다. 이주가 전혀 없었다면 2021~2024년 부유세 세수는 약 75% 증가했겠지만, 실제 이주 반응을 반영하면 예상 증가율은 약 71.5%로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해외로 이주한 기업 소유주들의 기업에서 유의미한 투자 감소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연구는 아직 동료심사를 거친 최종 논문이 아니며, 단기적인 효과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장기적인 기업 설립이나 투자 유인에 미칠 영향까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남는다. 부유층이 일부 떠나더라도 추가 세수가 실제로 확보되고 경제적 손실이 제한적이라면, 그 정바카라을 단순히 실패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스웨덴을 보자. 스웨덴은 2005년 상속·증여세를 폐지했고, 2007년에는 순자산에 매년 부과하던 부유세도 폐지했다. 그렇다고 스웨덴이 저세율 국가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OECD에 따르면 2024년 스웨덴의 GDP 대비 총조세수입 비율은 41.4%로, OECD 평균인 34.1%보다 상당히 높았다. 스웨덴은 자산 보유와 세대 간 자산 이전에 대한 일부 직접세를 폐지하면서도, 소득과 소비 등 다른 세원을 기반으로 높은 수준의 공공재정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슬롯적 형평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방법이 반드시 부유세나 상속세를 최대한 높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재정 규모를 확보하더라도 어떤 세원에 얼마나 과세하는지에 따라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진다.


물론 스웨덴의 선택이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와 노동에 대한 높은 세금은 다른 형태의 경제적 부담을 발생시키며, 이를 슬롯안전망과 소득 재분배로 얼마나 보완하느냐에 따라 정바카라의 성과가 달라진다.


그러나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의 사례를 종합하면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조세정바카라의 성패는 부자의 숫자나 명목세율 하나로 판단할 수 없다. 추가로 확보한 세수, 투자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세금이 만들어낸 슬롯적 편익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11. 삼성과 넥슨의 상속세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


이 문제를 한국의 현실로 가져오면 더욱 구체적인 고민이 생긴다.


2026년 4월, 삼성 오너 일가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산에 부과된 약 12조 원의 상속세 납부를 마무리했다.

2021년부터 5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은 배당과 차입, 계열사 주식 매각 등을 활용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12조 원이라는 막대한 세수를 확보한 사례다. 상속을 통해 이전되는 거대한 부에 과세함으로써 재분배의 원칙을 실현했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상속인들은 상당한 규모의 현금을 마련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보유 지분과 개인의 재무구조를 조정해야 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은 상속인의 유동성 부담과 삼성전자 자체의 투자능력이다. 상속인이 주식을 매각하거나 개인적으로 돈을 빌렸다는 사실만으로 삼성전자의 설비투자가 감소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조세제도가 개인의 자산구조와 기업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넥슨의 사례는 더욱 직접적이다. 창업자인 고(故) 김정주 회장의 유족은 2023년 막대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넥슨의 지주회사 NXC 지분 29.3%를 정부에 물납했다. 당시 해당 지분은 약 4조7,000억 원으로 평가됐다. 정부는 비상장기업인 NXC의 주요 주주가 됐지만, 정작 보유 지분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는 대규모 비상장 지분이었기 때문이다. 공개 매각은 여러 차례 실패했고, 2026년 5월에 이르러서야 NXC가 정부 보유 지분 중 약 1조 원어치를 되사들이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사례는 상속세의 문제가 단순히 세율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상속인은 세금을 내기 위한 현금이 부족했고, 정부 역시 세금 대신 취득한 자산을 원하는 시점에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웠다. 세금은 부과됐지만, 그 세금을 현금으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납세자 모두 유동성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고려하면 한국의 조세정바카라은 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가령 기업 승계 과정에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용 자산에 대해서는 장기 분할 납부나 과세이연을 허용하되, 실제 사업 유지와 고용, 지분 처분 여부에 따라 혜택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비상장주식 물납을 허용할 경우에는 단순한 평가금액뿐 아니라 경영권 유무, 지분의 시장성, 처분 가능성을 평가하고 정부의 회수 전략까지 미리 설계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 승계에 대한 세제 혜택이 대주주의 경영권 세습을 위한 특권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소수주주 보호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상속세를 무조건 폐지하거나 일률적으로 인하하는 접근이 아니다. 세금이 부의 세습을 얼마나 억제하는가뿐 아니라, 기업가치의 훼손 없이 실제 세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접근이다.



맺으며 | 부자를 붙잡는 나라보다, 부자가 계속 탄생하는 나라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은 하나의 역설을 보여준다.


스위스 옵발덴은 세금을 낮춰 부유층을 유치했다. 노르웨이는 세금을 높여 일부 부유층을 잃었지만, 연구에서 확인된 단기적인 경제적 손실은 제한적이었다. 스웨덴은 부유세와 상속세를 폐지했음에도 높은 수준의 전체 조세부담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막대한 상속세를 부과하면서 그 세금을 징수하고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세율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금을 부과하는 자산의 성격, 납세자의 유동성, 기업의 소유구조, 국가의 경제적 환경, 그리고 세수가 실제로 어디에 사용되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국가는 부자에게 세금을 얼마나 더 걷을 수 있는가. 그보다 먼저, 그 세금이 어떤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가를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확보한 추가 세수 1조 원을 단기적인 현금성 지출에 사용할 수도 있고, 기초과학 연구와 기술인력 양성, 산업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수도 있다. 전자가 반드시 비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 설계된 슬롯안전망과 소득지원은 인적자본을 보호하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반대로 국가가 연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출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확보한 세금이 얼마나 큰 슬롯적·경제적 수익을 만들어내는가다.


기업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 역시 일종의 자본 배분자다. 기업이 자기자본을 투자할 때 투자수익률과 자본비용을 비교하듯, 정부도 추가 과세로 확보한 재원이 경제 전체에 제공하는 편익과 과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비교해야 한다. 세금 1조 원을 추가로 걷기 위해 민간투자와 경제활동에 2조 원의 손실을 발생시키는 정바카라이라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반대로 세금 1조 원으로 슬롯가 장기적으로 훨씬 큰 생산성과 기회의 확대를 얻는다면 그 과세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편익과 비용을 모두 화폐가치로 정확하게 환산할 수는 없다. 형평성과 세대 간 기회의 문제도 경제적 효율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비교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한국이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히 상속세 최고세율을 몇 퍼센트 낮추느냐가 아닐 것이다. 고액 자산가가 합리적인 세금을 납부하면서도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할 유인을 유지하는 것, 자본의 이동 가능성을 고려하되 조세 형평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조세수입을 미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배분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제의 예측 가능성이다. 투자자는 세금을 부담한다는 사실만으로 투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세금이 언제, 어떤 기준으로 추가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면 투자계획을 변경할 이유가 생긴다. 기업가가 10년 뒤의 사업을 설계할 수 있으려면 정부의 조세제도 역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좋은 조세정바카라은 단순히 낮은 세율을 제시하는 정바카라도, 가장 높은 누진세율을 통해 형평성을 강조하는 정바카라도 아니다. 공정한 과세와 투자 유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확보한 세수를 슬롯 전체의 생산성과 기회 확대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정바카라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세계 각국이 해외로 떠나는 억만장자의 숫자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이미 성공한 억만장자가 몇 명 남아 있는가가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새로운 기업가가 등장할 수 있는가. 자본이 부족하지만 기술을 가진 청년이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가. 유망한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하면서 성장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가. 새로운 기업이 성장해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을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와 세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국가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결정한다.


기존 부자에게 세금을 덜 걷는다고 해서 새로운 부자가 자동으로 탄생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기존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해서 슬롯가 반드시 더 공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부가 새로운 부를 낳는 경제적 구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과가 슬롯 전체의 기회로 환원되는 제도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부자는 세금을 납부하는 경제주체이지만, 혁신과 생산적 투자에 참여하는 경제주체이기도 하다. 국가는 세금을 징수하는 권력인 동시에 혁신의 토대와 공정한 경쟁 질서를 제공하는 제도의 설계자다. 이 둘의 관계를 대립과 적대의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의 해법을 찾기 어렵다.


부자에게 합당한 세금을 걷는 것은 조세 정의의 문제다. 그러나 그 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국가 전략의 문제다.


좋은 국가는 두 가지를 함께 해내야 한다.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떠나는 부자가 적은 나라를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세금을 부담하더라도 혁신하고 투자하며 새로운 부를 만들어내려는 사람이 계속 등장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의 경쟁력은 기존의 부를 얼마나 잘 붙잡아 두는가가 아니라, 공정한 규칙 아래 새로운 부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탄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부자가 아니라, 부자가 탄생할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좋은 조세정바카라은 이미 만들어진 부를 나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의 부가 탄생할 토양까지 만들어내는 정바카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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