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가 빚어낸 흡혈의 나노 공학

by한국슈바이처ㅣschweitzerkorea

0.1초의 마취학, 모기 침 속에 숨겨진 화학 병기

모기가 우리 피부에 내려앉아 피를 빠는 순간을 알아채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개는 이미 흡혈을 끝내고 날아간 뒤, 지독한 간지러움이 시작되어서야 물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인간의 정밀한 신경망을 속이고 단 몇 분 만에 거금을 털어가듯 피를 채워 나가는 비결은 모기의 침(Saliva) 속에 내장된 정교한 화학 물질 칵테일에 있습니다. 모기가 피부를 뚫는 순간, 침샘에서는 수십 가지의 기능성 단백질이 동시에 분비됩니다.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인간의 통각 수용체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성분입니다. 주삿바늘보다 훨씬 가느다란 6개의 미세 침이 세포 사이를 파고들 때 발생하는 마찰과 통증을 인간의 뇌가 인지하지 못하도록 차단합니다. 모기의 침에 포함된 '시알로키닌(Sialokinin)' 같은 펩타이드 물질은 주변 모세혈관을 강제로 확장시킵니다. 혈관이 넓어지면 좁은 관을 통해 유입되는 혈류량이 순간적으로 극대화되어 속전속결로 흡혈을 마칠 수 있습니다.항응고 성분 (Anticoagulant): 인간의 몸은 혈관이 뚫리면 즉시 혈소판이 모여들어 피를 굳히는 지혈 작용을 시작합니다. 모기는 이를 막기 위해 혈액 응고 연쇄 반응을 차단하는 강력한 항응고 단백질인 '안혈라딘(Anophelina)' 등을 주입합니다. 피가 굳지 않고 물처럼 흐르게 만들어 빨대처럼 빨아올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지독한 가려움증과 부어오름은 모기가 피를 빨아 먹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흡혈이 끝난 후에도 피부 조직에 남아있는 이 외래 단백질(모기 침)에 대항해 우리 몸의 면역계가 '히스타민'을 과도하게 분비하면서 발생하는 알레르기성 과민 반응입니다.

모기는 왜 특정 사람만 노릴까

"나는 남들보다 피가 달아서 모기에 잘 물린다"는 오랜 속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계는 혈당 수치나 혈액형 자체보다 더 결정적인 원인을 인간의 피부 표면에 살고 있는 피부 상재균(Skin Microbiome)에서 찾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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