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땅이 바꾼 북미 패권의 지정학적 나비효과
영토 상실의 원인은 군사적 열세만이 아니었다. 이미 1836년, 텍사스는 이민자 주도로 독립을 선언한 바 있었는데, 텍사스에는 멕시코계보다 미국 이민자가 더 많았다. 중앙정부는 이 흐름을 애초에 통제하지 못했으며, 뒤늦은 중앙집권화 시도는 지방의 반발만 키웠고, 산타아나 정권의 연이은 오판이 결정타였다. 국경과 이민, 중앙과 지방의 균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 존립의 시험대다.
안녕하세요. UN과 중남미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유엔이방인 김상엽입니다. 오늘날 글로벌 패권을 좌우하는 핵심은 단순히 타고난 영토의 크기나 자원의 양이 아닙니다. 물리적 지리가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실제 국력으로 치환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전략과 제도적 역량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냉엄한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북미 대륙에 있습니다. 바로 19세기 중반, 이민자 통제 실패와 섣부른 정바카라적 오판으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라는 21세기 패권의 핵심 자산을 통째로 내어준 멕시코의 뼈아픈 역사입니다. 오늘은 “스티브 잡스가 멕시코인이었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지정학적 사고 실험을 통해, 멕시코의 잃어버린 땅이 어떻게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완성하는 나비효과를 낳았는지, 그리고 영토라는 기회를 지켜내기 위해 국가가 어떤 전략적 통치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 구조적 본질을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멕시코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마릴린 먼로가 멕시코 배우였고, 리처드 닉슨이 멕시코 정치인이었다면 세계사는 달라졌을까. 우스운 상상처럼 들리지만, 이 질문은 의외로 차갑다. 세 사람 모두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1848년 이전이라면 그 땅은 멕시코 영토였다. 나는 1970년대 멕시코시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 도시의 활력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때마다 품었던 의문이 있다. 멕시코는 왜 이 정도에 머물렀을까. 답은 지도 한 장 속에 있었다.
1846년,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1845년의 텍사스 병합이 도화선이었다. 2년 뒤인 1848.2월,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체결됐다.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가량을 미국에 내주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애리조나, 뉴멕시코, 네바다가 여기에 포함됐다. 넘어간 땅은 오늘날 미국 영토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공교롭게도 조약 체결 아흐레 전인 1월 24일, 캘리포니아 서터스밀에서 금맥이 발견됐다. 멕시코 정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서명했다. 골드러시는 이후 수십만 명을 서부로 끌어들였다. 그 인구와 자본이 훗날 로스앤젤레스 항만과 실리콘밸리의 토대가 됐다.
영토 상실의 원인은 군사적 열세만이 아니었다. 이미 1836년, 텍사스는 이민자 주도로 독립을 선언한 바 있었는데, 텍사스에는 멕시코계보다 미국 이민자가 더 많았다. 중앙정부는 이 흐름을 애초에 통제하지 못했으며, 뒤늦은 중앙집권화 시도는 지방의 반발만 키웠고, 산타아나 정권의 연이은 오판이 결정타였다. 국경과 이민, 중앙과 지방의 균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 존립의 시험대다.
만약 멕시코가 그 땅을 지켰다면 오늘의 지도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인구는 2억 1,600만 명에 이르러 세계 7위권에 올랐을 것이며, 국토 면적도 인도를 제치고 세계 7위 수준이 됐을 것이다. 텍사스와 퍼미안 분지의 원유는 멕시코의 에너지 패권을 뒷받침했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항만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물류의 허브가 됐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자본도 멕시코의 기술 경쟁력에 흡수됐을 것이다. 1853년 개즈던 매입으로 넘어간 애리조나 남부까지 더하면 격차는 더 벌어지는데, 국력을 가르는 두 축, 에너지와 기술을 모두 쥔 나라가 됐을 것이다.
나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여러 차례 여행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반도체 자본과 휴스턴의 유전을 두 눈으로 봤다. 사막과 해안, 유전과 실험실이 한 나라 안에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그 풍경이 원래 멕시코의 것이었다면 북미의 권력 지도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세계 디지털 질서도 영어권이 아니라 스페인어권 북미의 상상력 위에서 자랐을지 모른다. 미국은 대서양 중심의 중견국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며, 태평양 패권은 멕시코의 몫이 됐을 것이다.
이 가정은 21세기의 오늘에도 유효하다. 세계는 공급망을 다시 짜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를 니어쇼어링의 핵심 거점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데, 이는 국경의 이민자 문제와 관세 갈등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170여 년 전 잃어버린 땅의 그림자가 지금도 국경을 맴돈다. 그것은 태평양으로 가는 문이자 에너지의 심장, 기술 문명의 요람이었다. 지리는 바뀌지 않지만 그 지리를 다루는 정바카라은 매번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지리는 기회를 제공할 뿐, 그것을 국력으로 바꾸는 것은 제도와 선택이다. 항구는 통치 능력을, 유전은 재정 규율을, 기술 생태계는 개방성을 요구한다. 멕시코의 19세기는 남의 역사가 아니다. 모든 국가가 결정적 순간에 저지를 수 있는 오판의 기록이며, 역사는 때때로 조용히 묻는다. 그때 다르게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기회를, 우리는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사진 출처: 개인소장, 네셔널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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