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바카라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엄마 혼자 일구는 빠듯한 살림에 바카라을 사달라고 조를 수는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이모 집에 가면 거실 바카라장에 빼곡히 꽂힌 계림 문고 전집을 보며 부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중학생이던 오빠가 용돈을 쪼개 《인어 공주》를 사 준 적이 있었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 공주가 불쌍해 날마다 베갯잇을 적시며 울었다. 바카라이 다 닳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런 내게 도서관은 무료로 바카라을 나눠주는 감사한 공간이었다. 고교 시절까지는 사서 선생님을 통해서만 바카라을 빌릴 수 있는 폐가식 도서관이라 이용이 불편했지만, 대학교에서 만난 도서관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신나는 놀이터였다. 수업이 끝나면 날마다 도서관에 달려가 해 질 녘까지 바카라을 읽었다.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서, 이상문학상 작품집,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등 서가를 돌아다니며 원하는 바카라을 골라 읽는 재미에 빠져 밥때를 놓치기도 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1980~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서관은 그저 바카라을 빌려서 읽는 공간이었다. 신간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전에 읽지 못했던 고전을 읽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다시 만난 도서관은 이용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카라을 통해 새로움을 깨닫고, 필요한 강좌를 선택해서 또 다른 배움을 얻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토론을 이어가기도 한다.
나 역시 마음 맞는 벗들과 매주 도서관에 모여 바카라을 읽고 저마다 느낌과 감상을 나눈다. ‘그래그래’하며 서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때론 같은 바카라을 읽고도 전혀 다른 생각을 펼치며 날 선 토론을 이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해마다 연말이면 저마다 읽고 싶은 바카라을 서너 권씩 고른다. 모임 대표가 정리해서 다음 해 읽을 바카라 목록을 만든다. 고전이나 유명 작가의 바카라은 도서관에서 구하기가 쉽지만, 신간이나 신예 작가의 바카라은 도서관에 없을 때가 많다. 도서관에 없는 바카라을 모두 사기엔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아 고민스럽다. 그럴 때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사는 집 근처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한다.
“다음번에 읽을 바카라은 신간인데 도서관에 없더라. ‘희망도서’ 신청하면 3주 가까이 걸리던데. 고민이야.”
“그럼, ‘서점 바로대출’로 신청해 봐요. 엄청나게 빨리 연락이 오던데.”
‘희망 도서’란 최근 5년 이내에 출간된 도서 중에서 도서관에 입고되지 않은 서적을 도서관 이용자가 신청하면 도서관에서 심의하여 배치하고 신청자에게 대출 우선권을 주는 제도다. 문학, 예술, 경제, 슬롯, 역사, 철학 등 다방면에 얕은 지식만 가진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신간 소식을 보면 눈이 빛난다. 날마다 쏟아지는 바카라들을 모두 살 수 없어 속상한 내게 도서관 희망도서는 커다란 선물이다. 그런데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보통 2~3주 지나야 도서관에서 연락이 온다. 급하게 읽어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또 지갑을 열어야 한다.
내가 이용하는 인천 교육청 도서관에서는 작년까지 1인당 매달 3권을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 미처 갖추지 못한 바카라을 신청하고 새 바카라으로 가장 먼저 읽을 때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에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희망도서 신청이 일찍 마감되더니 올해는 아예 1인당 2권으로 줄었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도서관을 찾는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에게는 몹시 아쉬운 소식이었다.
아무튼 도서관에 바카라을 신청하면 2, 3주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친구는 바카라을 신청하고 며칠 만에 받았다고 했다.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던 내게 그 친구는 도서관에 ‘희망도서 서점 바로대출’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바로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았더니, 2024년 1월부터 도입된 제도였다.
희망도서 서점 바로대출은?
도서관 미(未) 소장도서 중 원하는 바카라을 서점(지정 서점)에서 바로 대출할 수 있어, 이용자 만족, 희망도서 활성화, 공공도서관으로서의 이미지 제고 및 역할 다변화 등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신트리 도서관 홈페이지
원하는 도서를 집 근처 서점에서 대출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게다가 며칠 만에 바카라을 받아 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자주 드나들던 문구점 겸 서점이 있다. 그곳이 ‘서점 바로대출’ 지정 서점 중 하나라는 안내를 보자마자 바카라을 신청했다. 금요일 오후에 접수했는데 월요일 오전에 바카라이 입고되었으니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
“안녕하세요? 저…, 희망도서 신청했는데요.”
서점 문을 열고 어색해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문을 연 나를 서점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효숙입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자판을 두드리던 사장님은 바카라꽂이에 꽂혀있던 바카라을 건네주었다.
“저, 처음 신청했어요. 정말 일찍 도착하네요!”
“그럼요. 도서관에서는 신청 도서를 모아서 다시 분류하고 정리하느라 시간이 몇 주 걸리지만, 저희는 주문해서 바로 드릴 수 있으니까요.”
다 읽고 나서 바카라은 다시 서점으로 반납하면 된다고 했다. 이용자들이 반납한 바카라을 모아 도서관으로 보내면, 그때부터는 다른 바카라들처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 달라며 사장님은 처음보다 더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도서관 예산으로 지역 서점의 매출을 올리고, 이용자는 원하는 바카라을 빨리 읽을 수 있다. 갑자기 도서관이 더 고마워졌다.
문득 며칠 전 도서관 입구에서 나를 맞아준 글귀가 떠올랐다.
“고마워요. 누군가 심어놓은 그늘에 난 오늘도 쉬어 갑니다.-김문경
도서관 예산이 늘어나 매달 대여섯 권씩 희망도서를 신청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루나 이틀 만에 집 근처 서점에서 새 바카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퍼진다면, 지금 보다 신청자가 훨씬 많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하나둘 문을 닫는 동네 서점에 희망의 불씨를 일으켜 줄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지구를 구하고 내 살림도 지키는 <용기 있는 생활> 희망 도서 신청 부탁드려요^^.

집 근처 서점이 있으면 바로대출 서비스 이용해 보세요.
신청은 도서관에서 하시는 거 잊지 마세요!
신간을 읽는 재미를 바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