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세계 최대 자원부국이 다시 세워야 할 국가의 조건
1970년대 베네수엘라는 중남미의 대표적 부국이었다. 한때 1인당 소득은 일부 유럽 국가보다 앞섰다. 대규모 정유시설과 철강·알루미늄 산업도 갖추고 있었으며, 카라카스는 소비와 금융, 문화의 중심지였다. 오늘날의 위기만 바라보면 잊기 쉽지만, 베네수엘라는 한때 산업과 자본, 인재가 모이던 나라였다.
안녕하세요. UN과 중남미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유엔이방인 김상엽입니다. 포스트 마두로 시대의 베네수엘라를 관통하는 오늘의 경제 재건은 단순히 제재를 걷어내고 원유를 얼마나 수출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독재 권력은 무너졌지만 합리적 시장은 저절로 열리지 않는 시대, 글로벌 자본의 빗장은 풀렸지만 그것을 담아낼 굳건한 법치와 인프라는 철저히 붕괴된 세계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거대한 탐색전이 벌어지는 베네수엘라가 더 이상 ‘땅속의 검은 황금’에만 기대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어떤 뼈를 깎는 제도적 결단을 강요받고 있는지, 그 기회와 지독한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투자 지정학의 본질을 짚어보려 합니다.
카라카스의 5성급 메리어트 호텔 로비와 라운지에는 글로벌 투자자들과 은행가들이 모여 은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린다.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는 단 하나, 바로 1월 3일의 그 일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2026.1.3. 사건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1월 3일에 일어난 일’이라고 부른다. 니콜라스 마두로가 체포된 그날은 정치적으로는 주권과 국제법을 둘러싼 거대한 논쟁의 출발점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장기간 닫혀 있던 베네수엘라 시장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겨난 날이었다.
2026.1월, 미국의 특수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무너졌다. 거리에 요란한 환호는 없지만, 애도의 물결도 없다. 오직 경제 제재 해제와 막대한 오일머니를 향한 자본의 조용한 탐욕만이 공기 중에 무겁게 떠다닌다. 한 국가의 명운을 바꾼 이 거대한 지정학적 전환점은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지만,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과도기의 경제는 늘 매혹적인 기회와 치명적인 함정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잠재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급 원유 매장량을 가진 이 나라는 한때 스페인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다. 마두로 축출 이후 국가 재건을 향한 시곗바늘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50년간 이어진 국가의 석유 독점을 끝낸 새로운 탄화수소법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이제 민간 기업도 원유를 생산해 수출할 수 있다.
낡은 규제를 단숨에 혁파하는 행정절차 최적화 법안까지 제정되면서 시장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루 원유 생산량은 150만 배럴 선까지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제재를 피해 음성적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던 그림자 함대는 자취를 감췄으며, 석유뿐 아니라 통신, 인프라 등 비석유 부문에서도 백지상태의 거대한 재건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수사와 냉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과거 칠레 외교부와 유엔에서 근무하며 중남미 여러 국가의 체제 전환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 권력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곧바로 합리적인 시장경제가 안착하는 것은 아니다. 중남미에는 구리와 리튬, 석유와 가스를 가진 나라가 많지만, 자원을 단순히 보유한 국가와 그 가치를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국가는 다르다.
자, 다시 돌아가서, 카라카스의 호텔 문 밖 현실은 여전히 척박하다. 수십 년간 이어진 투자 절벽으로 전력망은 형편없이 망가져 매일 정전이 반복되었으며, 국민의 한 달 최저임금은 240 미불에 불과해 인접국 콜롬비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고성장 전망도 냉정하게 봐야 할 것이다. IMF는 2026년 베네수엘라의 실질성장률을 4%로 전망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87.4%에 달한다. 깊이 추락한 경제의 기저효과를 진정한 국가 재건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는 무너진 법치와 만연한 부패다. 제복 입은 갱단이라 불리는 경찰의 부패는 일상화되어 있고,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을 통해 잰걸음으로 행정부의 입김 아래 놓일 위험에 처해 있다. 부채의 무게는 더욱 무겁다. 베네수엘라의 총채무는 과거 알려진 규모를 훌쩍 넘어, 각종 채권과 미지급이자, 양자 채무와 중재 판정을 합치면 최대 2,400억 미불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새로운 투자자는 미래 사업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과거의 청구권과도 같은 공간에서 다투어야 한다. 유정을 다시 가동해도 송전망이 멈추고 항만이 병들면, 제도의 뼈대가 없는 시장에서 글로벌 자본은 단기 차익만 노릴 뿐 결코 장기 투자를 결단하지 않는다.
자본은 신중하게 탐색하되 냉정하게 계산해야 한다. 완벽한 안정을 기다리는 자는 기회를 잃지만, 제도의 리스크를 무시하고 뛰어드는 자는 자본을 늪에 빠뜨린다. 베네수엘라가 아메리카 대륙의 경제 엔진으로 진정성 있게 돌아오려면 근본적인 처방이 시급하다. 첫째, 투명하고 독립적인 에너지 규제 기관, 예를 들어 국가탄화수소청을 신설해 외부의 신뢰를 담보해야 한다. 둘째, 국제기구와 채권자가 참여하는 투명한 채무조정을 시작하고,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명확한 법적 중재 시스템을 조속히 확립해야 한다.
세계 최대의 석유가 땅속에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석유 위에 어떤 법과 권력, 어떤 국가를 세우느냐이다. 베네수엘라에 진정으로 부족한 것은 석유가 아니다. 거시경제의 회복은 땅속의 검은 황금이 아니라, 땅 위의 굳건한 제도에서 시작된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매장량이 아니라 신뢰를 생산하는 제도의 품질이다.
(사진 출처: 개인소장)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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