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끌리는 제목
고양이나 개를 키우는 사람의 인구 비율이 30프로에 달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개를 키운 지 벌써 7년째다. 그 사이 개는 개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그것의 집요한 사랑에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벅찬 감정을 느끼곤 한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개와 고양이는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그들이 주는 메시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반려묘와 함께 하는 심리치유 에세이
<묘하게 다정한 날들>
작가는 베리,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생활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위로받고 통찰을 얻는다.
"고양이는 처음 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상대방을 지켜본다. ~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건 상대의 속도로 기다려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도 작가처럼 어색한 침묵을 싫어한다. 얼핏 보면 처음 본 사람과도 허물없이 이야기를 잘하는 외향형 같지만 상대의 에너지에 기가 빨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장단을 맞춰주는 나도 문제지만 처음 만남에 과도한 대화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솔직히 할 말을 쥐어 짜내야 한다. 고양이처럼 바라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상대도 말이다. 침묵을 지킨다고 해서 어색해지는 관계 보다 속도를 맞추는 과정이라 느끼는 관계가 더 좋다. 어떤 날은 그 속도가 0이라도 어색하지 않았음 좋겠다.
"어른의 행복은 고요 속에서 피어난다는 보석 같은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고양이와 살아가면서부터다."
"고양이의 예민함이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본능이었다면, 나에게 있어 예민함은 누군가의 아픔에 가닿는 마음의 통로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무던한 면과 예민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까다롭지도 깔끔을 떨지도 않아 털털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 뒷면을 들여야 보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눈빛 모든 것에 신경을 쓸 때가 많다. 너무 깊게 생각하면 정신 건강에 해롭지만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작가는 공황장애를 겪었다. 처음 시작이 나와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가 되려 반가웠다. 나도 운전 중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공황이라는 그분이 오셨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 증상에 겁이 났다. 나는 한동안 고속도로 운전을 하지 못했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치앙다오에서 만난 다리 잘린 고양이를 통해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고귀한 의지를 발견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치앙다오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 역시 상처를 딛고 앞으로 걸어간다. 검은 고양이의 뒷모습에서 흉터 위에 피어난 꽃을 보았다. 삶의 고결한 의지를 발견했다."
나는 개를 키우며 연약한 것들에 애정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생이 더 충만해졌고 갈등에 유연해졌다.
어쩌면 작은 동물이 주는 큰 사랑이 세상을 바꾸는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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