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뭘 만드는거야?

키홀가든 텃밭 만들기

by농부아내


농부님이 움직였다.

검색해보고 계획을 짜고,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끝났다는 얘기다. 과연 이번에는 뭘 만들까.



바로 '키홀가든'이다.


키홀가든(Keyhole Garden)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열쇠 구멍처럼 생긴 텃밭이다. 둥근 텃밭 한쪽에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고, 가운데에는 퇴비 공간을 둔다. 주변에 작물을 심어 기르는 방식이다.


키홀가든의 장점은 좁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면서 작물 재배와 퇴비 관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운데 퇴비 공간을 잘 관리하면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주변 흙에 양분을 공급하고, 흙이 수분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텃밭을 높게 만들면 허리를 많이 굽히지 않고 작물을 돌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넓은 땅이 없어도 채소를 키우고 싶은 사람, 작은 텃밭을 알차게 활용하고 싶은 사람, 퇴비를 활용해 흙을 가꾸고 싶은 사람에게 유용한 텃밭이다. 다만 실제 효과는 텃밭의 구조와 퇴비 관리, 재배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0월 9일


어느날, 텃밭으로 가는 길에 보니 파란 물통 주변에 쌓아 두었던 전정 가지들이 사라졌다. 며칠 뒤에는 그 자리에 고추 지지대용 파이프가 박혀 있었다. 툭툭, 무언가를 치는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농부님이 파이프를 박고 있었다.


그때쯤 농부님은 창고와 하우스, 집 주변을 틈틈이 정리하고 있었다. 널브러진 창고 물건 정리나 마저 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뭘 만드는 걸까. 지난번에도 집 앞에 온실을 만들어 준다더니 결국 비닐하우스 창고가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쓸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망치질하는 농부님을 사진에 담았다.



키홀가든을 검색해 보니, 내가 찾아본 사진 속 텃밭은 대체로 외곽을 벽돌이나 돌로 만들었다. 그런데 농부님은 굵은 파이프를 여러 개 박고 관주 호스를 감아 외곽을 만들었다. 밤호박 하우스에서 몇 년간 사용하다 이제 쓸모를 다해 버리려고 모아 둔 자재들이었다. 그걸 이런 용도로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엮어서 제초매트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뜻밖에도 키홀가든의 든든한 외곽이 되었다.


바닥에는 종이박스를 깔고 잔가지를 넣었다. 한쪽에 치워 두었던 전정 가지들도 활용한 모양이다. 가운데에는 퇴비통을 놓았다. 유기물을 모아 분해하는 공간이다. 물이 드나들고 미생물이 활동할 수 있도록 구멍도 여러 군데 뚫었다. 흙은 밤호박 하우스 앞쪽을 트랙터로 갈아 얻은 고운 흙과 그 속에 섞여 나온 잡초를 활용했다. 흙을 채운 뒤에는 물을 조금 뿌려 자리를 잡도록 했다.


처음 파이프를 박을 때만 해도 도대체 뭘 만드는지 궁금했는데, 어느새 제법 그럴듯한 모양이 갖춰졌다. 내가 사진을 찍으며 짐작하던 것보다 농부님은 훨씬 많은 일을 진행해 놓고 있었다.


10월 21일(비 온 뒤)


그 위에 잡초 부스러기가 많지 않은 고운 흙을 한번 더 덮어 완성했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과 함께 걱정도 생겼다. 관주 호스 사이로 흙이 빠져나가면 어쩌나. 비가 많이 오면 텃밭 모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건 아닐까. 완성되고 거의 바로 씨앗을 심었다.


며칠 뒤 강한 비가 한 차례 쏟아졌다. 비가 많이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흙은 많이 빠지지 않았고 모양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일단 첫 번째 비는 무사히 넘긴 셈이다.


아직 작물이 제대로 자라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키홀가든이 일반 텃밭과 얼마나 다른지, 가운데 퇴비 공간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도 이제 하나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높이가 있어 허리를 많이 굽히지 않고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내가 쓸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작물을 관리하기에는 편할 것 같다.


앞으로 작물이 자라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퇴비 공간은 어떤 식으로 관리해야 할지도 알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하는 건 아니니, 직접 사용하면서 하나씩 배워 가면 될 일이다. 키홀가든을 만든 농부님보다 내가 더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농부님은 키홀가든을 완성해 놓고도 벌써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농부님의 다음 움직임은 어떤 것일지,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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