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이에 금이 갈 나이인가?
47살이 될 동안 치과와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다. 내가 치과를 찾아야 했던 이유는 올해 초 잇몸 속에 누워 있는 사랑니를 뽑을 때나 주기적으로 스케일링을 받아야 할 때였다. 반백 년 가까이 살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김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내 이는 튼튼했다.
나는 오복 중 하나를 타고난 것이 분명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만의 끝은 늘 그렇듯 뒤통수였다. 얼마 전부터 오른쪽 아래 어금니에 이상이 감지 됐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시릿한 느낌에 불쾌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이상 신호에 잠시 고민하다 치과를 예약했다.
금이 가다니
"치아에 금이 보여요. 아마 음식을 씹을 때마다 미세하게 금이 벌어져서 불편한 것 같습니다. 덮어씌우는 치료를 해야 해요."
드디어 올 것이 온 모양이었다. 진료 후 문을 열고 나오자 환한 얼굴의 상담 실장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분 잠시 앉으세요. 설명 좀 드릴게요."
치과는 가면 목돈이라던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역시 슬픈 예감을 틀린 적이 없었다.
"이를 갈아서 덮어씌우는 크라운 치료를 할 거예요. 가격은 개당 55만 원이고요. 신경치료가 들어가야 할 상황이면 더 금액이 추가됩니다."
개당 약 치킨 25마리 값이었다. 하지만 더 두고 보다가 치킨 50마리가 될까 싶어 서둘러 진료 예약을 잡고 왔다. 지난 15일, 첫 치료 날이 다가왔다. 약속 시간에 맞춰 치과에 도착했다. 전동 침대에 눕자, 간호사가 초록색 천으로 내 얼굴에 덮었다. 입만 동그랗게 나온 내 모습이 어떨지 잠시 생각하던 중 주사 마취 때문에 잇몸에 마취 크림을 바르겠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잇몸을 찌르는 마취 주사는 마취 크림 덕에 느낌이 없었지만, 입안으로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액체 때문에 마취약이 들어갔구나 생각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내 옆으로 오시더니 입을 크게 벌리라고 했다. 날카로운 마찰음에 침대 붙어 있어야 할 내 허리가 자꾸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취 주사가 왜 필요한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입이 너무 작고 입안 공간도 작아서 어금니까지 접근이 잘 안됩니다. 조금만 힘내 봐요."
선생님은 몇 번이고 내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입이 좀 작긴 하다. 그런데 입안도 작아 기계가 들어갈 공간조차 안 나온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내 좁은 입안은 날카로운 마찰음과 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로 전쟁통 같았다. 그 와중에 눈치 없이 헛구역질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초록 천 아래 내 얼굴의 모든 근육은 사정없이 찡그려졌다. 왜 입을 제외하고 얼굴을 가려야 하는지 잘 알 것 같았다.
왼손을 번쩍
"다 됐어요. 조금만 더 참아요."
하지만 입안에 물이 쏟아졌고, 파내고 갈아내며 생기는 진동에 갑자기 아무 죄 없는 콧구멍까지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왼손을 들었다. 잠시 모든 소리가 멈췄다.
"저 숨 좀 쉬고 할게요."
나는 어금니까지 접근이 힘들다며 애를 먹는 의료진 앞에서 염치없이 '타임'을 외쳤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타임'을 외쳤다. 의사 선생님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15초 간격으로 치료를 멈추고 쉬는 시간을 주었다. 내가 왼손을 들기 전에 알아서 기계를 멈춰 주니 조금 편했다. 잠시 후 중요한 과정이 끝났는지 의사 선생님이 자리를 떴다.
간호사는 이제 치아 본을 뜨고 임시 치아를 만들어 씌울 거라고 했다. 역한 냄새와 함께 뭔가 내 어금니에서 붙었다 떨어졌다. 본이 다 떠진 임시 치아를 내 어금니 모양에 맞추어 깎은 후 씌우기 직전이었다. 침이 묻으면 안 되는 뭔가를 발라야 한다며 어금니에 바람을 쏠 거라고 했다. 이제 끝났겠거니 생각하며 편하게 입을 벌렸다. 바람이 내 어금니에 닿는 순간 극강의 시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료실을 나온 내 모습은 며칠 잠을 못 잔 사람 같았다.
보험 상품 TV 광고에서 크라운 치료를 많이 들어 봤기에 간단한 치료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치료 시간도 오래 걸렸고 치료 과정도 쉽지 않았다. 앞으로 세 번 더 치과에 가야 치료가 종결된다. 다음 진료 날짜를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신용카드를 건넨 후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금니의 시림은 금방 가시지 않았다. 차에 올라타 남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입술까지 마취가 된 통에 커피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괜히 마음이 쓰라렸다. 임시 치아를 씌운 쪽으로 음식을 씹어 보며 괜찮은지 확인하라고 했지만 통 입맛이 없었다.
치아가 보내는 경고
영원할 거라 믿었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당연히 치아도 그렇다. 그날 입안의 낯선 시림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치아에 금이 가는 현상은 나이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도 있지만, 식습관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얼음, 오징어, 육포 등 단단하거나 질긴 음식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겠다. 껌을 씹거나 한쪽으로만 씹는 습관도 피하는 것이 좋다. 정기적인 스케일링과 치과 검진으로 초기 균열을 파악하고 특히 나이 들어 압력을 많이 받는 치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47년을 사용해 온 내 치아는 지금부터 치과와 친해지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늦지 않게 치과를 찾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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