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밤호박 공중재배 그물 유인과 수정

by농부아내


밤호박 농사를 짓기 전에는 호박은 흙바닥에서 키우는 줄 알았다.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 그물을 이용해 호박을 공중에 띄워 키우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호박과 달리 데롱데롱 매달린 밤호박은 하나같이 깨끗하고 반듯했다.


처음 그 모습을 본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물을 내리고, 밤호박 줄기를 그물에 유인하는 일은 여전히 힘이 든다. 그래도 그물 위에 줄기를 올려놓고, 그 사이로 깨끗하게 자랄 밤호박을 떠올리면 다시 손을 움직이게 된다.


올해 가을에도 그물을 내렸다.


9월 23일


밤호박 줄기가 덕의 바닥 지지대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제 유인을 시작해도 될 때였다. 그런데 보검동의 그물 길이가 조금 짧았다. 조금만 더 길게 뻗게 두었다가 유인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전에 봄 재배를 철거하며 말아 올려두었던 그물을 농부님이 다시 내려주었다.


9월 27~28일 1차 유인


9월 27일과 28일, 첫 번째 유인을 시작했다.

가을에는 보검동 한 동에만 밤호박을 심어두어서 처음에는 꽤 여유가 있었다. 순 치는 작업도 하루에 한 동이면 끝났다. 하지만 그물에 유인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줄기를 그물에 올려놓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유인을 하면서 곁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하루에 한 동을 끝내던 일이 유인을 시작하니 하루에 한 열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봄에 하우스 네 동을 돌아다니며 작업하던 때에 비하면 훨씬 낫다. 이어폰을 끼고 팟캐스터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한다.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혼자 피식 웃기도 한다. 바쁘긴 해도 얼굴에 미소를 띨 여유는 있다.


10월 1~2일 2차 유인


봄에는 하우스 네 동을 돌아야 했기 때문에 덕의 바닥 지지대를 넘기만 하면 서둘러 그물에 올리곤 했다. 줄기가 자라는 속도를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일찍 유인을 시작하다 보니 여러 번 손을 봐야 했다.


가을은 달랐다. 하우스 한 동만 작업하면 된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올해 가을 밤호박은 줄기가 빠르게 자랐다. 두 번째 유인만으로도 벌써 덕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 재배에서는 그동안과 달리 아래쪽에도 밤호박을 매달기로 했다. 암꽃을 남겨두고 농부님이 수정을 시작했지만, 잎이 커지면서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꽃들도 생겼다. 줄기가 제법 자라 이제는 창가가 아니라 터널 안쪽에서 작업해도 될 정도가 되었지만, 그날 창가에서 작업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수정되지 않은 암꽃은 제거하고, 수정된 암꽃에는 받침대를 놓아주었다. 한 열의 작업을 끝내고 보니 통 안에 담긴 암꽃이 생각보다 많았다. 꽃은 피웠으나 결실을 맺지 못한 녀석들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농부님에게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달라고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하우스를 둘러 보다가 내가 남겨 둔 암꽃이 핀 것을 보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수정은 시작되었다. 많은 꽃이 피진 않아 그때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창 호박꽃이 피는 시기라 매일 아침 농부님은 호박꽃을 찾아다니며 열농 중이다.


10월 4일


바빴던 공장 일이 끝나 오늘 3차 유인을 할 예정이다. 터널 안쪽에서는 줄기가 그물을 제대로 타고 갈 수 있도록 유인하고 순을 쳐야 하고, 창가 쪽에서는 바닥에서 수정되어 받침대가 필요한 녀석들을 살펴야 한다. 결국 오늘도 줄기 하나, 꽃 하나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10년 전에는 줄기를 어디로 유인할지, 어느 꽃을 남길지, 어느 열매에 받침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살펴보느라 바빴다. 10년째 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제서야 나는 조금 다른 것을 보게 되었다.


살랑이는 가을바람에 호박잎이 일렁이고, 그 사이로 노란 호박꽃이 보인다. 그리고 동그랗게 모양을 갖춰가는 연둣빛 열매를 바라보며 또 다른 시작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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