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리필의 날'...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다녀와서

by발자꾹 김효숙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세제 리필(refill, 보충)할 수 있지요?"


IE003635532_STD.jpg산제로 상점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성주로 34번 길 40. 월~토 10:00~18시/일요일 휴무


지난 주말 세제를 리필하기 위해 빈 용기를 들고 버스로 30분을 달려 부천에 있는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없는 또는 무포장)' 가게 산제로 상점에 갔다. 산제로 상점은 5년 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이던 무렵 '쓰레기 없는 마을 만들기'라는 과제에 골몰하던 아이들을 지켜보던 부모들이 시작한 곳이다. 마을 주민들도 마음을 보태 협동조합 형태로 부천 제1호 제로웨이스트 가게가 탄생했다. 다음 세대에게 좀 더 깨끗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플라스틱 없고, 포장재 없는 판매와 소비를 지향하고 있다.


이전에는 산제로 상점이 성주산 자락이 있었기에, 산 아래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가게라는 뜻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기사를 쓰려고 알아보니, 산제로의 '산'은 사는 행위 즉 소비라는 뜻이었다. 포장재 없이 물건을 '산다'라는 뜻은 '물건에 담긴 가치를 되새기고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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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리필(보충)하는 방법 : 빈 용기 무게를 달고 커다란 세제 통의 세제로 용기를 채우는 모습 ⓒ 김효숙


상점에 들어서니 안쪽에 세탁 세제와 섬유 유연제, 주방 세제가 담긴 커다란 통들이 선반에 놓여 있었다. 통 아래쪽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세탁 세제를 용기에 담아 가겠다는 말에 주인장은 마치 생맥주를 따르듯 손잡이를 돌려 세제를 담아주었다. 세제를 채우기 전 집에서 가져간 용기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 0점을 맞추는 것이 필수다. 1그램에 5.2원. 세제가 얼마 남지 않아서 가져가 통에 3분의 2 정도를 채울 수 있었다.


"603그램이네요. 3140원입니다."


친환경 세제라 많이 비쌀 것이라 생각했는데 값이 싸서 깜짝 놀랐다. 대용량으로 들여와 포장 없이 팔기 때문이란다. 세제를 채우고 나서 가게를 둘러보았다. 우선 선반 위에 있는 종이 포장 립밤이 보였다. 플라스틱 립밤을 쓰고 나서 버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강화섬 쌀과 감자전분으로 만들었다는 쌀라면도 두 봉지 골랐다. 밀가루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음식이다. 집에 있는 실리콘 빨대와 교대로 쓰기에 좋을 것 같아 스테인리스 빨대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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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로 상점에서 눈에 뜨인 물건들: 종이 립밤과 쌀라면, 리필 심으로 재사용 가능한 펜들, 버려지는 목재로 만든 색깔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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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로 상점에서 산 나의 가치보충한 액체 세제와 종이 포장 립밤, 쌀라면, 스테인리스 빨대


내가 사는 인천 부평에도 제로웨이스트 상점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문을 닫고 한 곳만 남았다. 그곳도 이용자가 적어 세제 보충을 중단했다. 그래서 이곳 부천까지 왔다. 속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툴툴거렸는데, 주인장으로부터 물건에 담긴 가치를 전해 듣다 보니 그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기후 위기다,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편한 것만 찾는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이 계속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산제로 상점은 세제를 충전하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주인장이 도시락통을 권하며 물었다.


"'산다방' 아세요?"


산제로 상점에는 다른 제로웨이스트 가게와는 다른 특별한 서비스가 있다고 했다. 다회용기에 든 음식을 푸드 트럭에 싣고 외부로 나가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했다. 이날도 동대문에 행사가 있어 트럭을 몰고 나갔다고 했다. '산다방'은 이동 케이터링(출장 급식) 서비스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도 커피차나 밥차가 가능하다니,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려지는 목재를 가공해 만든 컵, 리필 심으로 계속 쓸 수 있는 사인펜과 네임펜, 형광펜도 인상적이었다. 볼펜 등 필기도구는 크기가 작고 부품이 여러 소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깔끔하게 써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본 품의 반값도 되지 않는 리필 심으로 계속 재사용한다면 쓰레기도 줄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될 것이다.


가게에 있는 물건에 담긴 뜻을 생각하니 모두 소중했다. 다 써보고 싶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대신 세제를 다 쓰면 꼭 다시 와서 보충하고 내게 필요한 또 다른 가치를 찾기로 했다. 전국 곳곳에 이런 가게들이 많아진다면 매주 벌어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잔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가게를 나섰다.



세계 리필의 날, 함께 걷는 한 걸음


나는 날마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동네 가게에서 포장 없이 채소와 과일을 사곤 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매주 플라스틱과 비닐이 생긴다. 매주 일요일 재활용 분리 배출하는 날이면 집집마다 내놓는 플라스틱과 비닐이 아파트 마당 한가운데에 산처럼 쌓인다.


비닐과 플라스틱은 가볍고 잘 깨지지도 않아 한때는 과학기술의 커다란 선물이며 축복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쓰레기 산이 되어 처치 곤란이다. 최근엔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에 쌓여 다양한 질병을 만들어 낸다는 우울한 소식까지 전해진다. 쉽게 사고 버리는 현재의 소비 형태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무척 어두울 것이다.


6월 16일은 세계 리필의 날(World Refill Day)이다. '리필의 날'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내용물을 다시 채워 쓰는 '리필(Refill)'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영국의 환경단체 '시티 투 시(City to Sea)'가 제안한 글로벌 캠페인이다.


한편, 우리나라도 리필의 날을 맞아 행사가 진행된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은평구가 특별한 '용기 내는 날'을 마련해서 빈 용기를 가져가면 무료로 세제를 채워주는 행사를 진행한다. 산제로 상점에서는 텀블러를 지참하고 1만 원 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게 시원한 공정무역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한다.


세계 리필의 날을 기념해서 근처 제로웨이스트 상점에 가보자. 제로웨이스트 상점이 없다면 손가락 몇 번으로 집까지 찾아오는 서비스를 하루만이라도 참아보자. 6월 중순에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된다. 솔직히 좀 무섭다. 에너지 정바카라을 바꾸고 기술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 지구인이 지금처럼 손쉽게 사서 쓰고 버린다면 지구는 끓어오를 것이다. 그때는 늦다. 오늘 시작해야 한다. 혼자 걷는 열 걸음보다 함께 걷는 한 걸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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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용기 있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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