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호박 정식 후 한 달, 곁순 제거와 줄기 전쟁 시작
밤호박 모종을 심고 약 한 달이 지나면 빠르게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특히 원줄기 재배를 할 경우 곁순을 지속적으로 제거하기 때문에, 줄기 성장에 에너지를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생장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다.
하우스 창을 열어 통풍을 시켜주면 바람의 영향을 받아 줄기들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엉키거나 다른 방향으로 자라기도 한다. 이때 호박손이 다른 줄기나 지지물을 감고 있다면 풀거나 제거하고, 그물이 있는 방향으로 줄기를 유도해 준다.
2026년 밤호박 재배일지
- 보배동 3월 9일 정식, 4월 5일 2차 순치기
- 보영동 3월 11일 정식, 4월 6일 2차 순치기
- 보미동 3월 20일 정식, 4월 7일 2차 순치기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직 밤 기온이 낮아 이불을 덮어주고 있다. 혼자 조용히 일어나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7시쯤 하우스로 향했다. 아침 기온이 조금 낮긴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었다. 이불을 걷으며 일주일 만에 마주한 보배동의 밤호박을 보고 깜짝 놀랬다. 여기저기서 앞다투어 뻗어나가고 있는 줄기들. 지난번 1차 곁순 제거를 하면서 그물 방향으로 유도해 두었지만, 늘 그렇듯 내 뜻대로만 자라주지는 않는다.
그래, 이렇게 꼬여 있어야 일할 맛 나지~
몇몇은 얌전히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로 얽혀 있었다. 매년 보는 광경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요지경 줄기들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하나씩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곁순을 제거하고, 단단해지기 시작한 호박손들이 잎줄기를 붙잡고 있어 조심스럽게 떼어 낸다. 그리고 줄기를 살짝 돌려 다시 방향을 잡아준다. 매년 이렇게 돌리다가 부러뜨린 밤호박이 몇 개씩 나왔다. 다행히 아직까진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다.
쭈그리 의자를 밀어가며 손을 쉴 틈 없이 움직이다보니 어느 순간 해가 높이 올라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온 하우스 안은 아침과는 전혀 다른 공기였다. 여름처럼 훅 올라오는 열기에 창을 더 열었다. 바람이 조금 더 들어오자 그제야 숨이 트였다. 오후가 되어서야 보배동 작업이 마무리됐다.
비 소식이 있었고 아침 기온도 크게 떨어지지 않아 전날은 이불을 덮지 않았다. 이불을 걷어내는 과정 하나만 생략해도 내게 주어지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하우스로 향했다. 아이들은 이제 학교갈 준비에 내 손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알아서 척척이다.
보영동에 들어서자 보배동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힘을 받은 모습이었다.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작업하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창문을 닫고 순치기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가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 허리가 쉽게 펴지지 않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천천히 걸어 개폐기 쪽으로 향했다. 온도를 보니 30도. 구름이 낀 날인데도 이 정도였다. 지온과 식물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쌓인 탓일 것이다. 바로 창을 열어 바람을 들였다.
다시 자리에 앉아 손을 움직인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일이지만, 매번 같은 상태의 줄기는 없다. 얽힌 모양도 다르고, 뻗은 방향도 다르다. 그걸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른다. 어느새 오후 2시가 되어 있었다. 보영동 작업도 그제야 끝이 났다.
열흘 간격을 두고 심었던 보미동. 아침을 먹고 곧바로 하우스로 향했다. 아직은 덜 자랐을 거라 생각했지만, 탄력을 받기 시작한 듯 잎이 꽤 커져 있었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하루가 되겠구나 싶은 예감이 들었다.
보배동, 보영동처럼 줄기들이 심하게 얽혀 있진 않았지만, 그물 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자라는 것들이 많았다. 조심스럽게 돌려가며 곁순 제거 작업을 했다. 많이 자라지 않아 오전 안에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일이 길어졌다. 자람 속도는 느리지만, 보미동은 하우스 길이가 가장 길다. 길이가 긴 만큼 다른 하우스들보다 더 많은 모종을 심어서 결국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일이 끝났다.
해는 점점 강해지고, 하우스 안 공기도 빠르게 올라왔다. 창을 열 수 있는 만큼 열었지만 더위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땀이 줄줄 흐를 정도는 아니라 견딜 만했다.
하우스 세 동을 돌며 순치기를 마치고 나니, 허리는 펴지지 않고 무릎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통증이 느껴지니 비로소 농번기가 시작됐다는 실감이 났다. 줄기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때문에 잠깐 손을 놓으면 그만큼 일이 쌓인다. 이제는 매일 하우스로 출근을 해야한다. 매주 토요일은 하우스 일을 할 수 없으니 마음은 더 바쁘다. 그래도 아직 새벽출근까진 안해도 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