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가 말해주는 기후·불평등·가족의 정치경제학
그러나 진짜 차이는 땅 아래보다 제도 위에 있다. 중남미·카리브에서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구가 수량 또는 품질 측면에서 주거 부족을 겪고 있다. 안정된 토지권과 장기 주택금융에 접근하기 어려운 가정에서는 지하실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고, 먼저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야 한다. 이후 소득이 생기면 위로 확장한다.
안녕하세요. UN과 중남미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유엔이방인 김상엽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의 형태는 단순한 건축 취향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주거 공간은 가혹한 기후의 제약, 거시경제의 불평등, 그리고 제도의 한계가 가장 정직하게 맞부딪히는 물리적 최전선입니다. 이 거대한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화려한 마천루나 도심의 중심부가 아닙니다. 바로 생존을 위해 지하로 파고든 미국의 지하실과 아직 오지 않은 가족의 미래를 담아 옥상 위로 뻗어 올린 중남미의 녹슨 철근들입니다. 오늘은 서로 다른 자연적 강제와 자본의 결핍 속에서 같은 대륙의 공간이 어떻게 상반된 방향으로 진화해 왔는지, 그리고 국가의 정바카라이 불완전한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점진적 생존 방식을 어떻게 포용하고 존엄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 공간의 정치경제학을 함께 짚어보려 합니다.
미국 중서부의 지하실에는 세탁기와 당구대가 있다. 때로는 영화관과 아이들의 놀이방도 들어선다. 반면 중남미 도시의 옥상에는 녹슨 철근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하나는 완성된 집 아래의 여분 공간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집 위의 미래다. 같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왜 한쪽 집은 아래로 내려가고, 다른 쪽 집은 위로 올라가는가?
먼저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미국의 모든 집에 지하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2023년 미국에서 지어진 신규 단독주택 가운데 전부 또는 일부가 지하실인 비율은 16.6%에 불과했다. 2022년의 19.6%보다도 낮아졌다. 지하실은 미국 전체의 보편적 주거 형태라기보다 추운 북부와 중서부에서 발전한 지역적 산물이다.
그 출발점은 추위다. 겨울철 땅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 지반이 팽창하고 수축한다. 얕은 기초는 쉽게 손상되며, 건축업자는 기초를 동결선 아래까지 내려야 했다. 어차피 깊이 파야 한다면 그 공간을 방으로 쓰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지하실은 처음부터 사치품이 아니었는데, 자연의 제약을 생활공간으로 바꾼 실용적 선택이었다.
토네이도 또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1,000개가 넘는 토네이도가 관측된다. 중서부와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 공간이 창고가 아니라 대피소다. 그러나 플로리다처럼 지하수위가 높고 땅이 물에 잠긴 지역에서는 지하실을 찾기 어렵다. 같은 미국에서도 자연조건이 달라지면 집의 형태도 달라진다.
미국에 살면서 나는 집의 ‘완성도’를 자주 보았다. 입주할 때부터 방의 수와 용도가 정해져 있었고, 지하실도 현재 가족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파나마, 에콰도르에 살면서 본 집은 달랐다. 집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고, 가족이 늘고 돈이 생기면 방을 하나 더 올렸다. 옥상 위의 철근은 공사의 실패가 아니었고, 다음 층을 위한 예약이었다.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 칠레에서 업무를 하며 본 도시들도 서로 달랐다. 보고타의 고원, 리마의 건조한 해안, 라파스의 가파른 산비탈, 산티아고의 지진대는 각기 다른 건축법을 요구했다. 그렇다! 중남미에 하나의 주택 모델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멕시코시티는 더욱 극단적이다. 도시의 상당 부분은 옛 호수의 연약한 퇴적층 위에 놓여 있어 이 지반은 지진파를 증폭한다. 미국 지질조사국도 호수 바닥 지반을 멕시코시티의 지진 피해를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한다. 이런 곳에서 지하를 파는 일은 단순한 굴착이 아니며, 지하수, 방수, 토압과 내진 설계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진짜 차이는 땅 아래보다 제도 위에 있다. 중남미·카리브에서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가구가 수량 또는 품질 측면에서 주거 부족을 겪고 있다. 안정된 토지권과 장기 주택금융에 접근하기 어려운 가정에서는 지하실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고, 먼저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야 한다. 이후 소득이 생기면 위로 확장한다.
따라서 옥상 철근을 후진성의 상징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완전한 제도 속에서 가족이 선택한 합리적 생존 방식이다. 문제는 증축 자체가 아니라 안전한 설계와 금융이 없는 증축이다.
중남미에 필요한 것은 미국식 지하실의 복제가 아니다. 단계적 건축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소액 주택금융을 확대하고 토지권을 정비해야 하며, 미래 증축을 고려한 표준 구조 설계도를 제공해야 한다. 비공식 주택을 일괄 철거할 대상이 아니라 안전하게 개선할 생활 기반으로 봐야 한다.
집은 콘크리트로 쓴 슬롯의 자서전이다. 그 안에는 기후와 재난이 있고, 금융과 불평등이 있으며, 가족이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도 담겨 있다. 미국의 집은 위험과 여분의 공간을 지하에 저장한다. 중남미의 집은 아직 오지 않은 가족의 미래를 옥상에 저장한다. 어느 쪽이 우월한가는 잘못된 질문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국가는 사람들이 이미 살아가는 방식을 얼마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개인소장)
Disclaimer - This post was prepared by Sang Yeob Kim in his personal capacity. The opinions expressed in this article are the author's own and do not reflect the view of his employer.
#국제기구 #해외취업 #유엔 #인턴 #영어 #스페인어 #국제법 #라티노 #중남미 #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