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자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by산들

‘계약 결혼’이라는 흔한 소재가 바탕이 되지만 이 드라마는 진부하지 않다. 심리학 대학원까지 나와 열심히 구직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25세 미쿠리와, 스스로를 프로 독신이라 칭하며 35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시스템 엔지니어 히라마사. 미쿠리가 히라마사의 집에 가사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직 활동에서 연거푸 거절당하며 상처 입은 미쿠리와 사람을 대하는 데 열등감이 큰 히라마사가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연애 이야기를 넘어 두 사람의 성장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미쿠리가 청소와 요리 같은 가사 노동에 능한 인물로 설정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만, 드라마는 그 노동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꾸준히 보여준다. 가사 노동을 급여로 환산하는 장면도 종종 등장한다.


히라마사는 연봉은 높지만 바쁠 땐 며칠 씩 철야 작업까지 해야 하는 시스템 엔지니어인데, 퇴근 후 깔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쉬고 싶다는 이유로 가사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다. 바쁜 온라인 게임인들을 대상으로 홈클리닝 서비스가 보편화되어 가는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꽤 설득력 있는 설정이다. full-time job을 수행하면서 요리, 청소 같은 가사활동을 완벽하게 해내기란 너무도 가혹하기 때문에. 극 중에서 미쿠리의 가사 대행 서비스를 받으면서 깔끔해진 집, 영양가 있는 식단의 영향으로 삶이 한 층 윤택해진 것으로 나온다.


히라마사 역 ‘호시노 겐’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마음속에 단단히 방어벽을 치고 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미쿠리에게 빠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성실하고 똑똑한데 어딘가 모르게 엉뚱하고 귀여운 구색이있는 미쿠리도 너무나 매력적. 물론 배우가 일본의 절세미녀 ‘아라가키 유이’라 더 그런 것일지도? 답답할 만큼 소심한 히라마사와,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야무진 미쿠리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참고로 제목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헝가리 속담에서 따왔다고 한다. 드라마는 누군가를 훈계하거나 거창한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갈등이나 과장된 악역도 없다. 대신 서로 부족한 두 사람이 조금씩 삶을 더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참고로 주인공 미쿠리와 히라마사는 역을 소화한 아라가키 유이와 호시노 겐은 드라마 후 실제로 결혼했다! 드라마에서도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두 슈퍼스타의 결혼에 일본 열도도 난리가 났었다고.





내가 가진 시간과 체력도 중요한 자원이다


A는 일이 많아질수록 퇴근 후의 시간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야근을 한 날이면 씻고 잠들기에도 바빴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밀린 집안일을 처리해야 했다. 평일에 하지 못한 청소와 빨래는 늘 주말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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